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1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한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는 국정화 고시에 찬성, 반대하는 시민들이 각각 모였다. 

국정화를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전날인 2일 오후 9시경부터 정부종합청사 앞에 모여 ‘국정화 반대 밤샘 시위’를 진행했고, 이날 오전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은 노동당·퇴직교원·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국정화저지네트워크) 순으로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해 국정화 고시에 대해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를 제안했던 대학생 용혜인씨는 지난 2일 오후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SNS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모여달라”며 “밤샘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3일 오전 용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9시30분에 15명이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80여명이 함께 밤을 샜다”고 말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정부의 국정화 강행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용씨는 “박근혜정부는 출범한 이후 단 한번도 물러선 적이 없다. 304명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못했을 때, 그래서 유가족들이 1년이 넘도록 길바닥을 전전하고 있을 때도 양보하지 않았다”며 “역사를 관리하겠다는 정부에 반대했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밤을 샌 시민들 중에는 노동당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십만건의 국정화 반대 서명이 진행되고 청계광장에 반대 목소리가 가득 차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여론 수렴기간이 끝난다며 확정고시만을 들먹이고 있다”며 “불통 정부는 다음표적으로 노동개혁을 지목했다”고 비판했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 따르면 반대서명한 시민은 교사 2만7000여명, 교수 3000여명 등 약 50만 명에 이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아랍 카타르 민영방송사인 알자지라가 취재하는 등 외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아랍권의 대표 방송사 알자지라 취재진(서울특파원 Harry Fawcett)이 3일 오전 11시경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동당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부종합청사를 향해 “국정화 강행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며 ‘박근혜 퇴진하라’, ‘역사의 죄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고, 수십명에 경찰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구호를 외치는 것에 대해 “불법시위”라며 해산명령을 내렸고, “해산하지 않을 경우 영장없이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황 총리가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한 오전 11시 초·중·고 퇴직교원 656명이 국정화의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1998년 서울 상계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은퇴한 윤한탁씨는 “1970년대 유신독재 교육 당시 내가 교지를 만들었는데 ‘박근혜 영애’라고 쓰지 않고 ‘박근혜’라고 썼다고 교장이 교지를 폐기했던 무서운 시기였다”며 “교과서 국정화는 학교현장에서 ‘교장독재’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은퇴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가 바라던 민주사회가 오지 않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9년 서울 중화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은퇴한 김귀식씨는 “4·19 의거를 계승한 것이 헌법정신인데, 이런 4·19를 박정희가 군대 몰고 와 뒤엎었다”며 “오늘날 이 현실은 일제의 재탕이요, 유신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학부모·청년·여성단체 등 전국 470여개 단체가 모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의료 영리화 입법예고때 이메일, 팩스, 우편 접수를 다 열어놔 200만명의 국민이 반대 의견을 보냈는데 이번에 교육부는 이메일 접수를 닫아놓고 지난 2일에는 팩스도 꺼놨다”며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객관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정부의 국정화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헌법 가치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처장인 송상규 변호사는 “지난 2일 변호사들과 법학교수 605명이 국정교과서가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제출했는데 하루 만에 확정고시를 발표했는데 우리 의견을 검토했는지 의문”이라며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교육제도는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는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진행하고 있어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송 변호사는 “특히 헌법 제31조 4항에서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며 교육이 특정한 정치적 세력 즉 대통령이나 행정관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고 했다”며 “법률가들도 TF를 만들어서 헌법소원 등 법적으로 가능한 조치들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외에도 녹색당, 참여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한의사학회, 다양한 단체도 성명을 통해 국정화 반대의 뜻을 알렸다. 성신여대 학생회는 서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강행과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고, 3일 오후 같은 곳에서 시민들이 모여 국정교과서 추진 저지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진행 공간 옆에서 아스팔트네트워크, 종북좌익척결단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친북좌편향적 국사교과서를 정상화하기 위한 국정화 행정고시를 환영한다”며 “미래세대의 두뇌에 독극물을 심어준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현행 교과서는 역사교육계에서 자율적으로 교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보수단체들도 3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성향의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화 반대집회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국정화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 역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확정고사가 올바른 역사교육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입장이 다른 이들이 한 곳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미리 배치된 경찰로 인해 큰 충돌 없이 양측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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