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선생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임에도 ‘살아있는 자로서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냐’며 보상을 거부하신 분이다. 학교에 계실 때는 3번이나 제적 당하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섰으며...”

백남기씨 가족 “시민들 행동에 감사, 아버지 꼭 일어날 것”

민중총궐기 때 물대포 진압으로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 앞에서 200여명의 인파가 21일 늦은 오후 집회를 열었다. 백남기씨의 쾌유를 빌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사회자가 백남기씨의 약력을 읽어나가자 한 쪽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 이목이 모아졌다. 백남기씨의 막내딸 백민주화씨였다. 장남인 백두산, 둘째인 백도라지씨도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14일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의 상태는 아직까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참가자들 앞에 선 백도라지씨는 “이렇게 여러 후배들과 시민들이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에 행동을 해주신 걸 아빠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면서 “날이 쌀쌀한데도 찾아와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도라지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대자보를 보고 감동했다. 아빠가 분명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고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옆에서 말 없이 눈물을 흘리기만 했던 백민주화씨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시민이자 농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건 데 왜 차가운 바닥에 피까지 흘리며 누워있어?”라며 “눈 번쩍 떠서 다시 제자리로 꼭 돌아워줘. 꼭”이라는 편지글을 올려 많은 격려를 받기도 했다.

   
▲ 백남기씨의 자녀들. 백도라지씨(맨 오른쪽)가 서울대 병원까지 행진을 한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14학번의 ‘대자보’로 시작된 연대

이날 시민과 농민들, 백남기씨 가족을 움직인 행진은 대자보 한장에서 시작됐다. 이 대자보를 쓴 이는 시민사회단체 간부도 학생회 간부도 아니다. 대학에 입학한지 2년도 채 안 된 중앙대 사회학과 14학번 신지영씨다. 대자보는 ‘여기 중앙대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에 맞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일요일 낮 12시 중앙대에 모여 병원으로 함께 걸어가자”는 내용이 담겼다. 

21일 낮 12시, 200여명이 모여 제안은 현실이 됐다. 앞서 중앙대 학생들은 중앙대 민주동문회에 연대를 요청했다. 중앙대 민주동문회 소속 홍성범씨는 “쓰러진 농민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책임감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이 우리학교의 첫 민주총학생회를 건설한 선배였다”면서 “후배들의 제안을 받고 함께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지영씨는 “사회를 위해 헌신하다 쓰러진 선배의 쾌유를 바란다. 이제 같은 이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벌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다”며 심경을 밝혔다. 

낮 12시20분, 농민·시민·대학생 등 200여명이 행진을 시작했다. 한강을 건너 보신각을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코스였다. 모두 백남기씨의 삶과 관련이 있는 장소였다. 특히 한강대교를 건너는 데는 의미가 깊다. 전두환 군부독재가 들어선 1980년, 중앙대 학생 4000명은 한강도하 투쟁을 벌였다. 백남기씨는 당시 직접 상여를 만들고, 대오를 이끌었다. 참가자들이 한강 다리위에 올라서자 중앙대 민주동문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백남기 선배님께서 1980년대에 우리 의혈 학우들과 이 다리를 건너갔던 그때를 생각하게 된다. ‘중앙대 의혈이 한강다리를 건너면 역사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이 다리를 앞장 서 걸었던 선배께 감사함을 느낀다.”

   
▲ 중앙대학교 학생과 민주동문회를 주축으로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진 백남기씨 쾌유를 위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살인적 진압해놓고 짐승만도 못한 말 하는가”

대오가 보신각역에 이르자 참가자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백남기씨가 쓰러진 장소였다. 대학생들은 민중총궐기 때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최연재(중앙대 정치국제학과)씨는 “당시 대오 뒷편에 있었다. 계속 물대포가 쏟아지고. 응급차가 자꾸 앞으로 가는데, 그런데도 누가 다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황다본(중앙대 역사학과)는 “살수차 물줄기는 너무 차가웠고, 뭘 섞었는지 너무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함께 참여한 선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캠퍼스에서 여기까지 걷는 동안 총궐기 그날이 계속 떠올랐다”고 말했다. 

