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다 보면, 솔직히 예전 일은 이제 기억이 잘 안 난다.”

예전 이야기보다 지금과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33년째 현역 언론인인 변상욱 CBS 대기자는 인터뷰 내내 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송건호언론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에도, “송건호 선생이 그 당시 하셨던 일을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는 말로 받았다. 제14회 송건호언론상 수상자 CBS 변상욱 대기자를 3일 서울 홍대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났다.      

- 수상 소감으로 “저널리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송건호 선생은 군사정권 시절에 해직언론 중심으로 재야인사를 모아서 협의체를 만들었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에는 뜻있는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를 모아서 하나의 언론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한겨레나 국민TV, 뉴스타파 등이 있지만, 더 융통성 있고 유연한 언론의 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 동년배 기자 가운데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보다 자신의 안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현역 언론인으로 뛰는 사람이 적은 건 사실이다. 내 나이쯤 되면 다들 본부장이나 사장급이다. 허연 백발 기자가 대통령을 다그친다든지, 그런 모습은 사실 판타지다. 본인도 부담스럽고, 회사도 부담스러운 차원이 있다. 후배들이 가고 싶어 하는 출입처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출입처가 없는 ‘기자수첩’을 다루게 된 것도 있다. 자유롭게 취재하고, 자유롭게 쓰는. 하지만 50대 이상의 기자가 모두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허용되기 어려울 테니, 새로운 대안이 나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제 14회 송건호언론상 수상자 CBS 변상욱 대기자를 3일 서울 홍대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뜻을 펼칠만한 곳이 없다. 지상파나 대형신문도 그렇지 못하고, 가능한 몇 곳은 너무 좁다. 요새 ‘뉴스펀딩’도 예가 될 수 있지만, ‘이런 기사를 쓸 테니 펀딩해주세요’ 수준을 넘어서 더 단단한 플랫폼이 있었으면 한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가 이번에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면서 생각했던 가장 큰 것이다. 송건호 선생님이 하셨던 일을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 하는 것.”

- 가능할까?
“과격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저널리스트에게 걸림돌이 되는 간부를 바꿔버리거나, 제도상으로 규제하면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요새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지상파와 대형신문에 그렇게 요구해왔지만, 안됐다. 차라리 그들을 덮을 만한 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지상파와 대형신문들이 환골탈태해서 민주사회에 맞도록 거듭나는 걸 기대하기는 늦은 것 같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해외 사례를 보면 지역에 기반을 둔 다양한 형태의 언론들이 힘을 키우고 있는데, 한국은 너무 중앙집중적이다. 지역 기반 언론들이 굉장히 힘들 텐데, 끙끙대고만 있는 거다. 낚시기사 써야지, 어뷰징 해야지, 출입처 가서 협찬 따와야지, 현장 나가야지, 나가서 써오면 또 선배들한테 칼질당하지. 뜻있는 저널리스트의 열정이 꺾이고 언론을 해보겠다는 사람도 사라지는 상황이 되지 않겠나. 

- 해외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샌프란시스코의 ‘팔로알토 패치’의 경우 한국의 오마이뉴스에 벼룩시장을 더한 느낌이다. 신문프랜차이즈 같은 건데, 1000여 개의 지역 신문을 두고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네덜란드의 ‘드 코레스펀던트’ 같은 경우는 전문적인 패널들이 많이 참여한다. 전문가인 시민기자가 기사를 쓰는데 시민기자를 불러서 생중계도 하고, 생중계가 바로 기사화된다. 댓글에 어떤 지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불러 토론회를 하기도 한다. 

-해외의 사례가 한국에서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나. 
“사실 한국의 언론은 굉장히 빠르다. 시민저널리즘 형태가 가장 먼저 나왔고, 언론협동조합도 있다. 1인미디어도 활발하다. 이 미디어들을 네트워크로 어떻게 묶느냐의 문제가 있다. 독일 같은 경우 넓은 사무실 하나 빌려서 작은 신문사들을 수용해 함께 한다. 정보도 빠르게 공유할 수 있고, 집세도 아끼고 일반 서무 등 인력도 최소화할 수 있다. ”

-한국에도 ‘국민TV’나 ‘프레시안’ 같은 협동조합이 나왔지만 쉽지 않았다.
“호흡이 짧다. 더 기다려줘야 한다. 외국의 협동조합 들보면 몇백 년 후에 성과를 내는 곳도 있다. 호흡을 길게 보고 더 기다려줘야 한다.” 

