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의 표지는 한 여성이 잡지 ‘맥심’을 찢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맥심 표지엔 한 남성이 자동차 트렁크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고, 트렁크에는 하의를 걸치지 않은 여성의 두 다리가 발목에 청테이프를 두른 채 밖으로 나와 있다. 한 폭력조직원이 여성을 힘으로 제압해 트렁크에 가둔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진은 곧장 ‘여성혐오’ 논란을 일으켜 미국 본사 측의 강력한 항의로 폐간된 지난 9월호 맥심 표지 이야기다.

사심은 ‘메갈리안’들이 만든 ‘미러링 잡지’다. 미러링은 여성이 처한 성차별적 상황에 대해 남녀를 바꾸어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대표적인 대응 논리다. 메갈리아는 미러링을 빌려 여성혐오를 비판·조롱하는 집단으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사심은 메갈리아가 오프라인으로 범위를 확대한 첫 번째 시도다.

누가 어떤 경위로 만든 것일까. 사심 발간을 주도하고 편집장 역할을 맡은 ‘미스터신’씨를 25일 신촌 한 스터디까페에서 만났다. 신씨는 이름, 나이, 직업 등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라고만 자신을 설명했다. 다음은 신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사심 창간호 표지. ⓒ사심
 

- 철저히 익명성을 지킨다. 왜 그런가?

메갈리아의 컨셉이 익명성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성운동, 특히 메갈리아는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운동을 하기 힘들다. 떳떳하지 못한 게 아니라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뭔가를 말했을 때 주변 남자들로부터 받을 제재, 신체적 위협 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진이 찍히거나 신상이 공개돼 피해를 입은 경우도 많다. 실제로 누가 메갈리아 홈페이지 운영자의 신상을 캐 신상 정보를 온라인에 폭로해서 운영자가 엄청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잡지를 만든 이들 모두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사심이 뭔가? 왜 발간했나?

사심은 현재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의 4를 따온 것이자 여성들이 만든,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마음을 담은 잡지라는 뜻에서 ‘여성들의 사심’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페미니즘을 다루겠다는 마음이 있다. 페미니즘 도서들은 많지만 나 같은 일반대중이 읽기에 문턱이 높은 게 많았다. 어려운 페미니즘 도서들이 말하는 기본적인 이념과 메갈리아가 말하는 이념은 동일하지만 용어가 다를 뿐이라 생각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이해하기에 더 쉽고 잘 와닿는다. 메갈리아를 이용해서 쉽고 재미있게 페미니즘을 얘기하고 싶었다.

- ‘여성들의 잡지’가 무슨 뜻인가? 그게 왜 필요한가?

사심을 만들게 된 발단엔 맥심 화보 사태도 있다. 맥심이 뭐길래 이렇게 난리냐는 생각에 그때 맥심을 찾아봤다. 이걸 보고 나니까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이 왜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이걸 왜 문제라 생각 안 하는지, ‘너는 성형 티 안 나고 싼 티 안 나서 좋아’라는 말을 칭찬으로 아는지 알겠더라. 잡지엔 몰카 잘 찍는 법이나 그녀를 술에 취하게 하는 법도 나온다. 이런 걸 무의식적으로 보면 사고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맥심이 남성 잡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서 그렇지 한국의 모든 언론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여자는 예뻐야 하고 예쁜 여성을 평가하는 건 남성의 권리고. 수위의 문제지, 여성을 성적 욕구 해소품으로 대하는 방식은 똑같다.

 

   
 
 
   
▲ 한 여성이 맥심 9월호 표지사진을 찢고 있다. 사심 화보 사진이다. ⓒ사심
 

- 이번 호 표지 설명해달라.

보는 그대로 맥심의 폭력적인 표지 비판이다. 여성들의 분노를 보여주고 싶었다. 맥심 비판이 이번호 컨셉이기도 하다. 우리 잡지의 컨셉으로 맥심을 타겟팅하는 건 오히려 소재 제한을 불러와 오래 끌고 갈 생각은 없다.

맥심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웃긴 게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면 맥심은 약속을 안 지켰다. 문제가 되고 나서 맥심은 전량회수, 폐기처분을 약속을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리가 사심 표지 사진을 푸니 폐기했다는 공지를 뒤늦게 올렸다. 판매 수익금을 기부한다고 약속해놓고 그것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계속 화제로 삼아 폐기처분을 확인하고 수익금 기부까지 확인할 예정이다.

코스모폴리탄같은 잡지는 남성들이 바라는 여자를 담고 있다. 사심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다움을 깨버리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남성 모델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여성 모델은 젊고 아름답게만 나온다. 사심엔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성들, 담배피우는 여성들을 담았다.

-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나는 지금 하는 일에 신경을 잘 못 쓸 정도로 이 일에 매진했다. 한 달 정도 준비했다. 얇은 잡지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굵은 잡지로 만들 줄은 몰랐다. 페이스북으로 홍보를 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몇 명 뽑지도 않는 에디터에 10명 넘게 지원을 했다. 에디터 넷, 디자인 셋, 일러스트레이터 둘 정도로 시작했고, 사람이 많이 모인 김에 판을 키워보자고 합심해 창간호를 내게 됐다.

