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4분기 매출을 공개한 날, 언론은 사상 최고 실적을 낸 애플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구글 창에 ‘애플 4분기 매출’이라고 검색하면 이 시기의 관련 기사가 200여 개 나온다. ‘애플 4분기 매출 22%, 순익 31%, 아이폰 판매 36% 증가’라는 보도를 중심으로 같은 주제의 기사가 거의 모든 매체에서 나온 셈이다. 

같은 날 유럽의 한 시민단체는 ‘애플이 저임금과 조세회피로 부자가 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애플이 △노동자에게 저임금 지급 △조세피난처로 법인 옮겨 세금회피 △실물경제 투자 대신 주식 투자로 부를 쌓았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실적에 대한 기사는 수백 개였지만 애플이 어떻게 실적을 냈는지 분석한 보고서 관련 기사는 한겨레(“부자기업 애플, 노동자 쥐어짜고 조세회피”)가 유일했다.  

한겨레가 인용한 보고서는 10월28일 네덜란드 비정부기구  SOMO (Centre for Research on Multinational Corporations)가 발간한 ‘부자 기업, 가난한 사회: 애플의 금융화’다. 이 보고서는 총 23페이지 분량이다. 보고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에 기업의 금융화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애플의 사례로 뒷받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세금을 피하려고 해외에 법인을 둔다. 아이폰 내 결제를 하면 룩셈부르크발 문자가 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튠스’(iTunes)는 룩셈부르크에 등록돼있다. 룩셈부르크는 전자상거래 부가세율이 3% 정도라 ‘조세피난처’로 분류된다. 

또한 애플의 자회사 애플오퍼레이션인터내셔널(AOI)은 아일랜드 법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인은 주소도 없으며 노동자도 없지만 애플이 번 수익의 30%를 보유한다. 자회사를 통해 애플은 아일랜드 세법을 적용받고 특혜까지 더해져 실질적으로 2%대의 세금을 낸다. 이 외에도 애플은 10여 개의 자회사를 국외 법인에 등록해 ‘합법적 세금회피’를 하고 있다. 

   
▲ 애플의 조직도. 네덜란드 비정부기구 SOMO는 '애플의 금융화'보고서에서 애플이 아일랜드 소재 자회사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회피했다고 밝혔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또한 보고서는 애플의 현금 보유액 상승이 그 어떤 기업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18페이지는 애플 현금보유액이 2011년 약 86조 원에서 2015년 약 220조 원으로 늘었다고 한다. 애플은 이 돈을 단기금융상품이나 헤지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보고서는 애플이 저임금과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관리자, 주주는 수혜를 입었지만 시민과 노동자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애플에 적정임금을 지급하고 정당한 세금을 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저임금과 조세회피 문제가 애플이 가진 세련된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언론이 애플의 하반기 매출에 놀라워하는 보도 양과 비교하면, 저임금과 조세회피같이 비판적 문제를 다루는 보도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물론 지금까지 주류언론이 애플-비판적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진행된 애플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애플의 저임금전략과 세금회피에 대한 비판보다, 애플과 삼성의 대결구도 안에서 이루어진 비판에 가깝다. 특히 주류언론의 애플 비판은 2011년 4월부터 시작된 애플과 삼성의 특허분쟁 이슈 속에서 이루어졌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실제로 애플과 삼성의 특허분쟁 이슈가 사그라진 최근까지도 애플-비판적 보도는 ‘삼성의 경쟁자’ 애플을 비판하기 위한 수준에 머무른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의 ‘구글과 애플, 세금 똑바로 내라’(11월5일자)는 “구글과 애플의 국내 매출도 아일랜드로 보내져 한국에서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라며 “지난해 삼성전자가 4조4690억 원, 네이버가 1536억 원의 법인세를 냈으니 한국 기업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다”고 썼다. 

한국 언론의 애플비판은 애플에 맞서 한국기업을 지켜야한다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도돼왔던 셈이다. 관훈저널 2012년 겨울호에 실린 황인혁 매일경제신문 기자의 ‘한국 언론의 삼성-애플 분쟁 보도’는 애플과 삼성에 관한 언론보도가 ‘언론의 민족주의’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애플에 대한 비판보도의 빈도가 높아졌지만 내심 한국 대표기업 삼성을 ‘괴롭히는’ 애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며 “언론은 ‘균형감각’과 ‘민족주의’라는 잣대 위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된 한국의 애플-비판적 보도 안에서 상대적으로 애플의 노동착취 이슈는 주류언론에 외면당했다. 애플이 기록적 흑자를 낸 4분기에 맞춰 발간된 ‘중국노동자관찰’의 보고서에 관한 보도도 연합뉴스와 경향신문만 보도했다. 이 단체는 2010년부터 폭스콘 하청공장의 노동조건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39페이지의 보고서는 애플 하청공장 노동자들이 주당 60여 시간의 근무를 하지만 월급이 총 2천20위안(36만3천 원)에 불과하다고 고발했다. 

   
▲ 2010년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발생한 폭스콘 선전공장 투신일지. 애플의 하청공장인 중국 선전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에서는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노동자 연쇄자살사건이 일어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국에서도 애플의 노동착취와 관련해 박종훈 서강대학교 교수는 2013년 ‘윤리경영의 범위: 애플과 폭스콘’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폭스콘 공장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 △아동노동 △실습생 제도 △관리자에 의한 일상적 모욕 △실질적 점심시간 10분 △과도한 징벌 규정(120개 항목) △구타 등의 문제가 만연했다고 한다. 작업 중 실수를 했다고 폭스콘 회장의 어록을 300번 쓰고, 잔디밭을 밟았다고 전기봉으로 구타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폭스콘 공장에서는 2010년부터 2년 동안 총 18명이 투신자살했다.

이 논문은 결론에서 애플이 이미 시장지배력에 우위를 선점했으므로 이러한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장지배력이 강한 기업의 경우 소비자들의 비난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며 “시장지배력이 없는 경우 소비자들은 기업의 윤리적 가치 및 활동에 크게 반응하지만, 반대의 경우 별다른 제품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 성과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결국 한국의 언론은 기업 관점에서 애플이 지닌 본질적 문제보다, ‘최대광고주’ 삼성과의 경쟁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한다. 아이폰 새 모델 출시 때마다 “혁신은 없었다”는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삼성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노동’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는 애플 기사 가운데 노동착취와 가난한 사회를 지적한 보고서에 관한 보도가 적은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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