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누리꾼이 만들었다는 영상은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하고 우리가 실패하면 우리만 실패할 겁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KTX 해고승무원 장혜진 씨의 발언이 끝난 후 방영된, KTX 승무원 투쟁 10년을 기억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곳곳에서 눈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한 해고승무원은 옆에 앉은 딸의 촛불을 함께 잡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

해고승무원 최정현씨는 이에 대한 답으로 “우스갯소리지만 할머니 될 때까지 싸우려 한다”고 밝혔다. 영상이 끝나고 문화제에 참석한 승무원들이 모두 앞으로 나가 발언을 하던 와중이었다. 또 다른 해고승무원 차미선씨도 “23개월 된 내 딸이, 서러움이나 부당함의 세상에서 살지 않도록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말했다. 승무원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집회참가자들은 박수로 큰 응원을 보냈다.

   
▲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KTX 해고승무원들이 2일 촛불문화제에서 발언을 하는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KTX열차승무지부는 2일 오후 7시 서울역 서편에서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2006년 시작한 ‘KTX 여승무원 복직투쟁’이 지난 달 27일 파기환송심에서 승무원들의 패소 판결을 받은 후 처음 열린 집회였다. 7년에 걸친 법정 투쟁에도 법원은 끝내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고 승무원들의 복직 요구는 무효가 됐다.

문화제는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의 여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김 지부장은 “(법원은) 말장난 같은 판결문을 내놨다.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졌다 해서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멈출 수 없다”며 “(철도공사는) 돈만을 위해서 잘못된 고용형태 유지해가고 있고 끝까지 문제 지적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더 강한 투쟁 이어나가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2일 촛불문화제에서 여는 발언을 하고 있는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 (사진=손가영 기자)
 

‘함께 연대하겠다’는 시민사회 각계의 약속도 이어졌다. 김영훈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은 발언에 나서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사람을 때렸지만 폭행한게 아니라는 엉터리 말처럼 이번 판결도 그와 다름없다”며 “저들이(철도공사가) 바라는 것은 ‘이쯤 되면 그만두라’ 일텐데, 우리는 싸움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류은숙 정의당 중앙여성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엔 야당이 얘기하고 노동자가 투쟁하면 정부는 적어도 듣는 척이라도 했다. 시민사회의 힘 때문이었다”며 “정당인으로서 시민사회가 다 같이 나서서 사회적 힘을 만들어 정부와 철도공사를 압박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참가자들의 가장 많은 환호를 이끌었던 것은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의 공연이었다. 서울본부는 KTX 해고승무원의 10년 투쟁 동안 그들과 꾸준히 함께 싸운 단체다. 서울본부의 간부 6명과 해고승무원 2명은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열창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집회참가자들도 후렴구를 함께 따라불렀다.

전인권의 독주 파트를 맡은 서울본부의 최명호 조직국장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간부 한 명이 ‘걱정말아요’를 승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해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조직국장은 “벌금 문제가 만만찮아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서울본부는 앞으로도 책임있는 자세로 여러가지를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준비한 노래 공연. 이들은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사진=손가영 기자)
 

해고승무원 장혜진씨는 8년 전, 투쟁이 2년에 접어들 무렵 동료가 썼던 글을 낭독했다. “약자는 항상 약자고 강자는 항상 강자일 수밖에 없는 사회, 그게 대한민국이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인 줄 알았던 우리 사회가 구석부터 썩은 사회였다는 것을 나는 투쟁으로 알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 졸업 후 처음 들어온 직장에서 이렇게 멀고 기나긴 길을 가게 될 거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을 놓고 파업한 지 1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내 자존심을 잃어버린 곳에서 내 자존심을 찾고 싶다” 낭독이 끝난 후 장씨는 “좋은 모습으로 좋은 결과를 이룰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해고승무원들은 문화제 가장 앞줄에 자리 잡아 촛불을 들었다. 이곳에 함께 앉아있던 해고승무원 강영순씨는 10년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묻는 질문에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강씨는 “말을 하면 눈물부터 나 인터뷰를 잘 못 한다”면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나쁜 선례를 남기면 안 되니 남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해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씨는 파업하는 동안 출산을 해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10년 동안 꾸준히 승무지부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 2일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KTX 해고승무원들의 싸움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문화제는 집회참가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하며 마무리됐다. 시민 김아무개씨는 “(KTX 투쟁이) 예전엔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 많이 얘기하고 싸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TX 승무원과 마찬가지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이재형씨는 “시작을 했으니까 끝을 봐야지, KTX 투쟁도 우리도 마무리를 볼 때까지 싸울 것”이라 밝혔다.

파기환송심 패소는 원고였던 해고승무원 33인 각자에게 8000만원이 넘는 소송비용을 남겼다. 김승하 지부장은 “억울해서 못내겠다”면서 “공사와 우리 간의 문제기 때문에 앞으로 협상을 통해서 해결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KTX 승무원 복직 투쟁은 2006년 3월 철도노조 총파업과 함께 시작됐다. 한국철도공사는 2003년 11월 KTX가 개통하기 전 노동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익회’와 도급위탁계약을 맺고 승무원 업무를 외주화했다. 철도공사는 당시 KTX 여승무원들에게 “지금은 홍익회 직원으로 뽑지만 2005년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1년만 고생하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철도공사는 ‘불법파견’이라 불리는 도급위탁계약을 지속했고 2006년 5월 이를 거부한 KTX 승무원 280여명을 해고했다. 10년의 투쟁 동안 KTX 해고승무원은 삭발, 단식, 노숙농성, 고공농성 그리고 7년에 걸친 법정 투쟁 등을 거쳐왔다.

   
▲ 지난 2006년 9월28일 KTX 민세원 지부장의 삭발단식농성 3일째 결의대회를 마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행진하는 KTX여승무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KTX 승무원 34명은 2010년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한국철도공사와 철도유통 사이의 위탁협약은 위장도급 △2006년 해고는 부당해고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지급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지난 2월26일 대법원 재판부는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고등법원은 “재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확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