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헬.”
소위 ‘언론 고시’생활을 마치고 최종합격통보를 받은 날 가장 많이들은 말이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스포츠 동명’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가 들은 말과 같다. 영화는 실제 연예부 기자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제작한 만큼 ‘언론판’에 막 발을 담근 이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악명 높은 ‘스포츠 동명’에 입사한 도라희는 지인에게 “여기도 겨우 붙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실제 기자 지망생들 사이에 “언시는 2호선”이라는 말이 있다. 1년 동안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1년 후 또 반복되는 사이클을 두고 순환선 2호선에 비유한 것이다. 도라희의 상황은 자신이 원하던 언론사에 합격한 운이 좋은 일부를 제외한 이들의 현실이다. 

도라희가 현장에서 겪는 ‘멘붕’도 실제 수습기자의 것과 비슷하다. 현장에 나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누가 누군지, 뭘 물어봐야 할지 구멍투성이인 자신을 발견한다. 현장 취재를 나갔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한 후 “사람이 많은 게 몇 명인데?”라는 선배의 질책에 그제야 사람 수를 셌다. 영화에서도 도라희가 현장에 나가 부장에게 혼나는 장면도 수습기자의 이런 구멍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부장에게 한 달 동안 ‘깨지고’ 도라희에게 쥐어진 것은 97만원. 현실의 수습기자보다는 짠 액수다. 하지만 보통 언시생들은 수습기자가 되기 전에 1~2번의 인턴기자 생활을 거치는데 보통 이때 받는 월급이 50만원~100만원 사이다. 이때 인턴기자들끼리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 “우리가 이러려고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가서 공부한 거냐”라는 푸념이다.  

   
▲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예고편 화면 갈무리.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는 이렇게 기자초년생들의 공감을 부른다. 현장을 처음 나가보는 수습기자가 당황하고 혼나는 일화는 공감과 웃음을 부른다. 하지만 노동착취와 폭력적 언행이 그저 수습기자가 정기자로 나아가기위해 견뎌야 할 ‘장치’로 활용되는 것은 어떤가. 도라희는  거칠고 폭력적인 수습기자 시절을 통해서만 특종을 치는 기자로 성장하는 듯 보인다. 영화는 내내 그 세계가 부당하다기보다 이 세계를 통해서만 진짜 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기자를 다룬 영화들은 기자의 세계를 아주 거칠게 묘사함으로써 낭만을 부여한다. 영화 속 부장 하재관(정재영)같은 캐릭터도 그 연장 선상이다. 앞에서는 욕설과 인격모독을 하고 뒤에서는 후배를 위하며, 허름한 국밥집에서 후배를 먹이는 전통적인 ‘츤데레’ 기자상. 기자 영화는 거친 선배의 모습, 현장에서의 몸싸움을 부각하고 취재원에게 취조하듯 묻는 기자들의 모습을 멋들어지게 그린다.

문제는 사실보다 더 과격하게 기자 생활을 묘사하는 것이 실제 언론판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묵인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두 시간 잠을 자고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 욕설과 인격 모독적 발언을 남발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최근 들어서는 수습기자교육에 사스마와리(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취재를 배우는 것)과정을 빼거나, 마와리 과정 중에도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는 해준다(?)고 하지만 여전히 언론노동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예고편 화면 갈무리.
 

언론노동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3년 KBS ‘다큐 3일’의 ‘경찰서 기자의 다큐 3일, 초심’편, 2014년 한국일보 ‘돌고, 돌고, 나도 돌고… 수습기자의 노동요’ 기사, 2015년 오마이뉴스 ‘수습기자 때 가장 많이 한 말, 자살하고 싶다’기획보도 등 수습기자의 노동착취 사례는 매년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노동법 준수는 이미 포기했고, 인격적 대우만 해준 다해도 감사한 실정이다. 

기자의 거침을 강조하는 판타지 영화들은 마와리를 돌지 않았거나 인격적 대우를 받은 일부 수습기자들에게도 찝찝함을 남긴다. 스스로에게 ‘마와리를 돌지 않은 나는 진정한 기자가 아닌가?’, ‘거칠게 당하지 않은 나는 기자로서 자질이 길러지지 않았는가?’와 같은 물음을 던지게 한다. 기자에 대한 이런 판타지는 거칠고 폭력적인 수습 기간을 거치지 않은 기자는 ‘비정상’처럼 만든다.  

기자로서 자질을 키울 교육과 언론노동자로서 권리를 지킬 노동환경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이제껏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배워왔더라도 이를 가능케 할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기자-판타지 영화는 거칠고 폭력적인 수습기자의 삶을 낭만화하고 정기자로 가는 관문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제 ‘영화’같은 소리 하고 있는 것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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