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민중총궐기'에서 보인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대해 ‘폭력·살인 진압’이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근거리 직사 살수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근거리 직사 금지조항은 2008년 12월 전까지 경찰의 경찰장비관리규칙에 포함돼 경찰에게 구속력을 발휘한 바 있다. 경찰의 직사 살수로 인해 한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민중총궐기 인권침해감시단은 20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 ‘11/14 경찰, 이미 공권력이 아니다’를 열고 경찰의 폭력적 집회 대응 실태를 고발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 감시대응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인권침해감시단은 당일 경찰의 집회 대응 시나리오, 차벽·물대포·PAVA최루액 사용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며 공권력 남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삭제된 단거리 직접 살수 금지 조항, 다시 회복돼야

경찰은 과거 ‘20m 이내의 근거리 시위대를 향하여 직접 살수포를 쏘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둔 적이 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시위’ 정국 동안 경찰이 5~10m 떨어진 시민들을 향해 직사로 물대포를 쏜 일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규정 위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경찰은 2008년 12월 이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논란을 피해갔다. 이후 이 조항은 경찰의 살수차 운용 지침에 다시 삽입되지 않았다.

 

   
▲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직사 살수. (사진=기자간담회 자료집)
 

민중총궐기에서 드러난 경찰의 직사 살수 실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농민 백남기씨의 경우는 대표적이다. 물대포를 머리에 직사로 맞고 쓰러진 백씨의 영상을 보고 많은 시민이 공분을 터뜨렸다. 인권침해감시단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부터 기자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직사·조준 살수가 이뤄졌으며 강도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의 시민이 팔목 골절, 두피 열상, 홍채 출혈 등의 부상을 입었다.

현재 살수차 운영 지침엔 ‘물포의 거리와 수압 등은 현장 상황을 고려해 최소한도로 한다’가 명시돼있다. 살수차 금지 거리를 명확히 지정하는 게 아니라 경찰에게 상황을 판단할 권한을 준 것이다. 또한 거리에 따라 수압을 지정했지만 그 수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검증하기는 어렵다. 지난 14일에도 경찰은 “2,500~2,800rpm를 유지했다”고 밝혔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백씨와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거리 직사를 원천적으로 규제하는 규정이 있어야 할 이유다.

차벽 설치도 위헌적… 집회 시작도 전에 차벽 설치됐다

민중총궐기에 등장한 또다른 집회대응장비는 ‘차벽’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차벽 설치 요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 헌재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차벽 이외의 수단으로는 막을 수 없는 중대한 위험이 급박하고, 명백하게 존재하여야 차벽을 설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지난 14일 오후 2시 25분 동화면세점 옆에서 대기 중인 차벽 차량. (사진=기자간담회 자료집)
 

인권침해감시단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경찰 차벽은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설치됐다. 경찰은 민중총궐기 집회가 시작한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태평로 일대에 차벽을 설치했다. 3시 무렵엔 광화문광장과 태평로를 일직선으로 차단하는 차벽 설치를 완료했다. 당시엔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은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진행 중이었고 건설노조 등 사전집회를 마치고 오는 참가자들이 태평로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안국역 일대, 종로구청 사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안국역 일대엔 오후 4시경부터 차량이 통제됐다. 종로구청 사거리는 한겨레 등 언론이 행진대오가 도착하기 전부터 차벽이 설치돼있었다고 이미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모두 집회참가자가 거리로 나오기 전에 설치된 것으로 ‘차벽 설치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경찰차벽으로 인해 마을버스조차 길을 돌아가야 해 통행에 막대한 불편도 초래됐다.

인권침해감시단은 이에 대해 “집회 금지와 해산의 요건은 ‘공공의 안녕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지만 차벽 설치의 요건은 ‘금지나 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라며 “(경찰의 차별 설치는) 명백히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PAVA, 폐·점막에 독성… 반복적 노출 시 장기손상을 초래할 수 있어”

경찰은 살수용 물에 쓰인 최루액 PAVA에 대해 ‘피부와 안구에 대한 경미한 자극 이외의 특별히 심각한 독성은 보고되어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뉴질랜드 토끼실험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인권침해감시단은 “PAVA는 유해물질이라 인체 실험 데이터가 없다”고 밝혔다.

 

   
▲ 최루액 PAVA가 용해돼 있어 물 색깔이 하얗다.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살수한 후 바닥에 물이 고인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구체적인 위험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PAVA가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감시단은 보다 설득력있는 근거로 ‘물질안전자료’를 제시했다. 이 자료는 화학물질의 특성과 위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으로 제조사가 정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물질안전자료는 “(PAVA가) 피부·눈 접촉 시 건강에 매우 유해하며 심각한 관량 노출 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폐와 점막에 독성을 가지고 있고 반복적으로 이 물질에 노출될 시 신체의 쇠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북아일랜드는 우리와 같이 살수차에 PAVA를 사용하는 나라이지만, “PAVA는 교도소 폭동 시와 같은 개인이나 그룹의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군중 해산 전술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규제하고 있다.

경찰은 이미 민중총궐기에 어마어마한 양의 PAVA를 사용했다. 경찰은 살수 대응에 물 18만 2100ℓ(182t), 물에 섞는 최루액인 PAVA 441ℓ, 살수차용 색소 120ℓ, 캡사이신 651ℓ 등을 사용했다. 지난 4월18일에 사용된 물 3만 3,200ℓ, PAVA 30ℓ보다 각각 5.5배, 14.7배 많은 양이다.

감시단은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경찰 폭력은 어떠한 형태로든 용납될 수 없다”며 “비무장한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분사되고 있는 최루액과 캡사이신은 사용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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