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업병 피해 가족과 삼성의 조정이 무기한 연기된 가운데 다수 언론이 조정 국면에서 권고안을 왜곡하고 시민단체에 대한 비방 수위를 높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은 12일 ‘보도를 통해 본 삼성의 언론지배’ 토론회를 국회에서 주최했다. 발제자인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대다수 언론이 권고안을 의도적 왜곡했고, 삼성 보상위원회를 마냥 치켜세웠다”며 “또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의견을 왜곡해 반올림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깎아내렸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7월23일 백혈병 등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논의하는 조정위원회에서는 조정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조정권고안은 삼성전자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기부와 조정위 권고안을 실행에 옮길 독립 법인 설립이 핵심이다.  

   
12일 국회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조정권고안' 보도를 통해 본 삼성의 언론지배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언론개혁시민연대.
 

권고안은 왜곡하고 삼성은 치켜세우고

이날 토론회에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가 빈번했던 것이 지적됐다. 조정권고안이 나온 이후 문화일보,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디지털데일리 등은 조정권고안이 현행 산재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고 주장했다. 조정위가 28개 질환을 명시하고, 이 병에 걸린 근로자들에 대해 ‘업무 연관성’과 무관하게 치료비 전액을 보전하라는 것은 현행법의 근간을 흔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삼성전자 스스로 보상에 관한 조정안 제안을 하면서 “‘업무상 질병’과 관련한 인과관계를 따져 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퇴직 직원과 그 가족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지급하는 복지 차원의 위로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바 있는 사안이다.

또한 문화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권고안의 ‘퇴직 후 잠복기 최장 14년까지’ 조항을 문제 삼으며 “60세에 은퇴한다면 74세까지 보장하라는 것인가”(문화일보 7월24일자)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 가운데 대부분의 환자가 20~30대이고 최고 연장자는 40대다. <관련기사: 삼성 백혈병 권고안,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실 5가지>

   
12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의 언론지배' 토론회. 사진=반올림 제공.
 

또한 삼성은 지난 8월 조정권고안이 제안한 공익법인이 아닌 보상위원회를 통해 보상하겠다는 발표와 1천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언론은 ‘백혈병 피해자 위해 기금 1000억 조성’(조선일보 8월4일자), ‘삼성전자, 질병 보상 위해 1000억 사내 기금 조성’ (중앙일보 8월4일자), ‘백혈병 1천억 원 사내 기금 조성’(SBS TV 8월3일자) 등으로 제목을 뽑아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언론의 이런 기계적 사실 보도는 핵심 사안을 비껴 보도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조정위원회는 공익법인에 1천억 원 기부를 권고했지만 삼성은 공익법인이 아닌 자체적으로 구성한 보상위원회에 1천억 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방 연구원은 “사회적 기구가 아닌 삼성이 스스로 주도하는 사업으로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는 삼성이 보상을 사회적 부조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와 피해자 사이의 문제로만 국한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혐오발언’에 가까운 시민단체 깎아내리기

삼성 직업병 피해가족과 함께 보상 및 재발방지 대책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반올림’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데도 언론이 동원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25일자 기사에서 “기업에 대해 마치 ‘호구’를 만난 듯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문화일보는 8월5일자 기사에서 “곡쟁이 역할로 문제 본질 흐리는 반올림”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언론 미디어펜은 8월6일자 기사에서 “꽉 막힌 반올림”이 “직업병과 관련해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 보였지만 피해보상 보다는 ‘삼성전자 직업병 논란’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데 더욱 치중한다”고 폄하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권고안에서 공익법인 운영에 출연금 30%가 들어간다고 명시된 부분에 대해 “반올림이 공익법인에 개입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헤럴드경제 9월4일자와 인터넷 언론 미디어펜 8월19일자의 관련 기사에서는 반올림이 '몽니'를 부려 삼성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는 “조정권고안은 공익법인으로 하여금 다양한 예방 대책 사업을 수행하도록 했고, 그러한 대책사업에 필요한 재원으로서 300억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언론은 300억의 용도에서 ‘대책사업’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그 돈이 전부 공익법인의 ‘운영비(특히 인건비)’로 쓰이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한 극단적인 삼성 편들기와 함께 반올림에 대한 깎아내리기는 거의 혐오발언 수준에 있다고 본다”며 “삼성의 광고로 인해 많은 언론들이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언론이 삼성에 대한 침묵, 외면 보도를 해온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토론회 발제자 방희경 연구원에 따르면 삼성 직업병 피해자에 관련된 보도는 지난 7년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침묵됐다. 2007년 1월1일부터 2013년 11워16일까지 조선일보는 관련보도를 13건, 중앙일보는 23건, 프레시안은 211건, 한겨레는 154건 보도했다. 보수언론의 침묵보도를 상징하는 지표다. 자료=방희경 연구원. 그래픽=이우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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