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디어교육을 교육현장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산업적 위기를 겪는 언론 입장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는 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정치사회 교육과도 단절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 미디어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의 미디어교육 현황을 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디어교육을 위한 제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국 미디어교육의 롤모델은 프랑스다. 언론진흥재단은 매년 프랑스 교육문화부 산하 끌레미(프랑스 국립미디어센터)에 연수를 다녀오는 등 이른바 ‘선진 사례’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끌레미 관계자들조차 한국정부가 프랑스식 미디어교육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미디어교육의 ‘목표’가 없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끌레미를 설립할 당시 ‘시민의식 향상’을 미디어교육의 핵심 목표로 정했으며 4~5년 주기로 사회적 필요성을 파악해 세부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의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과 같은 모호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고, 기관별로 설정한 목표도 제각각이다. 실제 미디어교육은 직업체험교육이나 신문·방송만들기가 주가 되고 리터러시 교육은 부수적인 경우가 많다.
 
지난달 27일 끌레미 사무실 취재를 마친 후 캐롤 엘피케 끌레미 미디어교사 교육 담당은 푸념 섞인 이야기를 했다. “한국 정부의 미디어교육은 문제가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는 “최근 한국정부쪽 사람들이 다녀갔다. 한국정부는 프랑스의 미디어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면서 미디어교육 예산이 많다고 자랑을 하며, 교실마다 스크린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30년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간애’를 위한 교육이었고,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와 ‘디지털 책임감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단순히 예산이나 시설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미디어교육이 제대로 된 ‘목표’없이 표류하고 있는 까닭은 미디어교육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미디어교육 정책은 30년 동안 끌레미에서 일관되게 수립했다. 끌레미는 또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일선 학교와 가교 역할을 하며 교사를 위한 교재 및 자료집을 만들고 언론주간 등 행사를 기획한다. 신문, 방송, 디지털매체, 게임 등 광범위한 미디어교육을 이 기관에서 담당한다. 유아, 어린이, 청소년 등 연령대별 미디어교육 로드맵 역시 끌레미에서 만든다. 끌레미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셈이다.

   
▲ 프랑스 유아, 어린이, 청소년 미디어교육 목표
 

반면 많은 기관들이 산발적으로 미디어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언론진흥재단은 NIE(신문활용교육)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방송교육을 실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뉴스, 드라마 등 방송콘텐츠와 게임을 통한 미디어교육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터넷진흥원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교육을 담당한다. 목표도 내용도 제각각이고 일부는 중복되기도 한다. 지난 9월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최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반적인 점검을 통해 중복된 사업은 정비하고 각 기관별 특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관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디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양성도 기관별로 제각각이다. 정부기관에서도 방통위와 언론재단이 미디어 강사를 따로 양성하고 있고, 개별 언론사들도 NIE교사들을 뽑고 있다. 언론진흥재단 관계자는 “그동안 신문활용교육(NIE)을 진행하는 언론사들이나 개별 기관들이 양성한 미디어교육 교사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에 투입되고, 교육내용도 부실해 교육현장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언론재단에서 프랑스의 미디어 교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고 체계적인 미디어 강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양성과정은 프랑스와 다르다. 프랑스에서 미디어 교사(코디네이터)는 일반교사와 마찬가지로 5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언론재단의 미디어 강사는 정규직 교사가 아닌 강사이며 교육 기간도 길지 않아 전문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끌레미(프랑스 국립교육미디어센터) 자료실. 사진=금준경 기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미디어교육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없는 건 아니다. 여야에서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이 발의됐지만 3년째 계류된 상태다. 최민희 새청치민주연합의원이 2012년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을 발의했고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대동소이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우선순위에 밀려 지금껏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으며 미디어교육의 컨트롤타워를 방통위로 할지 문화체육관광부로 할지 여야간, 부처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끌레미는 정부산하기관이지만 동시에 독립된 기구다. 일반시민과 미디어업계 관계자, 학자가 주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끌레미와 달리 한국의 미디어교육은 정권에 종속되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다.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역시 청와대가 임명한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해 독립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방통위가 여야 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구이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산하기관장 임명은 위원장 재량”이라며 야당 위원들 몰래 국무총리 비서실장출신 극우평론가 이석우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임명을 강행하기도 했다.

정부에 종속된 미디어교육환경은 제대로 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저해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뉴스를 비교하고, 어떤 정보가 합당한지 선택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때론 정부와 언론의 주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프랑스라고 해서 특정언론을 거론하며 직접 비판하는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여러 미디어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다른지, 왜 논조가 다르게 나타나는지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내용이 많다. 사안과 기사, 매체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내리되,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다.

   
▲ 끌레미(국립교육미디어센터)에서 제작한 학급신문. 일선 학교의 학급신문을 모아 끌레미에서 편집했다. 가정이나 학급 내의 사안을 주로 담는 우리나라의 학급신문과 달리 샤를리 앱도사건,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넬슨 만델라 서거 등 정치사회 현안에 관한 아이들의 견해가 담겼다. 사진=금준경 기자
 

끌레미는 프랑스 방송 떼베생몽드(TV5mondo)와 함께 리베라시옹, 피가로, 르몽드 등 프랑스의 주류신문들이 같은 날 이슈를 어떻게 다른 관점으로 분석하는지 비교하는 DVD를 제작해 교육현장에 배포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특정언론의 기사를 다루는 교육은 많지만 이를 제대로 비평하는 교육은 거의 없다.

미디어 교육은 단순히 신문과 방송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사회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미디오 교육 자체의 ‘비판적 읽기’ 교육도 중요하지만 프랑스에서 미디어교육 체계만 가져온다고 해서 제대로 된 미디어교육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미디어교육이 효과적인 까닭은 능동적인 시민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기존 교육이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민의식’과 ‘인권’, ‘노동권’을 배운다. 고등학교 사회과목 수업 3분의1이 교섭 전략을 짜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교육부는 교사와 학생의 사회참여를 제한하고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는 등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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