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성 포르노 피해자, 나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 ‘직장 상사가 당신을 성추행한다면?’,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선생님! 저를 만지지 마세요’

지난 7월21일부터 5주간 광복 70주년 특집을 제외하고 MBC ‘PD수첩’이 연달아 내보냈던 프로그램 제목들이다. 물론 PD수첩이 이처럼 자극적이고 연성화된 아이템만 방송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난 2012년 파업 기간 중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고, 지난해 10월 교양제작국마저 해체하면서 MBC의 시사교양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PD수첩’의 경우에도 시사교양국에서 시사제작국으로 조직개편이 단행된 이후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시사IN이 매년 실시하는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도 ‘PD수첩’은 지난 2010년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2위(11.8%)였지만, 조직개편 단행 후 2012년과 2013년 2%대로 급락, 5위 밖으로 밀려났고, 올해 역시 순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또 올해 방송문화진흥회가 발간한 ‘2014년도 MBC 경영평가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시사교양부문에서 시청률 상위 20위 안에 들었던 MBC 프로그램은 ‘리얼스토리 눈’(11위)이 유일했다. 그에 비해 ‘인간극장’과 ‘러브인아시아’, ‘긴급출동24시’ 등 KBS 프로그램은 16편이나 20위권 들었으며, SBS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 등 3편이 높은 시청률과 점유율을 보였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MBC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시청률 상위 20위 안에는 단 1편씩만 진입해 시사교양 장르에서의 지속적인 약세를 보여줬다”며 “전통적으로 MBC 시사·교양의 간판 프로그램이던 ‘PD 수첩’과 ‘시사매거진2580’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7월28일 MBC ‘PD수첩’ 방송 갈무리
 

시청률 20위 안 유일한 ‘리얼스토리 눈’도 외주제작

5개 외주제작사가 참여해 만든 ‘리얼스토리 눈’이 가까스로 MBC 시사교양 명맥을 유지하는 동안 교양제작국에서 제작하던 ‘불만제로 UP’과 ‘원더풀 금요일’ 등 자체제작 교양 프로그램들은 폐지됐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 방송된 대한민국 최초의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이자 MBC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던 ‘불만제로’는 5명의 교양 전문 PD들이 중심이 돼 많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호평을 받았고 한국PD대상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을 수상했음에도 기자와 PD의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폐지됐다.

당시 교양국 PD들은 “사측은 PD들과 어떠한 ‘협의’ 없이 프로그램 폐지를 통보했다”며 “파업에 참가했던 교양국 PD를 몰아내는 데 혈안이 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실제 ‘불만제로’ ‘자동차보험의 두 얼굴’ 편으로 방통심의위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았던 이춘근 PD는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잇몸약의 배신’ 편으로 한국PD연합회 작품상을 받은 이우환 PD는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이 났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조능희 본부장)는 지난 7월 노보를 통해 “현재 MBC 시사교양 PD들은 부당한 인사조치로 보도국 혹은 보도본부에서 쫓겨난 기자들과 달리 원래 소속돼 있던 시사교양국 자체가 분해돼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라며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된 시사교양 PD들도 다수 있고, 아예 상암동 밖에서 사업 기획 등 업무에 배치된 PD들만도 10명 가까이 된다”고 밝혔다. 

노조는 “과거 MBC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선구자였지만, 지금은 세월호 참사 1주기에도 단 하나의 프로그램조차도 방송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며 “방문진 경영평가보고서에서도 보듯 MBC에서 시사교양 PD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가히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것이 안광한 경영진이 의도한 시사교양국 해체의 결과이자 공영방송 MBC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8월24일 MBC ‘다큐스페셜’ 방송 갈무리
 

MBC의 한 PD는 “교양국이 없어지면서 시사교양은 확장은커녕 현상 유지도 안 되며 거의 절반가량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제작 인력들은 비제작 부서로 떠돌면서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몇몇 프로그램도 외주로 막느라 헉헉대고 있고 장기 기획이나 돈이 들어가는 제작은 더더욱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능희 본부장은 1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1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기자들이 제작하는 ‘시사매거진 2580’에 한 꼭지가 나간 것밖에 없다는 것이 교양국 해체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교양국 피디들이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은 PD수첩과 다큐스페셜 등을 빼고 거의 전멸했지만 거기도 민감한 이슈는 발제조차 못 하고 있고 사회적 의제는 다 피해 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지금 MBC 시사교양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프로그램 없이 근근이 방송의 명맥만 이어가며 제작 현장에 있어야 할 PD 숫자는 줄이고 외주제작으로 주로 운영하고 있다”며 “외주 제작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시청률이 높다거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등 성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외주 제작은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도 윗선에서 훨씬 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특집 다큐는 ‘전무’, 시사토론 프로는 ‘편향’
“신뢰도 추락하고 열패감 심해졌다”

앞서 노조는 지난 4월 민실위 보고서에서 MBC 교양국 해체가 낳은 논의 구조의 실종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민실위는 “1년 전 프로그램의 재방송, 그것도 세월호의 ‘세’자는 단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은 채 단순히 외국의 재난 대처 사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재방영하는 것 말고 세월호 참사 관련 다큐멘터리는 MBC에서 전무했다”며 “이 현실이 교양제작국이 해체된 지 6개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맞이한 MBC의 민낯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KBS ‘추적 60분’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멈춰버린 1년’을 다뤘고, 이어 2주 연속 ‘안전기획 2부작’을 특집으로 다루며 ‘왜 참사는 반복되나’와 ‘참사의 전조들’을 방송했다. 아울러 세월호 특집 다큐멘터리 2부작 ‘천개의 바람, 천개의 기억’과 ‘시사기획 창’의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남긴 것과 해결해야 할 것에 대한 심층 리포트를 방영했다. 