   
CBS 변상욱 대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년 후에도 머리 허연 기자로 남고 싶다”

-정치권에서 오라고 한 적도 있었을 것 같다.
“있다. 정치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만약 정치를 한다면 조건이 있다. 첫째, 지역구를 주지 말 것. 둘째, 비례대표 주지 말 것. 한 정당이 나의 정치적 신념이 맞아 간다면, 그냥 일하는 것이지 대가는 필요 없다. 하지만 CBS에서 잘리지 않는 한 정치는 안 할 것 같다.” 

- 언론에서 이름을 알리고, 정치로 가는 저널리스트의 경우가 많다. 정치에 관심은 없는지?
“송건호 선생이 예전에 그랬다. “세상을 바르게 잡겠다고 언론에 투신한 저널리스트가 그 뜻하나 견지하지 못하고, 여기가 나은가 저기가 나은가 눈치 보고 나가선 안 된다”고. 그러나 DNA가 달라서 정치를 한다거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자 출신이 기업의 홍보담당자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는 일이 뻔하지 않나.”  

- CBS에서 해고당할 일은 없지 않나.   
“혼자 CBS에서 잘리면 어디를 갈까 생각해본 적 있다. 제일 가고 싶었던 게 옛날의 ‘텐아시아’다. 요새는 주인이 바뀐 것 같다. 나는 소양이 인문이나 문학 쪽인데 CBS에서는 한 번도 못해봤다. 문화랑 비평 기사를 쓰고 싶다. 미디어오늘도 잠깐 생각했다.(웃음)”

-계속 비평을 하고 싶다는 말인가.
“건방진 말이기도 하지만 30년을 언론현장에 있으니 정치 사건 등을 보면 관련기사가 없더라도 이 사건이 어디서 어떻게 엉켜있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비평이라는 영역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비평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분석-통찰-전망-대안까지 내놓는 것. 물론 시간이 걸린다.” 

- 정년 후 그럼 비평가나 평론가를 하면 되겠다.
“정년이 3년 남았다. 이전에는 정년 후에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편을 보면서 온갖 인물이 나와서 시사평론가라고 하는 것을 보니 되기 싫어졌다. 요새는 그냥 CBS만 허락한다면 계약직 기자로 남겠다고 말했다. 대안매체 등에서 칼럼이나 현장을 누비는 멀티플레이를 하는 것도 좋다. 머리 허연 기자로 남고 싶다.”   

   
CBS 변상욱 대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세월호 이후, ‘비전 상실’의 시대

- 2015년이 지나간다. 올해의 키워드를 하나만 뽑는다면. 
“지난해는 ‘세월호’가 대한민국을 하나의 운명에 놓고 뭉칠 수 있는 키워드였다. 찬스를 놓친 것 같다. 올해는 그 기회를 놓친 것에 이어 ‘비전의 상실’이라는 말을 꼽고 싶다. 제일 큰 것은 정권교체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다.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은 해였지만 그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비전이 상실됐다는 느낌이었다.”

- 언론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언론의 모습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제일 심각한 것은 언론 스스로 자존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기준 자체가 낮아진 것이다. 시용기자라든가 공영방송 이사회의 문제라든가 핑계댈 것들은 많다. 애쓰던 언론들도 비교 대상의 질이 낮아지니까 언론이 하향 평준화되는 것이다. 이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문제’다. 점점 악화가 늘어난다. 좋은 언론인들이 자꾸 쫓겨난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이번에도 상을 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이 잘못된 걸까?  
“감시는 사실 예전보다 더 잘한다. 더 큰 문제는 감시한 결과를 알려줘도 내부에서 이를 변화의 동력으로 만들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나 기자협회 등에서 문제점을 전달하면, 안에서 자성이 일고, 데스크나 경영진에게 압박으로 가서 개선이 돼야되는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요구해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부끄러운 자료가 제시돼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감시자의 역할만 주어져서는 언론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용자가 주체로, 새로운 경영자로서 등장해야 한다. 언론인, 퇴직자들, 노조, 학자까지 연대해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송건호 언론상을 탄 후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첫째 해야 할 일은 언론 대표적 상을 탔으니까 새로 입문하는 저널리스트들을 계속 만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신입 기자 교육, 언론지망생들을 위한 특강을 계속할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셋째는 저널리즘이 이렇게 무너지는 마당에 저널리스트 윤리라는 것은 어떻게, 또 어디까지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12월 연말 계획은 어떤가.  
“30년 근속휴가가 있어서 프랑스 파리에 다녀올 계획이다. 예전에 유럽에 갔을 때는 맥도날드에 갔을 때였나, 불심검문을 해서 가방을 다 쏟고 그랬다. 이제는 안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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