돈이 없으니 선주문을 받았다. 1000부를 뽑았는데, 700부 정도는 선주문자에게 배포했고 판매요청이 꾸준히 들어와 나머지 재고분도 곧 완판될 것 같다.

다 잡지 취지에 공감하는 메갈리안들이고 저마다 생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다.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정말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지원을 한 거다. 사는 지역도 다 다르다. 대부분 온라인 회의로 진행돼 우리끼리도 실명을 잘 모른다.

- 반응은?

좋다. 우리가 홍보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이 우리 잡지 홍보글을 쓴 것을 봤다. SNS로 접하는 평가들도 좋다. 판매 실적도 좋다. 분노라는 사소한 출발이었지만 반응이 좋아서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익 문제만 해결되면 좋겠다. 지금 수익으로는 지속가능하기 힘든 편이다. 나중에 여력이 되면 광고를 받을 생각도 하고 있다. 광고는 탐폰같은, 사심 기조와 어울리는 상품광고를 받으려고 한다.

- 메갈리아 용어의 폭력성 문제가 있었다. 이 잡지도 그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두 가지 불편함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불편함이 다를 거다. 남자는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나를 죄인으로 만드냐’는 불편함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누리는 특혜가 있으니 비유하자면 원죄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원죄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면 왜 나를 죄인으로 모느냐가 아니라 그래서 이 사회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물어보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아군이라면 '김치녀'란 말을 안 쓰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이렇게나 많은 아군이 있는데 여성혐오 문제가 왜 이렇게까지 왔을까 싶다.

여성들도 메갈리아 언어를 불편해한다. 폭력적이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다.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일단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애초에 기존 사회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이를 정반대로 비튼 메갈리아의 언어도 폭력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또 ‘나는 그동안 잘 살아왔는데 얘네가 난리치니까 불편해졌어’라는 마음도 있는데, 이건 메갈리아가 불편한 게 아니라 사회가 불편해져서 메갈리아가 불편해진 거다. ‘사회가 이렇게나 문제구나’라고 느끼면 피곤하고 예민해지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원인을 메갈리아의 말로 돌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 혐오에 혐오로 맞설 수 있냐는 지적이 있다.

사심은 ‘미러링’으로 여성혐오를 계속 얘기할 거다. 미러링은 원본이 원래 폭력적이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자극적이니까 큰 관심을 끌 수 있기도 하다. 미러링이 없으면 메갈리아는 기존 여성운동과 다른 점이 없고 언론의 관심도 받지 않았을 거다. 여성혐오가 큰 주목을 받은 이유엔 ‘미러링’이 있다.

미러링을 자꾸 남성혐오로 이해하는데, 미러링의 더 중요한 목적은 여성들을 자각시키는 것에 가깝다. ‘씹치 타도’가 아니라 여성의 변화에 있다. 메갈리아나 사심의 대상은 여성들이다. 메갈리아는 ‘누구나 다 자신의 코르셋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코르셋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다. 예를 들면 ‘여자는 나약해’ ‘여자는 일을 못 해’ ‘왜 밤길에 짧은 치마를 입고 돌이다니냐’ 등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미러링은 각자가 어떤 코르셋에 갇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다.

- 초기보단 메갈리아운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타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메갈리아도 폐쇄적인 집단으로 고립될 거란 지적이 있다.

초기엔 충분히 자극적이고 신선해서 관심을 크게 받았다. 아무리 큰 자극이라도 시간이 가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활동 무대를 넓히는 방식으로 사심과 같은 잡지가 있을 수 있다. 메갈리아는 ‘소라넷 폐지운동’을 오래전부터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경찰청장이 폐지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메갈리아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직 충분히 관심을 받고 있고 고립되지 않은 것 같다.

메갈리아가 자신들의 방식을 지나치게 남에게 요구하면 고립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은 절대로 고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목소리를 통해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하나둘씩 노출이 되는 거고 점차적으로 사회가 변해갈 거라 본다.

- 사심도 메갈리아에서 연장된 운동으로 보이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남녀가 동등한 인간이라 말하는 페미니즘은 개인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담고 있는 언론은 한국에 없다. 사심은 페미니즘을 말하는 잡지가 될 것이고, 미러링이라는 진입장벽이 낮은 수단을 이용해 여성들의 코르셋을 좀 더 허무는 잡지가 되려 한다.

- 다음 호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아까 말했듯이 한국 사회가 너무 여성혐오에 노출돼있어 무엇이 혐오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사회다. 이 문제를 쉽게 얘기하기 위해 이번 호엔 ‘선녀와 나무꾼’이란 동화를 끌어왔다. 선녀는 강간, 몰카, 억지 시집살이의 피해자면서도 마지막엔 ‘도망간 나쁜 년’으로 그려진다. 선녀와 나무꾼 같은 동화에 노출되면 폭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게 된다. 이를 주 컨셉으로 잡고 준비하고 있다. ‘몰카반대’도 주요한 소재로 잡았다.

앞으로 두 달에 한 번씩 낼 예정이고, 10월에 발간됐으니 12월에 책을 낼 예정이다. 화보촬영은 다 끝난 상태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12월 호도 선주문을 받아서 낼 것이다.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을 받고 있다. 주소는 http://megalfb.wix.com/forsi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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