SBS는 지난해 11월 세월호 수색 작업이 종료됐을 때 방송된 특집 다큐멘터리 ‘망각의 시간, 기억의 시간’과 구조작업 이후 민간 잠수사들의 애환을 다룬 ‘상처뿐인 잠수사, 그는 왜 법정에 섰나’(뉴스토리) 편을, 또 9명의 세월호 실종자와 그 가족의 삶을 조명한 ‘세월호 1주기 여전히 4월 16일을 살아가는 사람들’(궁금한 이야기 Y) 편 등을 방송했다.

이와 관련해 민실위는 “교양국 해체 이후 시사제작국과 콘텐츠제작국의 PD들에 따르면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 그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상황은 무엇 때문이냐”며 “‘PD수첩’에서는 침몰 초기 단 일주일의 취재와 방송을 끝으로 세월호 관련 취재는 불허됐고, ‘MBC 다큐스페셜’의 경우 국장의 제작 지시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작이 번복되는 과정을 거쳐 결국 100일 만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지만 담당자가 교체되는 수난을 거쳤다”고 밝혔다. 

   
지난 3월22일 MBC ‘이슈를 말한다’ 방송 갈무리
 

MBC의 또 다른 PD는 교양국 폐지 이후 제작을 하는 주체로서 PD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갈수록 원자화돼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예전엔 어떤 사안이 생기면 교양국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있었고, 이를 해치는 일이 벌어지거나 큰 사건이 터지면 말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집단의 힘으로 분출되고 창작의 동기가 됐었다”며 “지금은 그런 의제를 모아가는 힘 자체가 없어졌고 개별 PD들의 힘으로 극복이 안 되다 보니 원자화된 PD들의 프로그램은 사회의 중요 이슈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지금 PD수첩이나 다큐스페셜을 보면 사회적 이슈와 관심사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고, 세월호나 국정화 등 국민의 관심사에 대해선 기계적 균형성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국정화 등 얘기를 꺼내고 싶지만 일선의 PD가 관점을 잡아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자체를 위에서 막으니 돌파할 힘이 없어 자기검열은 심해지고 열패감이 팽배해졌다”고 덧붙였다.  

시청자 만족도 꼴찌인데 사측은 “채널 경쟁력 강화”

게다가 외주제작사가 만드는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 등 시사토론 프로그램들도 편향된 패널 구성과 진행 방식으로 논란이 됐다.

민실위는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비롯한 노동계와 정부 갈등이 토론 주제였던 4월26일 방송에선 노사정 대타협이 깨진 이유에 대해 정부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장관의 일방적 설명 이후 새누리당 의원의 옹호가 이어졌고, 간간이 야당 의원의 반론이 더해졌다”며 “새누리당 의원은 ‘노사정 대타협이 깨진 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주장을 펼쳤지만,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야 할 당사자인 노동계 출연자는 없었고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청자들은 정부의 주장을 편파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이어 “‘이슈를 말한다’에서 시민사회의 여론은 완전히 배제됐다.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이라는 이슈를 제기한 홍준표 도지사는 나올 수 있었지만 반대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시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나올 수 없었던 프로그램”이라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인 세월호 1주기 주간에는 관련 토론은 물론 당사자 한명도 부르지 않았다. ‘한 주간의 가장 화제가 됐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이슈’를 말한다면서 정작 ‘이슈’를 피하는 꼴이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5일엔 MBC 시사제작국의 정치 편향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연국 전 시사제작국장이 청와대 신임 대변인으로 직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MBC 사측이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자 MBC 내부구성원들이 “공영방송 MBC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회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청자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정 전 국장은 올해 초부터 MBC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 등을 담당하는 시사제작국장 자리에 있으면서 ‘100분토론’ 진행도 맡아 왔다. 아울러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에는 선거기획단장으로 선거방송을 진두지휘했고, 이후 보도국 취재센터장을 맡아 MBC 뉴스 취재를 총괄하기도 했다.

   
지난달 13일 MBC ‘100분 토론’ 방송 갈무리
 

한때 ‘PD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누렸던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몰락 때문일까. 시사저널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조사에서 MBC는 올해 7위로 추락했고 영향력 부분도 2011년 42%에서 올해 18.8%로 떨어졌다. 한국기자협회의 올해 신뢰도 조사에서도 MBC는 1.1%를 받는 데 그쳤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5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로 MBC를 꼽은 기자는 0명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방송프로그램 시청자 만족도 평가지수’ 조사에서도 MBC는 지상파 방송3사 4개 채널 가운데 지난 5년 연속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방송 공영성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공익성·공정성·신뢰성·유익성·다양성 5개 항목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반면 MBC 사측은 지난달 2일 보도자료를 내 “2014년부터 최근까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및 TNMS 등 시청률 조사 기관의 각종 조사 결과에 따르면 MBC는 예능,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면서 채널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드라마와 예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은 보도와 시사 부문의 경우에도 앞으로 긍정적 전망을 낳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C는 최근 신뢰도 조사와 관련해선 “몇몇 MBC에 대한 신뢰도 조사는 응답자의 주관적 느낌을 물어보거나 조사 대상도 랜덤 방식으로 추출된 표본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표본을 설정한 조사라 신뢰 수준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MBC에 대한 신뢰조사의 경우도 미디어 운영방식이나 방송 성격이 다른 방송임에도 포털과 지면신문 등과 동일 선상에서 평가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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