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노동감시’가 시작됐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감시앱’을 설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업무에 필요하다’는 게 기업의 논리지만 한번 설치된 ‘감시앱’은 언제든 사찰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개인정보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측의 지시 앞에 유명무실해졌다.

“회사 모니터로 직원위치 감시”

지난 7월 피죤에서 영업업무를 하는 노동자 송아무개씨와 동료들에게 지시가 내려왔다. ‘AR(Action Recording Syste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으라고 했다. 송씨는 매일 지역 대형마트에 출장영업업무를 다닌다. 이 앱을 설치하면 누가 어느 거래처에 언제 방문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사측은 업무의 편의성을 강조했지만 달리 보면 업무시간 위치를 실시간으로 감시당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사측은 사무실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화면에는 ‘GS슈퍼마켓 김포초당점’ 담당자 아무개 IN 20:43, ‘홈플러스 영등포점’ 담당자 아무개 IN 18:14, OUT 18:20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조는 앱 설치를 거부했다. “동의 없이 위치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앱을 개인 휴대폰에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별도의 업무용 핸드폰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사찰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피죤의 AR시스템. 영업직 노동자들의 근태기록이 공유된다. 노조는 “사측이 앱 설치를 강요하고, 설치를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며 노조사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측은 "근태관리는 사측의 권한"이라며 “AR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게 아니라 택(출입증)을 통한 방문처 출입기록만 뜬다”는 입장이다. 사진=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피죤지회 제공.
 

앱 하나에 ‘12개’ 권한요구

KT 노동자 이아무개씨는 담당 업무가 수시로 변하는 ‘업무지원단’ 소속이다. 2014년 10월 업무지원단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앱을 다운로드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업무지원단이 전국을 돌며 무선망의 품질을 측정하는 일을 하게 됐고, 이 앱을 통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가 ‘앱 설치’를 누르는 순간 ‘동의’해야 할 항목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앱 하나를 설치하는데 스마트폰 정보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는 확인창이 12번이나 떴다.

대부분 업무와 무관한 권한이었다. 위치정보 외에도 ‘언제든 카메라를 사용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전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디바이스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친구나 동료의 일정을 포함해 디바이스에 저장된 달력의 모든 일정을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애플리케이션이 버튼잠금과 보안기능을 해제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등이다.

KT 새노조는 업무용 핸드폰을 별도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해당 앱을 다운로드할 수 없는 아이폰과 폴더폰 이용자에 한해서만 업무용 핸드폰을 지급하겠다고 결정했다.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는 이씨는 별도의 핸드폰을 지급받지 못했다. 앱을 설치하지 않고는 업무가 불가능했다.

‘보복’ 우려에 저항 힘들어

감시앱 문제는 지난해 10월 포스코가 직원들에게 단말기원격관리 프로그램 설치를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당시 포스코는 보안시설에 출입하는 직원들에게 무단 사진촬영을 막을 목적으로 ‘소프트맨’이라는 앱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앱은 설치한 노동자의 문자메시지, 인터넷 열람기록, 통화기록을 확인하는 등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어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이후 포스코는 권한을 대폭 줄인 수정 버전을 내놓았다.

노동자들은 감시앱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밖에 없다. 감시앱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피죤 사측이 앱 다운로드를 요구하면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앱을 설치하지 않고 택을 찍지 않으면 업무정보가 누락돼 회사의 출장비 지원이 취소된다는 내용이다. 1차 휴대폰비, 2차 차량감가비, 3차 유류비전액, 4차 출장비 전액. 거부할수록 받지 못하는 돈이 많아졌다. 5차는 인사위원회 회부였다.

송씨는 지난 8월 출장에 필요한 교통비 등 영업활동 비용 57만7000원을 받지 못했다. 늘 그랬듯 영수증 하나 빠뜨리지 않았지만 사무실 모니터 화면 구석에는 ‘미방문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김현승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피죤 지회장은 “매일 지역 대형마트 여러곳에 출장을 떠나 출장비가 많이 든다. 많게는 100만원 가까이 지급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KT는 지난 5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앱 다운로드를 거부한 이씨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무선품질측정 업무를 지속적으로 거부해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씨는 징계처분에 대해 재심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다. KT는 “앱 다운로드 설치거부와는 무관하다. 업무지시를 수차례 거부하는 등 사규위반에 따른 징계”라고 밝혔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위치정보만 가져간다? 사찰 가능성 배제 못해

스마트폰을 통한 ‘감시’는 이전의 감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경찰이 스마트폰을 수색할 경우 반드시 별도의 사전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며 스마트폰을 “과거의 압수수색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물건”이라고 판시했다. 아날로그 자료와 달리 스마트폰 하나에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가 담겼다는 이야기다.

