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어느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공영방송과 산하기관에 ‘청와대 내정설’이 제기된 인사는 대부분 안착해 인사검증은 유명무실해졌다. 방송 공영성에 관한 확고한 철학 없이 사업자 달래기식 규제완화 정책으로 일관해 시청권을 훼손했다.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발맞춰 출범한 기관이지만 유료방송에서 케이블이 무너지고 통신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청와대 내정설 불거지면 십중팔구 ‘안착’

‘청와대 내정설이 불거진 극우·뉴라이트 인사’는 공영방송 이사 및 방통위 산하기관장의 필수조건이 됐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와 KBS·EBS이사선임 당시 논란이 된 인물들은 단 한명도 걸러지지 않았다. 

전·현직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에게 “공산주의자”라며 색깔론을 제기한 고영주 방문진 감사가 방문진 이사장이 됐다. 김광동 방문진 이사는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으며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인 이인철 방문진 이사는 변호사 시절 북한인권법 제정에 앞장섰다. 일간베스트 게시물을 리트윗하며 세월호참사 유가족을 조롱한 차기환 이사는 전무후무한 3연임에 MBC에서 KBS로 ‘이직’을 했다. 

연임에 성공한 이인호 KBS 이사장은 김구 선생에 대해 “건국의 공로자로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으며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뉴라이트 학자다. 지난 이사장 임기 당시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가 좌편향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 편성에도 개입했다. 조우석 KBS 이사는 “동성애자는 더러운 좌파”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좌파와 동성애의 연결고리”라고 밝힌 인물이다.

   
▲ 미디어오늘 카드뉴스. 글·디자인·사진=김유리·이우림·이치열 기자
 

조형곤 EBS 이사는 “EBS는 매우 편향적이고 선동적인 방송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을 향해 욕설을 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국교총 추천 안양옥 EBS 이사는 뉴라이트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맡았다. 그는 EBS이사 재직시절 술자리에서 동료이사를 폭행해 사퇴한 인물이다.

방통위 산하기관에도 낙하산은 끊이지 않았다. 미디어 교육을 전담하는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으로 이석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종북이 될 수 있다”, “YTN 시청자가 좌편향이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으나 방통위는 임명을 강행했다. 이후 시청자미디어재단 경영기획실장 및 주요 간부직에 정부여당 인물을 대대적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하기도 했다.

방송 공영성 외면, 사업자 어르고 달래기만

방송의 공영성이 위협받고 있지만 공영성 확보를 위한 방송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700MHz대역 주파수를 무료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에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쪽은 방통위가 아닌 국회였다. 주파수 압축기술의 발달로 지상파 주파수가 남아도는 상황이지만 방통위는 상업광고가 없는 EBS2를 도입하고 KBS3를 추진할 뿐 나머지 대역에 대한 구체적인 사용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상파 채널이 늘어나면 광고시장에서 지상파 몫이 늘어나 유료방송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올해 방통위는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도입했지만 경제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광고총량제는 광고종류에 따라 칸막이식으로 구분했던 광고규제를 총량만 규제해 인기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광고가 배정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지상파에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면서 유료방송에 광고허용시간을 더 늘려주고 토막광고 및 자막광고 규제를 폐지해줬다는 점이다. 유료방송의 반발을 추가적인 규제완화로 잠재우려 한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돌아왔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들 민원을 해결하려다보니 시청권이 훼손됐다.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광고주)가 붙는 ‘제목협찬허용’ 구체적인 상품의 시연까지 가능한 ‘간접광고 규제완화’는 시민사회단체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반발이 거세 철회하기도 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사진=금준경 기자.
 

종편은 ‘특혜’ 통신사는 ‘편애’

방통위가 비교적 눈치를 덜 보는 경우가 있다. 종합편성채널이나 통신3사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다. 이명박 정부 때 탄생한 종편을 박근혜 정부의 방통위는 적극적으로 감쌌다. 올해 방통위는 종편4사가 내야 할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를 1년 더 유예하고 징수율을 0.5%로 낮게 책정하는 특혜를 안겼다. 종편이 여전히 적자상태인 점을 감안한 조치인데 야당 위원들이 반발했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여당추천 위원들로만 의결을 강행했다.

대대적인 불법광고영업 행위가 담긴 ‘MBN X파일’에 대한 제재도 솜방망이에 그쳤다. 방통위는 MBN에 불과 2건의 불법광고영업 행위의 책임을 물었으며 건당 500만 원, 총 1000만 원의 과징금만 부과하고 과태료는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미디어렙에 몰아줬다. 방송사 재승인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통신시장에서도 특정 사업자를 배려했다. SK텔레콤의 불법행위로 영업정지 일주일 제재를 의결해놓고도 메르스, 추석을 핑계로 시행을 미루고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기간도 여러차례 피해 6개월 만에 영업정지가 단행됐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도 연일 논란이다. 보조금 상한선을 과감하게 올리거나 분리공시제를 추진하는 등 가시적인 개선책은 없었다. 대신 시장단속만 강화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마케팅비를 줄인 통신3사가 수혜를 보게 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방송시장이 격변하고 있지만 방통위는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에 밀려 플랫폼이 붕괴됐으며 장기적으로 콘텐츠 경쟁력마저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IPTV의 결합상품 공세에 밀린 케이블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결국 방송은 끼워팔기 상품으로 통신에 종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방통위의 큰 그림이 안 보인다. 

IPTV사업자인 SK텔레콤이 케이블사업자인 CJ헬로비전 인수 결정을 내리며 케이블 시장의 붕괴가 앞당겨졌다. 방통위는 미래부와 공동으로 전담반을 만들고 합병조건을 논의 중이지만 애초에 사전에 시장변동을 예측하고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방통위는 뒤늦게나마 방송시장의 ‘을’로 전락한 케이블을 위한 지원책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시늉에 그쳤다. 결합상품 가이드라인은 결국 ‘방송 공짜’를 내세운 ‘허위광고’를 규제할 뿐 결합상품 비율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마련하지 못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재송신 분쟁에서도 방통위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방통위는 지상파와 케이블의 갈등으로 블랙아웃(송출중단)이 벌어지면 방통위가 직권조정과 방송재개명령을 내리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올렸지만 여야 의원들이 직권조정을 빼자는 제안을 하자 방통위는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지상파 재송신협의체를 꾸리며 해묵은 지상파 재송신 분쟁에 중재자로 나섰지만 이마저도 지상파가 불참하면서 반쪽짜리에 그쳤다. 

장기적으로 지상파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지상파의 위기는 무료보편적서비스로서 제 역할을 못한 탓도 있지만 방통위가 공영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방통위가 지상파 직접수신율 목표치도 정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시청행태가 변화하고 있고, 이에 맞는 시청률을 도입해야 방송광고 시장이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난해 정규방송 뿐 아니라 VOD, 스마트폰 등 다양한 시청행태를 반영할 통합시청률 시범조사를 해 놓고도 아직까지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업계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올해 방통위는 통신시장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 보호엔 소홀하고 대기업 이익에만 앞장섰다”면서 “기울어진 행정을 펼치며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장은 “이명희 교수가 EBS사장으로 선임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단장은 “방송철학을 공고히 세우고 이에 맞는 정책을 시행하는 게 아니라 매체 간 갈등구조에 묶여 서로의 불만을 잠재우는 정책만 그때그때 선보인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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