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이 걸렸다. 김영주 민주롯데마트노동조합 위원장이 ‘직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조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엔 사측의 끊임없는 방해가 있다. 김 위원장은 “회유, 감시, 인사 불이익, 징계 등 롯데마트는 안 해본 시도가 없을 정도로 노조 설립을 방해해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롯데마트 노동자 2명과 함께 12일 서울 남부고용노동지청에 ‘민주롯데마트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롯데마트 제1노조인 한국노총 산하 롯데마트노조에 더해 2노조가 설립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노조가 필요하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때문에 현장의 불만은 지금 폭발 직전”이라고 말했다.

정규직은 15시간 살인적인 노동, ‘최고시급대우’ 비정규직은 월 108만원

김 위원장은 2002년에 롯데마트에 입사해 지금은 강원 원주점에 가공식품을 담당하는 13년차 직원이다. 그는 “어렵게 입사해 뽑힌 걸 감사하게 생각해 처음 5년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9시 출근해 12시 폐점까지 매일같이 일했다. 재고조사때문에 밤을 꼬박 샌 적도 많고 일주일에 한두번은 새벽 2시 넘어 퇴근하기 예사였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노동조합 창립총회에서 김영주 민주롯데마트노조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근무여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김 위원장이 노조 설립을 9년 동안 포기하지 못한 이유다. 김 위원장은 “마트 정규직들은 타임카드를 출근 시에만 찍도록 돼있어 퇴근기록을 못남기고 연장근로수당도 제대로 못받고 있다”며 “하루 15~16시간씩 일하는 정규직들이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직원의 경우도 낮은 임금, 근로기준법 미준수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김 위원장은 특히 ‘행복사원’의 근로조건을 지적했다. 무기계약직 직원인 행복사원은 대부분 중년 여성으로 전체 마트직원의 약 49%를 차지한다. 그는 “행복사원들은 재작년까지 한달에 80만원을 받았고 올해는 108만원을 받는다”면서 “상여금을 포함한 2014년 성과금은 월 121만원으로 이마트 387만, 홈플러스 392만에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들 또한 매일 30~40분 늦게 퇴근하지만 연장수당을 일절 받지 못한다. 연장수당은 1시간 단위로 계산한다는 롯데마트의 계산법 때문이다.

민주롯데마트노조가 출범선언과 동시에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고소고발을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사원의 성과금 인상은 노조의 1번 요구안이다. 김영주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너무도 명확한 문제부터 고쳐나갈 것”이라며 “가장 밑바닥의 힘들고 어려운 직원들이 힘을 얻는 노조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2명을 모으지 못해 만들지 못한 노동조합… 전방위적인 회사측의 방해공작

빼놓을 수 없는 문제는 롯데마트의 ‘부당노동행위 정황’이다. 김 위원장은 2006년부터는 기존 롯데마트노조(한국노총 산하)를 개혁하려고 애썼으나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알고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 설립을 수차례 추진했다. 그러나 모두 좌절됐다. 회사 측의 방해로 사람을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김 위원장은 주장했다.

첫 번째 노조설립 시도 때 회사는 회유 후 각서를 쓰게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인사팀, 노무팀, 상무급 임원 등이 직접 찾아와 점장 승진까지 (우리가) 책임져주겠다, 현재 노조위원장(한국노총 소속)을 교체시켜줄테니 민주노총 노조는 절대 하지마라고 회유했다”고 밝혔다. 2011년 8월8일 노조설립 주도자들은 회사의 강요에 의해 “민주노총의 정치적.투쟁적 노동운동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으며, 회사의 안정적 노사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부적절한 행동 및 사규 위반시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을 것을 약속한다”고 자필로 각서를 썼다.

   
▲ 좌측은 김영주 위원장이 받은 경고장. 우측은 2011년 노조 설립 준비 때 사측으로부터 작성을 강요받은 '민주노총과 연관되지 않겠다'는 각서
 

사찰 의혹도 있다. 실제로 롯데마트 직원 이모씨가 2011년 10월31일 경영지원부문장에게 보낸 메일엔 "10월30일(일)요일 민주노총(김광창국장)을 오후1시 민주노총 당사 시민회관 옆 건물 앞 주차장에서 만나" "목적:친분관계형성과 추후 김영주씨 복수노조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만남을 목적" "밤12시10분경 이마트 동료직원 4명(남자1,여자3) 여자 1명은 자리를 맥주집으로 이동시 집으로 귀가하고 동료직원 3명(남자1,여자2), 김영주씨, 이 아무개 맥주를 마셨다" 등이 쓰여져 있다. 감시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만한 수준이다.

