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CC’로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비영리재단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가) 10년 전 저작권의 비영리적 이용을 위해 벌인 ‘오픈라이선스 캠페인’의 성과다. 그러나 여전히 저작권이 정보의 유통에 도움을 주기보다 배타적인 저작권을 통해 정보가 독점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작권을 무기로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소송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5일부터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서밋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선 전문가들은 공유의 가치가 단순히 정보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정보공유에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직 ‘공유경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라이언 머클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CEO는 16일 기조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유경제는 단순히 저작물 공유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비롯한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줘야 한다”면서 “공유된 코텐츠가 타인의 창작에 영감을 주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으로 이어져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라이언 머클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EO가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서밋 2015 컨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흔히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비즈니스를 ‘공유경제’의 대명사로 꼽지만,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 서비스는 시장가격을 낮춰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15일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진정한 공유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 행위를 통해 교환과 거래가 이뤄지는 개념”이라며 “사회적인 협력과 생산과 같은 원칙이 지켜져야 노동자들까지 이롭게 하는 공유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를 공유하는 걸 단순한 ‘나눔’이나 ‘적선’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라일라 트레티코프 위키미디어 사무총장은 “단순한 공유는 그치지 않고 ‘더하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살 아이가 부모에게 원소를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지 묻는다. 부모는 답변하기 힘들다. 이전에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부모가 가르칠 게 사라졌지만 요즘은 점점 더 빨리 부모가 가르쳐줄 것들이 사라진다. 정보가 늘어난 게 아니다. 정보공유에 의해 정보가 재조합되고 공유되며 바뀐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식의 축적’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개별적 지식들이 공유되면서 ‘협력’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내기도 한다. 15일 열린 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발표에서 오픈데이터를 통해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를 들어 백두산 천지의 폭발 가능성을 살피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북한, 중국의 정보공유가 필요하다. 국가별 협력 뿐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도 필요하다. 지표면데이터, 주변 생물 움직임에 대한 정보, 인근 상공의 기후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 모든 데이터들이 함께 맞물려 협업이 된다면 개별국가의 개별정보로는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 IS가 파괴한 바알샤민 신전은 위키피디아에 사진이 공유되면서 원형을 알 수 있게 됐다. 언론들 역시 위키피디아의 이미지를 통해 보도를 할 수 있었다.
 

정보공유가 일반인들과 거리가 먼 전문가만들의 영역은 아니다. 정보 공유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방법은 많다. 라일라 트레디코프 사무총장은 위키피디아가 “후세를 위해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게 아니다. 최근 IS가 중동지역의 문화유산들을 파괴하고 있다. 유명하지 않은 유산들은 그 원형을 찾기 힘들게 됐다. 위키는 협업을 통해 이들 문화유산의 데이터를 모았다. 그에 따르면 IS에 의해 파괴되거나 네팔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문화유산의 이미지 1500개를 2달 만에 모을 수 있었다.

정보공유는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도 일조한다. 라이언 머클리 CEO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해야한다. 접속가능한 사회. 형평성이 있는 사회를 온라인 환경에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가 다양한 언어로 콘텐츠를 번역하거나 도서관 사업을 벌이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한 사회 내의 정보격차, 국가간 정보격차를 정보공유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라일라 트레티코프 사무총장에 따르면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 5억명이 위키피디아에서 지식을 검색한다. 위키피디아는 291개 언어로 번역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작권은 공고한 벽이다. 이 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준다는 점에서는 이점도 일지만 저작물의 ‘독점’이 혁신을 가로막는다. 저작권은 저작권자가 죽은 이후에도 권한이 유지될 정도로 막강하다. 라일라 트레티코프 사무총장은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직 기존 세상의 규칙들이 적용되고 있다. 정보를 오히려 폐쇄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성장과 개발에도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타적인 저작권이 스타트업 기업과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 라일라 트레티코프 위키미미디어 사무총장. 사진=위키미디어재단.
 

배타적인 저작권을 포기하는 걸 이타적인 행위로 보는 시선이 활발한 정보공유를 가로막기도 한다. 라이언 머클리 CEO는 “장기적 관점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자기실리를 추구하는 ‘이기심’이 결국 이타적인 ‘공유’와 접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만들어내는 혁신의 결과물이 개인에게도 돌아와 수혜를 입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라이언 머클리 CEO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부터 흐름을 바꿔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사후20년까지 효력을 갖던 저작권법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면서  오픈소스, 오픈데이터, 오픈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보공유 역시 이전보다 나은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 라일라 트레티코프 사무총장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오픈라이선스를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난 10년 간 어느정도 성과를 달성했다. 이제 작업물을 단순하게 아카이빙하는 걸 떠나서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한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유된 정보를 단순히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재가공을 통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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