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시민사회 단체와 KBS 이사 간담회’에서 ‘공영방송의 파쇼정치화’가 언급된 바 있다.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가 현재 정치 조건을 ‘파시즘 국면’이라 규정하면서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가 집권층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며 공영방송이 파시즘의 수단이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비대칭적인 지배구조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에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은 꾸준히 지적돼왔다. 현재 KBS 이사회는 정부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으로 구성돼 의사결정이 사실상 정부·여당측에 유리한 구조다. 이 때문에 KBS 사장이 선임될 때마다 정치적 편향성과 비전문성 등의 문제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 관련 단체들이 22일 오전 ‘공영방송 사장 선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한 사장 선임 절차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21일 이사회 전체 회의에 앞서 부적격 후보 선정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KBS본부
 

발제를 맡은 정준희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정권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민주주의 정치문화가 퇴행하고 있으며 정권에 대한 견제 세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고 현재 정치 조건을 진단했다. 이어 “정부와 이해를 같이 하는 언론과 정부에 의해 장악된 방송이 여론을 억압해 결국 정부에 부정적인 여론형성을 선제적으로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강사는 “현재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절차는 정치권력의 정치적인 기획을 추진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특별다수제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 △엄격한 자격 기준 규정 △독립적인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이사회 의사결정구조에는 소수의견을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합의제에 기반한 ‘특별다수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특별다수제는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등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편향된 인물을 배제할 수 있다.

정 강사는 “사장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설명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공개는 곧 ‘장막 아래에서 불신을 자초하는 일을 감행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면서 “이미 갖춰져있는 비공개 요건에 충실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권리나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비밀유지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가치, 독립성, 신뢰성 등 사장 선임 원칙을 명확히 세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BBC의 사장 선임 원칙은 좋은 예다. BBC는 공직기준위원회가 제정한 ‘공직 활동의 7대 원칙’과 BBC Trust가 공표한 자격요건에 철저히 의거한다. 공직활동 7대 원칙엔 사심없음, 성실성, 객관성, 응답책임, 지도력 등이 있다. 자격요건엔 BBC의 기본가치 이해, 편성상 판단력, 창의적 조직 운영, 외부관계자와의 협력 등 방송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검증 기준이 포함돼있다.

정 강사는 “BBC는 적임자를 찾기 위해 헤드헌터를 동원하거나 세계 각처의 인물과 인터뷰를 할 정도”라며 “선임 과정에서 주무장관이 개입하거나 집권당, 내각부, 총리 등의 핵심 정치 주체가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에 관련된 의혹 수준의 언급조차도 거의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20개 시민사회단체는 2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공영언론 이사추천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토론자로 참여한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독립적인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을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독립적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정부와 시민사회,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김 위원은 “여야 동등 분포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특별다수제로 1명을 추천하면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받는 방식”을 제안했다.

토론회에서는 현실가능성에 대한 회의도 제기됐다. 정 강사는 “최근 KBS 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 사장 선임 원칙을 협의하는 자리에서 특별다수제, 사장추천위원회 등의 제도 개선을 일축했고 사장 후보자에 대한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개선책이 부정될 경우 실효성을 상실한 절차에 참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순차적 사보타쥬를 심각히 고려하고 부당한 이념적 행위에 대해 엄밀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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