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바라지 골목’ 끝에 위치한 ‘통일로12가길’ 집 대문에는 A5 크기의 노란색 철거예정 스티커 5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벽지가 헤져 콘크리트가 다 보이고 천장 구석엔 곰팡이가 슬어있을 정도로 낡은 집이었다. 토익 수강계획서 몇 장이 바닥에 있던 것으로 보아 취직을 준비하는 청년이 살았을 거라 짐작됐다.

서울 종로구 무악동 ‘무악2구역’은 곧 철거가 진행될 재개발사업 지역이다. 이곳은 ‘옥바라지 여관 골목’으로도 알려져있다. 도로 건너편엔 1907년 세워진 서대문형무소가 있고 1987년까진 서대문구치소가 있었다. 이곳엔 독립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여관들이 많아 옥바라지 골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종로구는 2011년 11월 이곳을 ‘동네 골목길 관광 제6코스’의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 기거 100년 여관골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골목길 해설사는 관광객을 이끌고 무악동 옥바라지 여관 골목을 오르내렸다. 내년이 되면 이 옥바라지 골목은 아파트 건설 공사로 인해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40여 명은 “옥바라지 여관 골목을 지키고 내 오랜 동네도 지키고 싶다”며 여전히 동네에 남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이주가 80% 진행된 상태지만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겠다고 주장한다. 동네 골목 입구에 있는 ‘구본장여관’은 이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구본장여관’ 주인 이길자(61)씨는 “동네가 나쁘니 개발을 한다고 해서 재개발이라는데, 이건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악동 옥바라지골목의 여관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7일 오전 이사를 가고 난 무악동의 주택가 내부.
이치열 기자 truth710@
 

“하루에 돈 한 가마니씩 벌던 동네… 구치소 옮겨간 후 쇠락”

이길자씨는 “이 동네 옥바라지 골목이 잘 나갈 땐 하루에 돈을 한 가마니씩 번다고 소문이 났다. 식당 하나, 여관 하나 줄지어 있었다”면서 “구치소가 나가면서 동네가 점점 쇠락해 갔다”고 말했다. 과거 마흔 개가 넘었던 여관은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낡은 여인숙과 여관 대여개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무악2구역은 독립문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100여 가구가 살거나 장사를 하고 있으며 걸어서 20분 안에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주택과 상가는 매우 낡았다. 1970~198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아 빗물이 새고 보일러 시설이 잘 안 된 집이 많다. 골목길도 매우 좁고 언덕 쪽은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산동네’ 같은 느낌이 난다.

   
▲ 옥바라지 골목 끝에서 찍은 '무악2구역' 전경. 사진 위쪽으로 서대문독립공원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금은 낡은 외양에다 스산함까지 더해진 상태다. 지난달부터 이주가 진행돼 빈집이 많고 버려진 가구 더미들도 동네 곳곳에서 보인다. 이곳에서 40년을 산 주민 최은아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 총무는 “용역들이 빈집 유리창을 일부러 다 깨버렸고 벽에 구멍까지 뚫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골목길에 깨진 유리조각들이 즐비했다.

낡은 마을인 까닭에 주민들이 ‘개발’을 반대할 리가 없어 보인다. 비대위는 “왜 전면철거 방식이고 아파트 건설이냐”고 토로한다. 동네를 ‘갈아엎거나’ 주민을 떠나지 않게 하고도 충분히 도시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들은 “깨끗한 아파트가 좋은 것은 알지만 누가 분양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며 “재개발이 주민들에게 손해로 돌아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구본장 주인 이길자(왼쪽) 씨와 무악동 주민 최은아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집을 차례차례 개량하면 될 것을 굳이 아파트를 세워야 하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반대 활동을 한 때는 올해 4월부터다. 4월부터 구청과 시청에 민원을 넣거나 시장을 만나 재개발지역 지정을 해제해달라고 호소했고 6월부터는 기자회견도 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조합이 분양 신청을 받으면서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친조합’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동네가 나뉘었다”면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법과 사례를 공부하면서 재개발이 ‘좋은 아파트를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더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들이 반대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재개발 이익은 옛말’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이다. 반대주민들은 분양신청자가 되면 향후 추가분담금으로 1~2억의 돈을 추가로 내야 아파트 입주가 가능하며, 분양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 가진 집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평당 1400만 원 정도가 매겨졌는데 우리 가족은 13평에 산다. 9평에 사는 가족도 있다”며 “이 돈으로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집을 살 수가 없다. 세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길자씨도 “35년 여관을 해왔는데, 다른 곳에서 여관을 해보려고 찾아보니 건물들이 다 10억을 넘더라”며 “우리 여관은 5억으로 평가받았다. 여관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악제2구역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면서도 이들은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주장한다. 최씨는 “나는 40년 가까이 살아서 떠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돈을 많이 쳐주고 덜 쳐주고를 떠나, 무기력하게 쫓겨나가야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구본장 여관 주인 이씨도 “여기는 35년 간 여관장사를 해 온 내 모든 것”이라며 “이런 곳을 어디서 또 구하겠나”하고 토로했다.

