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직업병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을 제시하며 법적 권리를 포기하라는 내용의 문서가 공개된 가운데 언론이 일방적으로 삼성 입장만 보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는 23일 ‘삼성 블로그 베끼는 삼성의 시녀 언론’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언론연대는 이 논평에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할 언론들이 삼성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며 “삼성이 블로그를 통해 해명자료를 발표하자 일제히 ‘비밀유지 서명 강요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쏟아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22일 은수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삼성이 직업병 피해자 유족에게 발송한 ‘수령 확인증’을 공개했다. 수령 확인증에는 삼성전자에 대해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과 비밀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조건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수령한 보상금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날 이 의혹에 대해 삼성전자는 ‘삼성투모로우’ 블로그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이 명쾌하게 해결된 상황은 아니다. (관련기사: ‘직업병 보상받으면 입 다물어라’ 삼성 문건 공개)  

   
▲ 은수미 의원이 공개한 '수령 확인증' 원본. 원본에는 희미하게 삼성의 워터마크가 찍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은 이 문서에 대해 "실무자가 작성했다가 폐기한 초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은수미 의원실 제공
 

언론연대는 언론이 의혹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 입장만 그대로 보도하며 마치 의혹이 풀린 것처럼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직접 취재를 통해 의혹을 검증하지 않고, 삼성이 블로그에 올린 해명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며 “언론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또 하나의 주범이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특히 머니투데이의 ‘삼성전자 “비밀유지 문서 서명 강요 의혹, 사실 아니다”’기사를 인용해 “삼성 블로그 베끼기는 심각한 수준이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복사기 수준으로 베낀 경우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언론연대가 인용한 이 기사는 총 7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6문단이 전부 삼성 블로그 글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문건이 발표된 22일 언론보도는 은수미 의원 측의 의혹 제기보다 삼성 측의 해명 위주의 기사가 주를 이룬다. ‘삼성 “반도체 보상자 비밀유지 강요 사실 무근”’(파이낸셜 뉴스), ‘삼성전자 “비밀유지 문서 서명강요 의혹, 사실 아니다”’(머니투데이), ‘백혈병 보상 확약 논란…삼성 ’비밀유지 강요 사실 아냐‘’(뉴시스), ‘삼성 “백혈병 보상 확약 논란 사실 아냐”’(아이뉴스24) 등의 보도가 그 예다. 

   
▲ 23일 언론연대는 성명을 내고 언론은 삼성이 블로그를 통해 해명자료를 발표하자 일제히 해명자료를 베낀 기사를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아래 표는 삼성의 해명이 나온 날 나온 언론보도 기사제목이다. 사진=언론개혁시면연대
 

김동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언론의 삼성 편향적 보도는 삼성을 주어로 한 것 정도가 아니라 삼성 해명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음으로써 마치 은수미 의원의 의혹 제기가 다 해명된 것처럼 보도했다”며 “작은 의혹이 아니라 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물증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한 것임에도 취재 없이 삼성 측의 해명만 보도한 것은 기사의 최소 기본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기획국장은 ““주류 언론 같은 경우는 이러한 의혹에 침묵을 지키고, 중소매체들과 특히 IT 매체들은 삼성과 관련해 삼성 편향적 보도를 하며 삼성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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