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길남과 요하이벤클러. 국내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망을 연결한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인터넷 세계화에 힘쓰기도 했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기구인 ISOC(인터넷 소사이어티)가 제정한 ‘인터넷 명예의 전당 30인’에 오르기도 했다.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교수는 ‘공유지’개념을 통해 인터넷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도록 모색한 연구자다.

지난 17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서밋 컨퍼런스 좌담회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이들은 오늘날 인터넷공간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은 널리 보급되고 있고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다. 전체인구의 40%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전체인구의 80%가 인터넷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긍정적인 현상을 앞에 두고 전길남 교수는 우려를 나타냈다. “인터넷이 야기한 문제들은 더 이상 시장주도적인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인터넷 인프라가 전 지구적으로 갖춰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인터넷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중간)와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7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서밋 컨퍼런스에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인터넷은 도입 초기 ‘공유’와 ‘개방’이 핵심이었지만 현재는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전길남 교수는 “인터넷을 주도해온 대기업이 인터넷을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월드가든(Walled garden)’정책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월드가든(Walled garden)’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처럼 폐쇄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을 말하는데 통신사가 자사 가입자에 한해 무선인터넷망을 제공하는 것과 지원자격에 따라 콘텐츠를 차등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월드가든’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이 알고리즘 등의 인터넷 기술을 독점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의 진단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인터넷 발달에 따른 ‘집중화’가 기업이나 정부의 감시와 통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독자적인 네트워크 인프라, 클라우딩 컴퓨팅 기술을 기업의 손에 쥐어주게 됐다. 빅데이터는 감시능력을 갖고 사람들 행동을 지켜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 역시 지나치게 정보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 같은 움직임이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전길남 교수 역시 “페이스북과 구글과 같은 대기업들은 우리의 정보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면서 “물론 그들은 정보를 악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해킹을 통해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화’가 그랬듯 인터넷 보급의 확산은 사회전반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전길남 교수는 ‘지역문화’의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아프리카에는 현재 수천개 언어가 존재하지만 30년 후에는 몇 개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길남 교수는 “이것이 인터넷의 힘”이라며 “그들이 이용하는 페이스북과 구글은 아프리카의 지역언어를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지역문화가 상실된다. 우리가 바라던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기업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있다. 사진은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집회.ⓒ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까. 전길남 교수는 ‘녹색국가’ 개념을 인터넷에도 적용해 국제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로 인터넷의 문제점에 대해 소통을 하고 사회적인 규제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구온난화만 봐도 시장논리로 접근해서는 효과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환경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지구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마찬가지로 합의에 기반을 둔 ‘인터넷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거버넌스가 구축되면 인터넷을 일찌감치 도입한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후발주자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일종의 ‘허브’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안전한 결제를 위해 액티브X를 국가적으로 도입했는데, 이용하기 매우 불편할뿐더러 보안상태도 좋지 않다. 앞으로 인터넷이 보급될 아프리카 지역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앞 사람이 바람을 맞게 되면 그 뒤에 선 사람은 바람을 피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커먼즈를 기반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커먼즈(공유지) 모델’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공유지에서 만들어지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생산구조가 인터넷 집중화의 문제해결은 물론 불평등을 해소할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의 ‘디지털 공유지’개념은 개인의 욕망이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주는 전통적인 시장개념과 달리 시장가치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유지에서의 생산과 협력의 경제가 경제성장 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오픈소스를 통해 성장한 위키피디아와 차량 주요기술 특허권을 독점하지 않고 개방한 테슬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중간)와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7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서밋 컨퍼런스에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이들의 대안은 이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면이 있다. 전길남 교수는 “합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거버넌스를 통해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인 ‘혁신’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라며 “다만 분명한 건 인터넷 혁명은 이제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길남 교수는 ‘인터넷’을 ‘원자력’에 비유하며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은 지금 당장은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100년 후, 1000년 후를 내다보고 폐기물 처리계획을 세운다. 인터넷 역시 현재 불가능한 개념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전은 도입 당시 최상의 기술로 여겨졌지만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면서 “인터넷이 원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인터넷의 개방성을 누가 위협하는지 항상 들여다봐야 한다고 밝혔다. “구글, MS와 같은 기업, 그리고 국가는 지속적으로 이해관계가 바뀐다. 누구를 절대적으로 선이나 악이라고 보기 힘들다. 문제는 개방성을 위한 투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우리의 개방성의 위협이 누구인지,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판단하고 평가해 사람들이 통제된 시스템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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