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씨(가명·24)는 10월 초 롯데호텔에서 함께 일했던 ‘장기 알바(장기 아르바이트)’들에게 일일이 카톡을 보냈다. 근로기준법 상 ‘알바’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롯데호텔은 지난 7, 8월 동안 연회장에서 연회 준비, 서빙 등을 맡았던 장기 알바 노동자 20여 명을 무더기 해고했다. 10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퇴직금 지급 대상이었으나 회사는 먼저 알린 바가 없다.

이씨가 퇴직금을 문의하자 호텔이 보인 첫 반응은 “일용직이 무슨 퇴직금이냐”였다. 장기 알바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을 꾸준히 일해왔다. 계속된 퇴직금 문의에 회사는 ‘합의서’를 요구했다. 합의서엔 “이 합의로 인해 롯데는 노동관계법령상 사용자로서의 모든 책임을 면하고, 노동자는 향후 롯데에 대해 민·형사상 이의제기, 고용노동부 진정·고소·고발·이의제기,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등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해고자 입장에선 퇴직금을 받는 대신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나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처음에 호텔이 퇴직금을 못준다고 말해서 노동부에 전화해봤더니 퇴직금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다시 영업지원팀에 전화해서 퇴직금 왜 안주냐 물었더니 ‘인원파악이 안 돼서 못줬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인원파악이 안되면 해고는 어떻게 하나요? 그렇게 계속 따지니 합의서를 주더라고요. 당시에 해고자들은 ‘이거라도 쓰면 받는구나’ 생각해서 합의서 쓰고 퇴직금을 받았어요.”

   
▲ 롯데호텔이 장기 알바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주며 제시한 이의제기나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
 

하루 9시간, 주 5회, 1년 이상 근무… ‘상용근로자와 다를 바 없었다’

이씨도 해고자다. 지난 7월 20일 해고됐다. 이씨는 2012년 5월 군대를 전역하고부터 소공동 롯데호텔 연회장에서 장기 알바로 근무했지만 퇴직금은 받지 못했다. 개인적인 사정이나 여행 등의 이유로 일을 쉰 적이 있어서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연속 근무’라는 퇴직금 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총 일수로 따지면 2년 이상 장기알바로 근무해온 터라 현장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 롯데호텔 연회장 '장기 알바' 노동자들이 체결한 일용근로직 근로계약서. "근로자는 1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로서 유급휴일,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있다. 위는 2014년 계약서이고 아래는 2015년 초의 계약서다.
 

이씨는 “(해고자에겐) 당장 퇴직금이 중요했지만 이번 무더기 해고가 ‘부당해고’로 볼 수 있는 점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호텔 연회장엔 두 종류의 알바가 있다. ‘일일 알바’와 ‘장기 알바’다. 장기 알바는 지속적인 근속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일용직과 같이 매일 계약서를 쓴다. 계약서엔 ‘1주에 15시간 미만을 일한다’고 돼 있으나 실제로 장기 알바는 매일 9시간씩 주 5-6회 근무하는게 보통이다. 계약 형식만 일용직일 뿐 실질적인 근무 형태를 보면 정직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호텔일이 워낙 유동적이라 고용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일 알바가 필요한 거고요. 장기 알바는 정직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을 맡고 근무 형태도 비슷해요. 장기 알바는 보통 9시간 씩 주 5회 일하는데 일주일 다 근무하는 경우도 있어요. 개인 사유가 있어서 일을 빠져야 하면 3일 전에 통보해야돼서 거의 정기적으로 나간다고 봐야하고요. 스케줄도 전날 저녁 6시 쯤 통보되고 정직원이 배치되는 스케줄표에 같이 배치되고요. 장기 알바는 회사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 일정을 짜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근로계약서는 매일 쓰죠. 이번에 해고된 한 친구는 실 근무일수가 561일이에요.”

