정부가 미디어교육을 교육현장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산업적 위기를 겪는 언론 입장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는 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정치사회 교육과도 단절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 미디어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의 미디어교육 현황을 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디어교육을 위한 제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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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① 프랑스 아이들은 ‘샤를리앱도’를 주제로 신문을 만든다
1-② 정치·사회 가르치지 않는 미디어교육은 ‘무용지물’
1-③ “아이들에게 어른신문 강요하는 건 말도 안 된다”
2-① 핀란드에선 학생들에게 ‘기레기’ 훈련을 시킨다
2-② 댓글 다는 한국 청소년, 온라인 정보는 믿지 않는다
3-① “미디어 활용이 아니라 미디어의 거짓말을 가르쳐야 한다”
3-② “못 보게 막지 말고 보여주고 교육하라”

견학같은 ‘방송체험교육’과 비판없는 ‘신문활용교육’

방송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 KBS뉴스 인트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천 성남초등학교 6학년 7반 학생들이 앉아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알아보겠습니다.” 뉴스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직종에 대한 설명이 뉴스 내용이다. 한번씩 기자와 앵커의 역할을 마친 아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간다. 이후 아이들은 송출실에 입장한다. 화면을 어떻게 조정하고 편집하는지 배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5년 미디어 교육을 전격적으로 시행하면서 각 지역에 위치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시청자미디어재단으로 묶고 대전, 인천, 서울, 강원 등 추가적으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개관했다. 지난해 개관한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전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센터다.

시청자미디어센터의 미디어 교육은 체험과 디지털 기술 습득 위주다. 인천 센터에서는 자유학기제를 맞아 일선 학교에 직접 찾아가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및 편집’, ‘영상 제작’, ‘스마트폰 활용 통한 영상 제작’, ‘청소년 뉴스제작’등이다.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는 CJ헬로비전 북인천 스튜디오, OBS, 경인방송iFM을 통해 주기적으로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활용, 동영상 편집과 같은 실무 디지털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 인천성남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4일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체험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다음은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의 한 장면입니다. 신문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기사를 찾고 제시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언론진흥재단의 신문활용교육 교재인 ‘신문과 생활’의 내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언론진흥재단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국내 미디어 교육의 양대 축이다. 언론재단은 신문활용교육을 실시해왔으며 최근에는 자유학기제 선택과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이 방송위주의 교육이라면 언론재단의 교육은 철저히 종이신문 위주다. 신문 지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의견과 사실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광고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의 형식적인 내용과 다양한 교과에 신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점이다. 

신문활용교육에는 정작 신문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는 빠져 있다. ‘신문으로 깊고 넓게 보기’ 단원에서는 신문을 사회현안에 연관해 생각해보는 과제가 있지만 ‘안락사’나 ‘지구온난화’등 정치사회의 쟁점을 피한다. 광고를 다루면서 언론사가 겪는 광고주의 압박과 편집권 분쟁 문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뉴스 리터러시’로 재편해야”

리터러시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지만 신문활용교육은 리터러시 교육이라기보다는 신문산업을 위한 교육에 가깝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의 교육은 제작을 통해 의사소통 수단을 늘리고 미디어의 구조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리터러시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뉴스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미디어 교육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TV를 잘 보게 해줄까. 어떻게 하면 종이신문을 더 많이 팔아볼까. 이런 식으로 접근해왔다”면서 “이런 접근이 아닌 뉴스에 대한 교육, 뉴스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뉴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NIE교육을 해온 한 중학교 교사는 “단순히 신문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고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나 교사나 잘 읽지도 않는 종이신문을 놓고 하는 교육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세대에게 종이신문의 형식과 내용을 가르치는 신문활용교육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해외사례를 연구해온 언론재단은 미디어 교육의 개념을 신문활용교육에서 뉴스 리터러시로 전환하는 중이다. 양정애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언론재단 토론회에서 “올해는 커리큘럼 개발연구를 진행했다”면서 “내년부터는 뉴스리터러시 측정도구에 대한 개발도 이뤄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언론재단에서 제작한 교과과정 시안을 보면 뉴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용 뿐 아니라 정치사회 현안과 연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수익구조유형이 서로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내용 분석하기 △주어진 뉴스 중 가장 좋은 뉴스와 가장 좋지 않은 뉴스 뽑고 이유 말하기 △탐사보도 기사 소개하기 △어뷰징 기사 찾아보고 포털 실시간 검색어 기능 필요성 토론하기 △종이신문과 언론사닷컴 뉴스비교 △포털과 모바일 중심의 가벼운 뉴스소비가 가져온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기 등이 있다.

