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당시 고영주(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울지검 검사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한 기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관에 불법 감금된 채 알몸으로 잠을 자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과 팀블로그를 공동 운영하고 있는 김훤주 기자는 8일 블로그에 올린 <고영주가 말한 ‘당사자 동의 합숙 수사’의 실상>이라는 글에서 “1985년 7월 시골 고향집에서 경찰에 붙잡힌 후 서울 어느 한 경찰서에서 구둣발과 주먹으로 좀 얻어맞은 다음 끌려간 데가 고 이사장이 입에 올린 ‘여관’이었다”고 술회했다.

“여관에서 수갑 찬 채로 팬티도 벗어야 했다”

김 기자는 “당시 경찰이나 검찰이 여관에 사람을 가두면서 ‘당신 여기에 있지 않을래요?’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는 전혀 없었고,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며 “판단은 그들 몫이었고, 내 몫은 다만 그들이 끌면 끄는 대로 끌려가는 일뿐이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잘 때 나는 옷을 팬티 한 조각도 남김없이 홀라당 벗어야 했는데, 벗겨진 옷가지는 경찰들이 자기네 깔고 자는 담요 밑에 집어넣어졌다”면서 “당사자 동의가 있었는데도 경찰들이 여관방에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을까, 당사자인 내가 동의를 했는데도 내 몸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그것을 자기들 등짝에 깔았을까”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오늘 카드뉴스. 글·디자인·사진=김유리·이우림·이치열 기자
 

1985년 김 기자는 한 대학 언론출판연합체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일보전진’이라는 단행본을 2000권 펴냈는데, 거기에 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았다. 그를 유죄로 이끈 장본인이 바로 고 이사장이었다.

김 기자는 지난해 2월 부산지법에서 ‘부림사건’이 재심청구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올린 글에서도 “고영주 검사는 내게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라고 강요했다”며 “어떤 때는 ‘비둘기장’이라고, 법정이나 검사실 가기 전에 머무는 검찰청 대기실인데 일어서서 몸도 제대로 돌리지 못할 만큼 아주 좁고 어두운 데다 하루 종일 또는 밤늦게까지 가둬뒀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 무죄 판결 후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이라며 “법원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학생들이 한 진술의 임의성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수긍하지 않았지만, 실제 그에게 공안 수사를 받았던 당사자들은 ‘임의로운’ 상태에서 진술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고 이사장은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문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부림사건 등 피해자들을 불법 구금한 사실과 관련해 “당시에는 임의동행제도가 있어서 유치장에 들어가지 않고 여관 같은 데에서 수사하고 그랬을 것”이라며 “공안사건 양이 많았기 때문에 조사하는 데 그런 편법들이 사용됐고, 여관에서 당사자 동의하에 합숙하면서 수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사건 조사를 지휘하는 검사로서 피의자를 여관에 감금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고, 법원에 의해 불법구금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고 이사장은 반성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되레 ‘사법부가 좌경화됐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미디어오늘 카드뉴스. 글·디자인·사진=김유리·이우림·이치열 기자
 

“고영주, 자기 객관화 못 하는 불쌍한 사람… 이념 편향은 오만함 때문” 

고 이사장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김한규 회장)는 지난 6일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선배 법조인이 아직도 ‘합숙 수사’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후배 법조인들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고 이사장은 MBC의 대주주이자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방문진의 수장임과 동시에 인권을 옹호하고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임에도, 사법권의 독립을 뒤흔드는 발언으로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훤주 기자는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고 이사장이 자기가 했던 행동 잘못됐다고 반성하면 좋은데, 반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30년의 검사 시절을 부정하면 자기가 살아온 한평생이 무너지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명예욕이든 권력욕에서든 자신의 지난날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과거에 늘 매달려 있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당시 자기 나름에선 합·불법 따지지 않는 시절이어서 마음대로 수사를 했는데, 이게 전부 불법이었다고 자백하기엔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이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객관적 기준에서 보면 그때 임의동행제도가 있었어도 아무 데나 가둘 수 있다는 건 아니어서 100% 불법이고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고 이사장이 방문진 이사장이 된 후에도 여전히 이념 편향적인 발언을 남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김 기자는 “특히 상대방 두고 발언할 때는 자기가 확인할 책임이 있는데, 그는 공안검사로 지내면서 늘 본인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자기 판단의 근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자기 객관화가 안 돼 있는 사람”이라며 “검사로서 또는 지배 엘리트로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김 기자는 계속되는 사퇴 요구에도 고 이사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방문진 이사장을 평생 할 것도 아니고 임기 후 변호사로 살아야 하는데, 지금의 자리가 자기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역할 또는 임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고 이사장을 ‘임명’했지 ‘임면권’은 없다고 말장난을 하던데, 어쨌든 만약 임명된 사람이 잘못됐다면 임명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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