“롯데호텔, 김영씨 부당해고 판정 뒤 무더기 해고했다”

이씨는 갑작스레 해고된 청년노동자 대부분이 억울해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이번 무더기 해고가 지난해 11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김영씨가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것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12월에 입사해 롯데호텔 뷔페식당 ‘라세느’에서 84일간 일하며 84번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김영씨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후 중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계약 형식만 일용직일 뿐 실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이거나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이 있는 노동자”라고 판정하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 지난 달 24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사 앞에서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등 5개 단체가 모여 "청년을 일회용품 취급하는 일용직 근로계약 폐기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올해 5월부터 무더기 해고가 이뤄졌어요. 김영씨가 일한 라세느에서 장기알바 대부분이 5월 계약해지된 걸로 알고요. 연회장에서는 ‘설마 연회장까지 그러겠어. 우리가 한꺼번에 해고되면 연회 일이 안될텐데’라고 말했었는데 7월부터 3차례에 걸쳐서 다 해고됐어요. 회사는 ‘메르스 때문에 연회 일이 줄었다’고 이유를 댔는데, 잠깐 쉬다가 오라고 할 수도 있는데, 왜 영원히 못 나오게 하냐는 거에요. 한 친구는 영업지원팀에 ‘다시 입사하겠다’고 말했더니 ‘다른 데서 3개월 이상 일하고 와라’고 했대요. 그래야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지니까.”

“해고자들은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해고되느냐’며 억울해 했죠. 부당해고라고 생각했죠. 근데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다들 ‘이런 문제는 내가 감당할 수없다. 큰 회사와 싸우기엔 내가 너무 작고 나약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더기 해고로 빈 자리는 새로운 장기 알바로

롯데호텔에 퇴직금을 요구한 해고노동자들은 모두 퇴직금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씨는 문제제기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초단기 근로 계약’ 관행과 부당해고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씨는 “전에도 이랬을 거고 지금도 이렇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다. 이제 더 많은 청년들이 실업문제를 껴안게 될텐데 이런 문제가 고쳐지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장기 알바는 연회장이나 뷔페 같이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곳에 무조건 있어요. 소공동 롯데호텔 뿐만이 아니라 잠실에도 있고, 신라호텔, 워커힐에도 있어요. 모두를 정직원으로 뽑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거에요. 퇴직금을 받아야 하면 회사가 나서서 줘야하고요. 초단기 근로계약처럼 임금 적게 주고 법적 책임을 안지려고 법을 요리조리 피해서 알바를 이용하는 것도 잘못됐고요.”

이씨는 평일 오전에는 학원에서 웹툰 제작을 배우고 있고 오후에는 또 다른 연회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웹툰과 영화 제작 공부를 꾸준히 해 앞으로 청년 노동자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알리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롯데호텔이 해고과정에서 보여준 부당한 대우도 향후 작품으로 다룰 예정이다.

현재 롯데호텔 연회장의 무더기 해고로 비워진 자리는 새로운 장기 알바로 채워졌다. 이씨는 “기존에 일 잘하던 사람들을 다 퇴사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충원한다”며 “롯데도 혼자서 성장한 기업이 아닌 것으로 안다. 그래서 같이 성장할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하고, 직원도 제대로 더 뽑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2일에 있는 김영씨 원직복직에 관한 소송에 참관하고 김영씨를 돕고 싶다”며 “앞으로 청년노동에 대한 부당한 대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으로 목소리를 내 볼 것”이라 말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합의서에 통상적인 문구를 그대로 써놓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고 문제가 된 부분은 다 수정하고 퇴직금 수령 확인만 명시한 확인서로 변경한 상태"라고 말했다. 부당해고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관계자는 "해고'란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며 "아르바이트는 정식채용 절차를 거쳐서 들어온 사람이 아니고 언제까지 근무하겠다 정한 것도 아니고 안나오겠다고 하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분들을 무슨 권리로 해고하나"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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