의도적인 괴롭힘은 일상적으로 겪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6년부터 노조 활동 의지를 보였고 결국 민주노조 설립을 포기하지 않아 회사로부터 ‘노조분자’로 낙인찍혀있었다. 두 번째 노조 설립 시도부터 회사는 따돌림, 보직 변경, 징계부과 등으로 김 위원장을 괴롭혔다.

“어느 시점부터 동료사원들이 말을 걸지 않고 말을 먼저 걸어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김 위원장은 전했다. 보통 신입이 맡는 보직을 10년 차가 된 김 위원장이 갑자기 맡기도 했다. 음료주류 관리는 일이 고되고 복잡해서 보통 젊은 남자 신입사원이 맡는데 회사와 마찰 후 갑자기 보직 변경이 된 것이다. 최하위 고과를 기록해 연봉이 감액된 적도 있다. 당시 마트에선 최하위 고과를 기록하면 연봉을 감액하는 규정이 있었다.

‘경고장’은 보복 징계였다. “징계 사유도 부당했고 응당 징계라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절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마트 상무급인 영업본부장은 김 위원장 담당 구역에서 유통기한 초과 식품이 발견됐다고 경고장을 부과했다. 마트 자체점검 시 유통기한 초과 식품은 매달 열 건 수준으로 발견되는 일반적인 일이다. 김 위원장은 최하위 인사고과에 시달리며 경고장을 수차례 더 받았다.

왜 ‘민주롯데마트노조’인가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왜 민주노총 문을 두드렸을까. 김영주 위원장은 한국노총 산하 롯데마트노조에서 2007년 대의원 선거, 2009년 위원장 선거에 나갔지만 떨어졌고 2009년 대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그는 ‘스스로 노동조합을 바꾸기 위해서’ 반드시 대의원이 돼야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노조가 직원들을 위해 아무 일도 안해 1년에 직원 22명이 그만두는 점포까지 생겼다. 노조가 성과급제 도입에 동의하고 연차수당촉진제도를 악용하는 회사를 옹호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곧 그는 노조로부터 제적을 당하고 조합원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2010년 설 영업 사태’ 때문이다. 이 사태는 설날을 회사 규정에 휴무로 못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매출부족을 이유로 설날 영업을 강행하려했고 노조가 직원 동의서를 받는데 적극 동참한 사건이다. 김 위원장은 반발하다 결국 김위원장 점포만 영업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는 회사와 큰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회사 벽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노조가 제적과 자격박탈을 감행해다고 김 위원장은 주장했다.

그가 회사 노조의 무력함과 사측의 반노조기조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사건은 하나 더 있다. 2005년 롯데마트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사측이 전면 개입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노무과장이 대의원 4명을 포섭해 유세·발언을 교육시키고 연설문을 작성해주는 등 직접 선거합숙을 시켰다는 사실을 내부고발자를 통해 들었다. 그는 지금 노동조합 안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조가 마트노동자 권리를 되찾는 씨앗이 될 수 있을 것”

“민주노조를 시작하면서 다시 우리가 롯데마트의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회사에 끌려가는 노조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조를 만들어야죠” 김영주 위원장이 밝힌 민주롯데마트노조 출범에 대한 포부다.

   
▲ 국내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롯데마트
 

롯데마트 소속 전체 노동자는 1만9300명 정도다. 이 중 민주롯데마트노조를 시작하는 이는 많아야 9명이다. 회사의 노조 방해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9명이 버틸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은 “이마트도 정규직 3명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지부만 14개가 설립됐다”며 “이 노조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조라는 믿음을 주면 직원들도 진정성을 알아봐 줄 것이다. 선명하게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주롯데마트노조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고소고발을 시작으로 롯데마트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조합원과 지부를 꾸준히 늘려 대표교섭권을 쟁취하고 단체협약체결까지 달려보겠다는 게 지금의 목표다.

롯데마트는 1998년 4월에 창립돼 2014년 기준 109개까지 점포를 늘리고 6조 4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국 3대 마트 중 하나다.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회장은 ‘가족경영, 윤리경영, 상생경영’을 약속한 바있다. 롯데마트 제2노조 민주롯데마트노조의 앞길이 그 약속만큼 순탄할 수 있을 진 불확실하다. 김영주 위원장은 “똘똘뭉쳐서 버텨갈 것”이라며 “직원한테만 윤리경영 요구하지 말고 회사 스스로 윤리를 지켜야 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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