이들은 “마을을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선 도시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옥바라지 골목을 지켜 마을 역사도 지키고 상권도 회복하고 오래 살던 주민도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난 4월 비대위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청사진도 제시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비대위가 “도시재생으로 집을 고치고 골목길도 예쁘게 살리면 통인시장이나 서울 이화동처럼 동네가 살아날 수 있다”면서 “여관골목의 명맥을 이어 게스트하우스 지역으로 둘 수도 있다. 지역을 더 개방시켜서 교육장 역할도 하게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재개발사업 취소는 주민 50% 이상이 반대해야 한다. 비대위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문자도 보내고 일일이 만나 해산동의서를 받았으나 40%가 최대한이었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주민들을 만나본 결과 “(비대위에) 동의는 하지만 이미 재개발이 시작됐으니 어쩔 수 없다” “좋은 아파트에 드디어 살 수 있게 됐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길자씨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 구청장이 괘씸해 “구청에 부탄가스를 가져가서, 구청장 죽고 나 죽자고 소리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철거 시점을 앞둔 상태… 반대주민들은 어디로 갈까

현재 옥바라지 골목엔 주택 10여 곳, 상가 15여 곳이 남아 반대 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동시에 무악2구역엔 한 집 걸러 한 집이 빈집인 상태다. 관리처분인가는 ‘재개발의 9부 능선’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면 재개발 사업 추진을 막기 힘들다는 말이다. 옥바라지 골목엔 지난 7월 인가가 떨어져 지금은 철거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옥바라지 골목 길가 상가엔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 현수막이 걸려있고 동네 어귀 한 모퉁이 상가엔 ‘무악2구역 조합 사무실’ 현수막이 걸려 있다. 비대위는 “관리처분무효소송을 내 1월15일 첫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희망은 없으나 조금이라도 더 끌어보려 한다”고 현재 상황을 밝혔다.

 

   
상인이 이주한 상가는 재개발조합측이 유리창을 깨고 빨간 페인트로 '공가' 표시를 해 놓았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옥바라지골목 재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의 현수막  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재 무악2구역과 같은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300여 개가 된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은 “원래는 서울시 내 600여 개가 넘었지만 박원순 시장이 전면철거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300곳이 취소됐다”며 “남은 300곳은 재개발사업을 취소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 비슷한 분쟁을 겪을 것”이라 지적했다.

이 정책위원은 ‘도시재생’이란 대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면철거 재개발’ 방식이 강행되는 요인으로 “일단 조합결성단계까지 가면 개발계획 용역, 조합 활동 및 유지비 등으로 비용이 상당히 든 단계고 이 비용을 건설사나 시공사가 대주는 방식이라 (조합은) 돌이키려 하지 않는다”면서 “세입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토지소유주 중에서도 외지가옥주들의 비율이 많아 (재개발지정 취소를 위한) 반대 50%라는 현행법상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무악제2구역 주택재개발조합 사무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반대 주민은 100명 중 2~3명밖에 안되는 것으로 안다. 이들도 보상금을 더 높이려고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분양 아파트값에 대한 추가 비용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재개발사업이 잘 되면 조합원들은 몇 천만 원을 환급받는 수익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끝까지 이주를 안 하는 주민이 있을 경우 법적으로 명도 소송을 진행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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