15학번 새내기인 장성민(중앙대 사회학과)씨는 중앙대를 상징하는 ‘의혈’깃발을 들고 대오 맨 앞에 있었다. 장성민씨에게 심경을 묻자 “좋은 일이 아니다보니 행진하는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후 그는 학생대표 발언자로 나서 “백남기 선배님은 총궐기 때 맨 앞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뒤의 사람들을 보호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후배로서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 중앙대학교 학생들과 민주동문회를 주축으로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진 백남기씨 쾌유를 위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이날 행진에 함께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의 진압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민중총궐기 당일 미류 활동가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행진대오가 차벽 앞에 온지 10분도 되지 않아 자진해산요청 절차도 없이 살수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직사였다. 모두 불법이다.” 가장 문제가 된 물대포 진압에 관해 미류씨는 “한사람을 얼마나 쫓아가나 동영상 찍으려고 핸드폰 들었다. 30초가 지나도 1분이 지나도 한 사람을 쫓아갔다. 부상자들도 쫓아다녔다. 아수라장을 만든 건 바로 경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경찰은 과잉진압의 책임을 지는 대신 집회 참가자들의 불법폭력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여전히 과잉진압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지난 20일 새누리당에서는 “백남기씨가 집회 참가자에게 맞아 다친 걸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행진을 하던 전기환 전국농민회 부의장은 “양심은커녕 기본도 안 돼 있다. 세상에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영상 봐서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짐승만도 못한 말을 할 수 있나”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박정희에게 고통 받았는데, 딸에게 죽을 위기에 처해” 

이날 행진 도중에 ‘농민가’, ‘광야에서’, ‘솔아솔아 푸르른솔아’ 등 다양한 노래가 나와 각계각층에서 참여했음을 드러냈다. 그 중에서도 농민가를 힘차게 부르던 농민들은 ‘농민을 죽이지 마라’는 문구가 쓰인 쌀포대를 덮어 쓰고 행진을 했다.

백남기씨의 30년지기인 정현찬 카톨릭 농민회 회장은 “선생은 늘상 남을 도왔다. 다른 농민들 형편이 어려운 걸 보고, 참지 못해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라며 백남기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밥상용 쌀 수입 그만하고 무분별한 기초농산물 수입 막아서 농민들 마음 놓고 농사짓게 달라고 한 게 죄인가.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물대포로 대답했다. 박정희에게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딸에게 물대포를 맞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재해식 전국농민회 부경동맹 전 의장은 백남기씨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 “내는 경상도에서 농사를 짓고. 백남기 어르신은 전남 보성에서 농사짓는다 캤다. 그 사이에 천리 길이 있으니까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재해식 전 의장은 행진에 참가했다. 그는 ”백남기 어르신은 농민들을 위해, 밥상에 올라오는 쌀 수입하기 말라카다는데 그걸 살수차로 쏘고, 그것도 모자로 폭도로 몰았다 아입니까”라며 행진에 참가한 배경을 밝혔다.

   
▲ 중앙대학교 학생과 민주동문회를 주축으로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으로 쓰러진 백남기씨 쾌유를 위해 서울대 병원까지 행진 후 마무리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중앙대 민주동문회 소속인 안희만씨는 “죄스럽다”며 입을 뗐다. 그는 행진 하루 전인 20일 밤 전남 나주에서 올라왔다. 87년 6월항쟁에 참여했지만, 이후에는 평범은 삶을 살았다. 민중총궐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안희만씨는 “선배님 약력을 보며 너무 죄스러워서 올라왔다. 자녀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민주주의, 경제발전이 되고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농민들 살려달라. 쌀수입 개방 멈춰달라. 이게 물대포로 직사해서 살인을 해야 될 정도의 요구인가. 이 후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영호 전국농민희 의장은 한강을 넘으며 중앙대 민주동문회로부터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중앙대 ‘의혈’이 한강다리는 넘으면 역사가 바뀐다’는 말을 아까 들었다. 우리 농민은 학생, 시민과 함께 그 다리를 오늘 넘었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책임자가 처벌되고,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이 멈추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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