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조계종 화쟁위원회에 평화시위를 위한 중재를 요청했다. 평화로운 집회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물대포 이용과 차벽 설치를 중단해야 한다는 우회적인 메시지다. 집회의 폭력성이 부각되면 집회의 명분이 퇴색한다는 점에서 평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이 평화집회를 강조하는 것은 수세적 자세 이상의 의미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경찰은 강경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지난 14일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한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데도 경찰청장은 “과잉진압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경찰은 경찰 1000여 명을 동원해 민중총궐기 참가자를 수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평화집회’ 기조를 내걸든, 화쟁위를 통해 정부와 만남을 하든 2차 민중총궐기에도 불법적 차벽과 물대포가 등장할 것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집회라는 점을 내세운다면 집회 측과 경찰 간 갈등이 격화될 시 ‘폭력집회’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다. 어떻게든 충돌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법시위 프레임’에 발목잡히는 것이다. 시민적 저항권으로서의 대응조차 불법이자 폭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으로 통한다. 이런 구조에서 평화는 어떤 물리적인 폭력도 없는 상태를 뜻한다. 평화의 사전적 의미에 얽매이면서 집회의 자유가 그만큼 더 좁아지는 것이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보성지역 농민 백아무개씨와 그를 구조하려는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중의소리
 

경찰은 ‘살인진압’을 벌였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직사로 맞아 사경을 헤매는 농민 백남기씨의 경우가 실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평화집회를 약속하는 것이 실효성있는 대응책인지 의문이다. 심지어 경찰은 집회 자체를 불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쉽게 말하면 떡 줄 사람은 마음에도 없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집회’를 제안해놓고 예기치 않는 충돌이 벌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화살은 민주노총에 쏟아질 수 있다.

수세적인 대응책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로 다양한 전술전략에 대한 고민이 제시된다. 경찰 차벽이 통제되지 않는 이상 집회는 계속적으로 봉쇄될 것이다. 봉쇄된 공간에서 집회 측과 경찰이 충돌하는 상황도 반복돼 불법·폭력 집회라는 규정도 지속될 것이다. 반복되는 구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집회 주최 측이 평화집회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수세적 위치에 머물지 말고 봉쇄에 대한 대응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라리 집회시위를 보장하라는 취지로 전 국민적인 공권력 불복종 운동을 하자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낫다. 현재의 조직력으로 차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더 많은 이들의 참가를 유도해 더 응집력이 강한 구호를 외치는 대안도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대응책은 민중총궐기 대회를 뛰어넘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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