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토론회 '라디오의 미래, 라디오 특별법 제정과 수신확대의 필요성'에서 도발적 제안이 나왔다. “스마트라디오 5000만대를 보급할 수 있다”는 긴급제언이었다. 전제는 ‘스마트폰 내장 FM수신칩 활성화와 하이브리드앱’이다. 임재윤 MBC미래방송연구소 차장(라디오 PD)은 스마트폰과 지상파라디오가 결합된 하이브리드라디오를 미래 라디오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하이브리드라디오는 지상파의 장점(막강한 동시 전송 능력)과 인터넷망의 장점(확장성과 양방향성)을 결합한 라디오다. 전송 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디오는 지상파(FM혹은 DAB+등의 디지털라디오)로 전달하고, 기타 방송정보 전달과 청취자 피드백, 온디맨드, SNS공유 등 스마트 확장 기능은 인터넷망에 의존한다. 스마트폰에 지상파수신칩(FM혹은 DAB+수신칩)을 내장하고 하이브리드라디오 앱을 깔아서 쓰는 방식이다.
 

   
Nextradio 앱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쳐
 

실제로 영국, 미국 등 라디오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된 국가에서는 하이브리드라디오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이동통신사 Sprint의 스마트폰에서 찾아볼 수 있는 ‘nextradio’ 앱이다. nextradio 이용자는 주파수가 아닌 브랜드와 로고이미지로 라디오 채널을 고를 수 있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편성표나 선곡 등 프로그램 정보를 볼 수 있다. 제작진에게 메세지를 보내거나 해당 채널을 SNS에 즉시 공유할 수 있고 청취하는 노래가 마음에 들면 음원도 바로 구입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라디오, 디지털라디오 도입 논의의 돌파구”

임 PD는 하이브리드라디오가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디지털라디오 도입 논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디지털라디오는 음성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압축/전송하는 기술로서, 현재DAB+, DRM, HD Radio 등의 기술 표준이 쓰이고 있다. 아날로그 FM과 달리 하나의 전파에 영상, 음성, 문자 등 복수의 정보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고, 정보압축률이 높아 같은 주파수 범위 내에 FM보다 몇 배 더 많은 채널을 더 설정할 수 있다). 국내 디지털라디오 도입 논의는 단말기 보급 실패를 우려해 사실상 중단 상태에 있는데, 스마트폰 내장 지상파수신칩(FM수신칩) 사용을 활성화하여 스마트폰을 통한 라디오 청취를 일반화한 후, 스마트폰 교체 시기에 해당 칩을 FM에서 디지털라디오칩(DAB+ 등)으로 변경하면  이용자 저항 없이 단말기 보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국내 스마트폰 평균 교체 주기는 1년 2개월이다)

한편 하이브리드라디오는 디지털라디오 도입 외에도 진화된 청취 경험 제공, 청취율 조사 고도화와 빅데이터 활용, 스마트미디어로의 이미지 제고, 재난 매체로의 활용도 증대 등 한국 라디오산업의 여러 난제들을 관통하는 해법이된다고 임피디는 주장한다. 데이터소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올드미디어의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FM라디오의 스마트폰 탑재를 꺼리던 이동통신사나 제조사에게도 하이브리드라디오는 매력적인 유인이 될 수 있다. 효율적인 재난통신망 구축을 위해 고심하는 정부도 가성비 높은 백업 재난 매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임피디의 주장이다.

스마트폰에 FM수신칩 기본 내장, 모르셨죠?

임 PD는 이미 많은 스마트폰에 FM수신칩이 내장돼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커넥티비티 칩은 wifi, 블루투스와 더불어 FM기능이 통합된 소위 ‘Combo’칩인 경우가 많으며, FM기능의 포함 여부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안테나 경우도 이어폰을 안테나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스마트폰 내의 간단한 조치로 해결가능하다. 수신칩 구동을 위한 API 문제도 제조사가 별도로 추가해서 공개하면 되므로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이브리드라디오 앱을 이용하면 라디오를 들으면서 방송 정보 확인, 음원구입, SNS에 공유 등이 가능하다. Nextradio 앱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쳐.
 