논란이 불거지자 KT와 피죤은 해당 앱이 “업무에 필요한 용도”이고 사찰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피죤은 “근태관리가 목적이며 출퇴근 시간만 체크돼 결코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없다”면서 “오히려 대부분의 직원들은 앱 도입 이후 현장에서 바로 퇴근을 할 수 있어 반긴다”고 밝혔다. KT는 “앱 다운로드 시 12가지 권한을 요청한 건 기본적인 설정으로 사내 이러닝앱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실제로는 업무에 필요한 위치정보 외에는 수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치정보만 수집하더라도 정보인권침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상임활동가는 “앱 설치 때 요구하는 위치정보만 갖고도 상당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은 ‘개인정보보호법’ 외에 ‘위치정보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장여경 활동가는 “위치정보 정확도가 2m 반경 이내로 매우 높아 실시간 추적이 가능하다. 또, 어디를 방문했는지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취향을 비롯한 사생활을 알아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KT와 피죤 두 기업 모두 노사가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앱이 사찰도구로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여경 활동가는 “가령 퇴근시간에 노조원들이 어느 지점으로 모이는지, 어느 곳에서 주로 모임을 갖는지, 누가 참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그 자체로는 간접적인 정보지만 노조를 사찰하는 등 탄압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승 피죤 지회장은 “무작정 앱 설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개인핸드폰 대신 별도의 업무용 핸드폰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사측은 비용이 문제라서 핸드폰을 구입할 수 없다고 하지만 노사가 대립하고 ‘노조깨기’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를 감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 ‘감시앱’이 당장은 위치정보만 수집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전면적인 감시를 할 가능성도 있다. KT의 경우 ‘버튼잠금과 보안기능을 해제’기능이 당장은 없더라도 설치 과정에서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언제든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파이앱 넘쳐나…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

포스코와 KT, 피죤 모두 노조에 의해 문제가 알려진 예외적인 경우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은 낮다. 김진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한 사업장은 민주노총이 조직돼 있지만 사업장에서 ‘감시앱’ 강요 문제를 밝히기를 꺼려한다”고 밝혔다.

장여경 활동가는 “KT나 피죤은 노조가 조직되고 노사가 대립중인 사업장이라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 한 것인데 여기서 드러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뒤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상담을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들은 무슨 앱인지 알지도 못한 채 다운로드 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저항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유명 스파이앱들의 주요 고객이 ‘직원을 감시하려는 기업’이라는 점에서도 기업에 의한 ‘노동감시’가 일상적임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용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 스파이앱 mSPY의 한국어 홈페이지는 “직원 중에 비생산적인 작업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귀하의 비즈니스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각 직원의 휴대전화를 추적하면,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할 수 있다”며 앱을 홍보한다. 다른 스파이앱들 역시 “직원의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최고의 직원과 최악의 직원을 찾아보세요”나 “회사의 부하직원 근무관리가 필요한 회사 관리자가 주요 대상”이라는 문구로 홍보하고 있다.

정보인권 사각지대 없애야

업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앱 설치를 강요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제공할 경우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자’와 달리 ‘노동자’는 무력하다. 김진 변호사는 “노사관계에 있어 노동자가 종속관계이기 때문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보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노동자에게 앱 설치를 요구할 때 ‘과반의 동의’ 혹은 ‘노조의 동의’를 통해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동현장의 정보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부처를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재 개인정보보호 책임부서는 안전행정부에 있는 반면 노동관계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에 책임소재가 있다. 고용부로 책임부서를 정해 인권침해를 막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은 노동자 개인정보처리의 침해신고 접수, 자료제출 요구 및 검사, 시정조치, 고발 및 징계권고를 고용노동부가 소관하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앱 설치시 별다른 제재없이 광범위한 개인정보 접근 및 이용권한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난달 31일 스마트폰 앱 제작사가 앱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내용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권한을 막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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