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나주 고종석 사건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낸 오보는 ‘언론의 범죄 상업주의가 부른 참사’라고 불렸다. 조선일보는 무고한 시민 사진을 나주 어린이 성폭행범 얼굴이라며 1면에 싣는 대형오보를 낸 것이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을 위해 수사단계에서부터 강력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보도준칙이 없는 상황에서 언론사 간 보도경쟁과 선정성 추구가 빚어낸 결과라 지적한 바 있다.

언론의 선정적 범죄보도 관행은 어느 만큼 개선됐을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사건 보도 속 인권 침해 실태:CCTV 사용과 피의자 신상공개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언론은 사건보도에서 기준 없이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기소 전 사건에 대한 무리한 추측성 보도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조선족’ 혐오를 부추기는 프레임과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뉴스 영상 등도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운동본부는 2014년 1월1일부터 2015년 4월30일까지 KBS, MBC, SBS, TV조선, JTBC, 채널A, MBN, 뉴스Y, YTN 등 9개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 방송된 살인·성폭행 사건 보도를 모니터링해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 △피의자의 국적 △수갑과 포승 노출 △CCTV와 블랙박스 사용 등을 함께 분석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 주먹구구식 기준… 통일성있는 원칙 필요하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언론 스스로 용의자 및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기준을 만들어 범죄보도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니터 결과 비슷한 반인륜적 강력범죄 사건을 두고 언론의 피의자 신상정보 보도 여부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는 피의자와 그 가족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소지가 커 언론이 민감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신상이 공개된 사건은 2014년 12월 박춘봉 수원 시신 훼손 살인 사건, 2015년 1월 김상훈 안산 인질 살해 사건, 2015년 4월 김하일 시화호 시신 훼손 살인 사건 등 총 3건이다. 반면 2015년 1월 보도된 서초 세모녀 살해사건이나 2015년 3월 두 남편과 시어머니 농약 살해사건 등은 피의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흉악범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법적 근거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로,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이듬해 4월에 신설됐다. 미디어운동본부는 “해당 사건 모두 ‘특강법 제8조의2’의 모든 요건을 갖추었지만, 공개 여부는 제각각이었다”며 “언론은 경찰이 공개한 정보를 받아쓰는데 경찰서마다 자의적으로 공개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은 것”이라 지적했다.

경찰 공개 정보에 따르지 않더라도 들쭉날쭉한 신상정보 보도는 반복된다. 미디어운동본부는 2014년 4월 '빚독촉 여성 2명 살해'사건 김용만 공개수배 보도, 2014년 12월 ‘여행 가방 시신’ 사건의 용의자 정형근 공개수배 보도, 2014년 8월 '전자발찌 성폭행' 사건 용의자 한범수 공개수배 보도에서 언론사 간 용의자 정보 공개가 제각각인 것을 확인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공개수배를 보도하는 데에도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의도가 없던 방송사여도, 다른 방송사에서 이를 공개할 경우 보도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개하게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사 간의 일관된 기준을 만들어 함께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자극적 보도 ‘외국인 혐오’ 부추길 수 있어

비슷한 양상의 강력범죄라도 피의자가 중국 교포일 때 더 쉽게 신상을 공개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경찰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사건 3건 중 2건이 가해자가 중국 교포인 경우였다”며 같은 토막사건 살해의 피의자더라도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보도사례와 비교했다. 실제로 JTBC 뉴스룸은 2015년 4월8일 <이번엔 신속 공개…기준은?>이라는 보도를 통해 피의자가 중국 교포일 때 더 쉽게 신상을 공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가해자의 국적을 부각하는 보도의 예.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보고서 <사건 보도 속 인권 침해 실태> 캡쳐화면)
 

미디어운동본부는 임광순의 논문을 인용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범죄율은 외국인 일반보다 높으나 한국인 범죄율의 60%에 불과”하다며 “강력·폭력범죄는 저소득층 또는 경제적 소외계층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 사건들이 외국인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말했다. 피의자가 중국 교포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중국 교포집단에 대한 차별로, 결국 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언론보도준칙은 “이주노동자 등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전염병 원인제공자 등으로 몰아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중국동포를 포함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기는 보도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CTV를 자세히 보니 이불 속에서 사람의 발이 보입니다“ 범죄예방과 무관한 선정적 보도

미디어운동본부는 “선정성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형국에서 방송보도 또한 자극적인 뉴스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CCTV 등 수사자료를 통해 시신이나 범행장면을 직접 보여주거나 일러스트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범죄사실에 대해 불필요하게 상세한 설명을 하는 문제도 여전히 발견됐다.

   
 
 
   
▲ 자극적인 컴퓨터 그래픽 재연 자료화면(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보고서 <사건 보도 속 인권 침해 실태> 캡쳐화면)
 

JTBC는 <공항에서 시신 유기…호주 입국장서 덜미>(2014년 3월19일) 보도에서 범인이 시신을 이불에 싸서 계단으로 끌고 내려오는 장면을 방영했고 “CCTV를 자세히 보니 이불 속에서 사람의 발이 보입니다”라고 리포팅했다. TV조선은 <병원 칼부림 10대 환자 숨져>(2014년 2월28일) 보도도 CCTV 자료를 통해 피해자가 납치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연한 자료화면은 폭력성과 선정성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구성된다.

JTBC <경기도청 인근서…엽기 토막시신>(2014년 12월5일) 보도는 “발견된 시신은 머리와 팔이 없고, 상반신만 가로 30cm, 세로 40cm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갈비뼈 안에 있어야 할 심장이나 간 등 주요 장기가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범죄 사실의 본질과 예방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불필요하게 사건을 상세히 서술하면서 뉴스의 선정성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이런 보도는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내용이고 시청자들에게 공포를 조장한다”며 “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보도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컴퓨터 그래픽 경우도 “재구성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하며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미디어운동본부는 피의자가 수갑이나 포승줄을 찬 모습을 노출하는 보도와 범행재연 장면을 보여주는 보도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자가 포승줄을 찬 모습은 피의자에게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고 범행재연 장면은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효과만 낼 뿐이라는 점에서다.

추측에 기반한 ‘유죄추정 보도’도 여전해

미디어운동본부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강서구 재력가 살해’ 청부 사건 보도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사례라 지적했다. “김형식의 경우 2014년 7월22일에 구속·기속됐는데 모든 언론은 6월29일부터 김형식이 살해를 청부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미디어운동본부는 “공인이 범죄를 범한 경우 언론은 밝혀진 사실관계의 범위 내에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허용되고있다”며 “자극적인 보도로 벌어진 여론 재판은 공정한 법의 심판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언론은 사건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모든 방송국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범죄보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사건보도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TF 구성 △인권보도준칙에 준한 통일성있는 가이드라인 제정 △가이드라인 교육 실시 등을 주장했다.

미디어운동본부는 “흉악범죄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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