정치적인 교육은 안 된다?

이 같은 시안이 교재로 만들어지고, 교육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교육이 시행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극복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우선, 언론의 반발이 예상된다. 주류 일간지들은 예나 지금이나 미디어 교육을 신문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뿐 주류언론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걸 꺼린다. 지난달 언론재단 토론회에서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은 “뉴스 리터러시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세력이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론진흥재단이 주류언론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힘들다면 뛰어난 커리큘럼을 갖고 알맹이 빠진 교육을 할 수 있다.

교사 재교육과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며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재단 프랑스 연수를 다녀온 안순옥 배명중 교사는 “우리나라 미디어 교육에서 가장 아쉬운 건 파트너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교육은 관심을 가진 극소수의 교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 국립미디어센터는 교사들과 언론을 연계하고 교사 연수를 실시하고, 다양한 단체들과도 연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신문과 방송이 전혀 별개로 시행되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통합적인 교육을 실시할 필요성이 있지만 진전이 더디다. 19대 국회에서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이 여야에서 발의됐지만 방통위와 언론재단 중 어느 기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지 부처간, 여야간 이견이 있어 한번 공청회를 열고 사실상 논의가 중단됐다. 

미디어 교육이 정규교육에 포함되지 못한 점 역시 한계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유학기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내년에 전면시행을 앞두면서 방통위와 언론재단 모두 관련 수업을 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회용 교육에 가깝다. 정규교과에 미디어수업이 들어오거나, 기존 교과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미디어 교육 업그레이드를 위한 7가지 제언

1. 컨트롤타워를 마련하라
한국의 미디어 교육은 컨트롤타워 없이 각개격파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언론진흥재단과 주요 일간지들은 NIE(신문활용교육)를 실시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방송체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터넷진흥원이 미디어 교육을 담당하는데 내용이 제각각이고 일부는 중복되기도 한다. 미디어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은 컨트롤타워 중심으로 미디어 교육정책이 편성된다. 영국의 오프콤, 프랑스의 국립미디어센터, 핀란드의 국립시청각센터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방송통신위원회 혹은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미디어교육전담 기관을 꾸려야 한다. 

2. 언론을 위한 올드미디어 교육은 안 된다
신문과 방송을 위한 미디어 교육은 더 많은 시청자나 구독자를 끌기 위한 교육이 돼 주객이 전도될 우려가 크다. 대다수의 국민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리터러시’는 현실에 필요한 텍스트 해석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미디어 교육이 ‘신문활용교육’과 ‘방송체험교육’에 그쳤는데 올드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를 포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3. 정치권력은 손 떼라
하나의 교육정책을 일관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프랑스, 영국, 핀란드의 미디어 교육 기관들은 모두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교육의 양대축인 언론진흥재단의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역시 청와대가 임명한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하며 초대 이사장으로 극우인사가 임명되기도 했다. 

4. 현실과 단절된 미디어 교육은 무의미하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한 ‘해석 방법론’만을 말하지 않는다. 파편화된 뉴스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회참여 의지가 있어야 하며 정치사회 담론을 해체할 줄 알아야 한다. 언론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도 필요하다. 대미안 런던 정경대 교수는 “뉴스 뿐 아니라 언론사의 소유구조와 의사결정구조를 이해하고 정치와 자본이 보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 뉴스도 변해야 한다
단 하루도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시청하지 못하면 사회현상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기 힘겹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물론 성인들도 경제뉴스 읽기를 힘겨워한다.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의 변화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연령대별로 신문이 제작되는데 우리나라의 어린이 신문잡지와는 달리 정치사회 현안을 다루면서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하는 해설기사가 많다. 이처럼 맥락과 흐름을 짚는 언론의 해설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독자 세대별로 특화된 공급방식이 필요하다.

6. 교육을 손질해야 한다
미디어를 학교에서 배운다고 해서 한국의 미디어 교육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큰 범주 내에 미디어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즉, 미디어 교육 도입은 교육과정 전반의 개편과 맞물려야 한다. 유럽은 시민의식 수업을 통해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를 배우는데, 우리는 도덕을 통해 규범과 규칙부터 배운다. 정치와 사회수업은 현실정치와 현실사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7. 사회 전반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정부와 언론사만이 주도하는 미디어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와 학계의 능동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핀란드에서는 미디어 교육을 지원하는 교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정부 공무원이 정기적으로 교류한다. 공공도서관과 각 지역의 청소년센터 역시 이들과 연계 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효과적인 미디어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풀뿌리 네트워크인 마을미디어,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민우회 등 시민사회단체, 정부 기관인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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