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전교조 위원장의 “(우리가) 빈민과 함께하고 있다”는 발언에서 ‘빈민’을 ‘인민’으로 왜곡해 보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일보는 홈페이지에서 해당 사설을 삭제했으며 21일 신문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교조는 “피해가 크다”면서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20일 사설에서 “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14일 불법 시위 직전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 민중, 인민, 시민, 청년 학도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망해버린 엉터리 이념을 남의 집 자식들에게 심어 놓으려는 교사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민’이라는 단어를 통해 색깔론을 제기한 것이다. 앞서 김성모 조선일보 기자는 19일 기사에서 “18일 본지가 입수한 변 위원장의 대회사 녹취 파일을 분석했다”면서 관련 발언을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20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위원장은 ‘인민’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총궐기에 참여한 이들을 한번씩 호명한 것이고, 맥락상 민중이라는 말을 했는데 굳이 인민이라는 말을 하는 게 적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20일 조선일보에 정정보도를 요청했으며 인터넷에 올라온 해당 사설의 삭제를 요구했다.

   
▲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녹취록을 전문가에 의뢰해 분석을 마친 다음 오후5시52분 경 전교조에 사과했다. 해당 사설을 작성한 김민철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녹취록을 전문가에게 의뢰해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일부러 왜곡한 게 아니라 우리가 ‘빈민’을 ‘인민’이라고 잘못 들은 것”이라며 “해당 부분이 파열음이라서 잘 안 들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21일 지면을 통해 정정보도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정정보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피해를 당했고 관련 보도가 다른 언론에도 인용되기도 했다”면서 “정정보도문 게재여부와는 별도로 언론중재위 제소 및 법적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관련 보도 이후 뉴데일리와 문화일보가 조선일보를 인용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민철 논설위원은 “전교조에서 사설 크기로 정정보도문을 실어달라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홈페이지. 해당 사설이 삭제된 상태다.
 

이와 별개로 설령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색깔론을 제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북한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를 쓰고 우리나라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쓴 건 굳어진지 오래”라며 사상을 의심했지만 ‘인민’은 피지배계층을 의미하고 ‘국민’은 한 국가의 국민을 뜻하는 표현으로 국가주의가 내포된 단어로 엄연히 다른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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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 역시 필요할 때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동아일보 허승호 논설위원은 지난해 1월에 쓴 횡설수설에서 “민주(民主)는 글자 그대로 ‘인민이 주권자’라는 의미”라고 썼다. 이진녕 논설위원이 지난해 2월에 쓴 횡설수설에서 “군주는 지배계층(귀족)보다 피지배계층(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조언했다”면서 피지배계층을 ‘인민’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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