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의 발행을 국정체제로 전환한 것에 대해 천주교 수도자들이 가정사를 국가의 역사로 변질시킬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와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등 천주교 남녀 수도자들은 11일 밤 ‘올바른 것을 역겨워하고 올곧은 것마다 왜곡하는 우두머리들아(미카 3,1)’라는 성명을 내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국사과목 국정교과서 발행에 대해 “우리 모두가 심히 염려하는 것은 국정화를 통한 한 개인 인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라며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수년 전 그러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천명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자들은 “한 개인의 가정사가 절대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될 수 없다”며 “겉으로는 역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기억에서 강제적으로 지우고 잘못된 역사를 주입시켜 실상은 장기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야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미 역사적과 검증과 성찰이 끝난 5·16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지극히 한 개인의 가정사를 국가의 역사로 변질시키려는 음모에서 비롯됐음을 잘 알기에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며 “만일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그 불의함을 절대로 지켜만 보지 않았고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경험했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지난해 8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남녀 수도자들이 벌인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단식기도회. 사진=조현호 기자
 

수도자들은 국정교과서 발행을 두고 “진실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역사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그리고 하나의 역사관을 주입하고 기억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 발상이며 매우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분열행위라는 주장에 대해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통해 보다 더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해서”라며 “교회 역시 복음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계시헌장 19항 일부를 아래와 같이 인용했다.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위에 언급한 네 복음서가 역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서슴지 않고 단언하며... 성경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참되고 바른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어떤 것은 말이나 이미 쓰여진 글로 전해지는 많은 전승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어떤 것은 종합하고, 또 어떤 것은 교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선포 양식으로 네 복음서를 썼다. 우리가 전해들은 그 말씀들의 진리를 깨닫도록 그들은 자신의 기억과 회상이나, 또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하였다(루카 1,2-4)”

이들은 “교회는 네 복음서를 통해 다양한 사실을 경험한다”며 “또한 그 다양한 복음의 내용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한 후 복음의 역사를 시대에 맞추어 해석하며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만일 복음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삶의 방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우리 신앙 또한 인간을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는 이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이번 국정교과서 전환을 세월호 참사에 빗대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수도자들은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은폐하려는 이유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언젠가 세월호 참사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도자들은 “진실에 대한 침묵은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며 “불행을 재촉하며 기억과 진실을 지우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역사의 복원이 아니라 명백한 날조 행위이기에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 수도자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진실의 편’에 서서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천주교 남녀 수도자들이 11일 밤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올바른 것을 역겨워하고 올곧은 것마다 왜곡하는 우두머리들아(미카 3,1)

1. 역사의 진실은 생명입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과 역사의 생명을 살상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역사교과서를 느닷없이 이념적인 색깔로 덮씌우고 좌편향이라며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의 논리적 근거로 국론 분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론 분열은 역사 기술(記述) 방식의 문제가 있어서 아니라 정치 집단이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정치 기술(技術)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지난 박근혜 정부 집권 2년 동안 서민과 관련된 공약에 대한 일방적인 파기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축소 그리고 부자를 위한 정책으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노동법 개악 시도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국론 분열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못해서가 아니라 명백하게 박근혜 정부의 민생파탄을 야기한 실정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국론 분열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며 정치적 혜안을 갖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생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마치 한풀이 하듯 하는 통치 방식은 암울한 유신독재시절을 회상케 합니다.
 
2. 이렇듯 우리 모두가 심히 염려하는 것은 국정화를 통한 한 개인 인물에 대한 우상화 작업입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수년 전 그러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천명한 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한 개인의 가정사가 절대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역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기억에서 강제적으로 지우고 잘못된 역사를 주입시켜 실상은 장기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야욕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역사적과 검증과 성찰이 끝난 5.16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지극히 한 개인의 가정사를 국가의 역사로 변질시키려는 음모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알기에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만일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그 불의함을 절대로 지켜만 보지 않았고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경험했고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으로 남겨줬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3.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한 마디로 진실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역사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역사관을 주입하고 기억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 발상이며 매우 폭력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통해 보다 더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성찰은 그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추억의 회상이 아니라 역사적인 불행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의 다양한 시각과 해석은 올바른 성찰과 역사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제시해줌으로써 우리를 분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지혜를 모으게 하고 하나로 일치하게끔 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시각이 배제된 하나의 역사관은 편협한 성찰로 역사를 쉽게 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통치자가 역사를 개인의 것으로 소유할 위험성이 커서 오히려 인간의 정신과 행위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수단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4. 교회 역시 복음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계시헌장 19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복음의 역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위에 언급한 네 복음서가 역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서슴지 않고 단언하며... 성경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참되고 바른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어떤 것은 말이나 이미 쓰여진 글로 전해지는 많은 전승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어떤 것은 종합하고, 또 어떤 것은 교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선포 양식으로 네 복음서를 썼다. 우리가 전해들은 그 말씀들의 진리를 깨닫도록 그들은 자신의 기억과 회상이나, 또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하였다(루카 1,2-4)" 이처럼 교회 역시 하나의 복음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는 네 복음서를 통해 다양한 사실을 경험합니다. 또한 그 다양한 복음의 내용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한 후 복음의 역사를 시대에 맞추어 해석하며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만일 복음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삶의 방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우리 신앙 또한 인간을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는 이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은폐하려는 이유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진실을 지우는 작업입니다. 언젠가 세월호 참사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창하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겐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인간의 양심을 지니고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며 살아가는 이 상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해왔는지를 우리의 시간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고 기억됩니다. 그 흔적과 기억이 바로 역사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되어지고 있는가 입니다. 기억에 대한 망각은 어제의 불행을 오늘 되풀이 할 수 있으며, 정의에 대한 외면은 어제의 불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다시 끊임없이 되풀이 됩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침묵은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으로 왜곡되어 그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여 결국 이 사회는 거짓과 불의로 만연되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 불행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불행을 재촉하며 기억과 진실을 지우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역사의 복원이 아니라 명백한 날조 행위이기에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사에서 기술하는 불의한 권력의 몰락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늘 현재이며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는 미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역사적 교훈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울러 우리 수도자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진실의 편’에 서서 끝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2015년 11월 12일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