미국의 경우 대부분 스마트폰에 FM수신칩이 내장되어 있으나, 데이터소비 감소를 우려한 이통사가 이를 불활성시켜 출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방송업계는 이를 활성화시킬 것을 정부와 이통사, 제조사 등에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며, 2013년 스프린트를 시작으로 올여름 AT&T와 T-Mobile까지 여러 이통사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스마트폰에서 FM으로 라디오를 듣는 것은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에 비해 청취자 이득이 크다. 데이터 비용과 배터리 소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FM수신칩은 인터넷망을 쓰지 않기 때문에 라디오를 들어도 데이터요금 부담이 없고 스트리밍보다 배터리 소모량이 3~5배 가량 적다. 스마트폰이 라디오 단말기로서 보편화되는 기회일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주파수가 아닌 채널명으로 채널을 선택하고 청취와 동시에 방송 정보를 볼 수 있으며 실시간 피드백, 주문형 서비스, 실시간 음원 구입 등이 가능한 것이 하이브리드라디오다. 스마트기기 청취자가 충분히 편익을 느껴 이용률이 늘어날 수 있다.

   
하이브리드라디오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편익. ⓒ 임재윤 MBC 미래방송연구소 차장 발제자료
 

“이동통신사·제조사에게도 이익 제공” 설득이 관건

문제는 어떻게 실현시키느냐다. 이동통신사는 데이터 사용량이 수익과 비례하기 때문에 FM수신칩 활성화가 달가울 리 없다.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납품한다. 또 애플과 같은 과점적 글로벌 제조사들은 FM수신칩을 활성화하라는 각국의 라디오업계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하이브리드라디오는 이통사·제조사가 기존에 생각하던 고전적 형태의 FM라디오가 아니다. 라디오앱이 다른 앱과 연동돼있기 때문에 앱 사용이 증가할수록 다른 서비스 사용과 데이터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 또한 가입자에게 경제적인 인포테인먼트 선택권을 줘 차별적 마케팅 및 가입유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라디오사업자에게도 이득이다.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짐으로써 청취율이나 청취행태를 더 정확히 조사할 수 있게 돼 편성 고도화와 광고수익 증대를 꾀할 수 있다. 스마트미디어로의 전환에 따라 ‘라디오는 올드미디어’라는 인식에서 탈피할 수도 있다. 임PD가 “관련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실질적 유인을 준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LG와 삼성도 최신 플래그쉽 스마트폰들까지 FM수신 기능을 활성화해서 미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Nextradio 앱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쳐.
 

실제로 미국에서는 라디오업계와 이통사 간 제휴가 이뤄졌다.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는 2013년 미국 라디오업계가 지원하는 하이브리드라디오앱 Nextradio와 제휴, FM수신칩을 활성화하고 라디오앱을 선탑재한 상태로 판매하고 있다. AT&T, T-Mobile 등 다른 이동통신사들도 올여름 연달아FM수신칩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라디오사업자들이 발 벗고 나서야

디지털라디오, 하이브리드라디오가 도입되고 라디오산업이 활성화된 국가의 공통점은 모두 라디오업계의 끈질긴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방송협회, 유럽방송협회, NPR, BBC 등 미국과 유럽의 방송사업자들은 이동통신사, 제조자, 정부를 향해 끈질기게 FM수신칩 활성화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미국의 4대 이통사 중 3개가 FM수신칩 활성화 계획을 밝혔고 유럽에서도 FM이나 DAB 라디오 수신이 가능한 모델이 늘어나고 있다.

임PD는 “국내에서 FM칩 활성화 주장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라디오업계가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한 실행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파이를 키워 같이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의 생존법”이라고 주장했다. 방송사업자를 필두로 방송협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디지털라디오 전환 과제는 요원해지고 결국 라디오산업의 침체기가 더 지속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라디오는 침체를 탈피할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