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자 유족에게 개별적 보상을 하며 민·형사상 소송 포기를 강요하고 비밀유지를 강요한 문서가 공개됐다. 이에 삼성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삼성 측이 받은 보상 확인증 문서를 공개했지만 삼성이 공개한 문서에도 문제 사항은 여전했다. 

새정치연합 은수미 의원은 22일 오전 10시 10분에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자 유족에게 발송한 ‘수령 확인증’을 공개했다. ‘수령 확인증’에는 △보상을 받은 이는 삼성전자에 대해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합의서와 관련한 모든 사실을 일체 비밀로 유지할 것 △합의서의 내용 위배 시 회사로부터 수령한 금원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은수미 의원은 “보상 신청자들에게 보상을 하면서 비밀유지와 금원반환을 강제한 것에 놀라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고 황유미님 가족 등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 산재신청 포기 등을 조건으로 수억 원을 제시하면서 회유했던 지난 시기 삼성전자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 은수미 의원이 22일 공개한 '수령 확인증'. 사진= 은수미 의원실
 

삼성전자 측은 이에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22일 오후 2시경 공식블로그에 ‘은수미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라는 글을 공개했다. 이 글은 “은 의원이 공개한 문서는 보상 신청접수가 시작되기 전인 9월 14일에서 18일 사이에 실무자가 작성했다가 폐기한 초안으로 추정되는데, 폐기하기로 했던 이 문서가 일부 보상대상자에게 발송된 서류모음에 실수로 섞여 들어간 것인지 혹은 유출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어 삼성전자는 “회사는 비밀유지 요구 문구가 포함된 수령 확인증을 보상당사자로부터 받은 적이 없으며, 일방적으로 서명을 강요한 적도 없다”며 보상 당사자들로부터 받은 확인서를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이 확인서에는 은 의원이 공개한 ‘수령 확인증’의 내용인 ‘비밀 유지’, ‘위배시 보상금 반환’ 조항은 없으나 “민·형사상 소송 및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은 같다. 

삼성전자는 민·형사상 소송 및 기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7월23일 조정권고안의 제 8조 ‘청산조항’과 삼성보상위원회의 약관 제 12조 ‘신청자의 의무’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두 조항에는 “근로자나 유족이 보상금을 지급받은 경우에는 그 질환의 발병과 관련하여 삼성전자 또는 공익법인에 대하여 어떠한 청구권도 행사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
 

   
▲ 삼성전자가 22일 공식블로그에 공개한 보상금 지급 과정에서 당사자들로부터 받는 확인서. 은수미 의원이 공개한 '확인 수령서'의 내용과 '비밀 유지', '합의서 내용 위반시 금원 반환' 내용은 없지만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은 여전하다. 사진=삼성전자 블로그
 

하지만 삼성전자와 함께 교섭주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이미 이 조항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며 수정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독단적으로 개별 보상을 진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확인 수령증이 초안이며 폐기됐었다는 삼성의 해명은 믿지 못하겠다”며 “삼성이 제시한 확인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피해자에게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이미 반올림은 조정권고안에서 ‘청산조항’에 대해 수정의견을 낸 적이 있다”며 “교섭주체인 반올림이 수정의견을 내고 교섭 과정에 있는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삼성이 이러한 조항을 끼워넣은 보상을 진행한 것은 교섭원칙을 위반한 것이다”고 말했다. 

   
▲ 은수미 의원이 공개한 '수령 확인증' 원본. 원본에는 희미하게 삼성의 워터마크가 찍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은 이 문서에 대해 "실무자가 작성했다가 폐기한 초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은수미 의원실 제공
 

앞서 반올림은 지난 7일 열린 조정회의에서 이와 관련한 수정의견을 제출한 적이 있다. 반올림은 ‘조정권고안에 대한 수정의견’에서 “8조의 의미가 보상을 받은 피해가족이 다시 그 질병과 관련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취지하면 공감하지만 ‘산재보상’ 신청까지 제한하려는 취지라면 동의하기 어렵다”며 “8조 관련 내용이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른 청구권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수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반올림 측이 조정회의에서 수정의견에 대해 삼성 측은 "사실상의 거부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삼성 직업병 보상, 수정 요구했더니 거부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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