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중 고대사 부분이 논란이다. 지난 4월17일 국회 제32차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동북아특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판의 초점은 한 군현(한사군)을 한반도 안에 표시한 것과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것 등이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에 근거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날 동북아특위에서 동북아역사재단 편찬위원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한사군 한반도설은 동북공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이고, 독도 표기 누락은 실수”라고 답했다. 임 교수는 동북아역사지도는 오는 2018년까지 완성될 계획이므로 여러 지적을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보낸 이런 내용의 지도가 실렸다는 점도 지적됐다. 같은 지적은 지난 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 김호섭 이사장은 “이 일은 2012년 12월에 완료가 된 사항”이라며 “이런 지적에 대해 수용하고 있고, 앞으로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다음날인 지난 6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입장을 바꿔 뒤늦게 해명자료를 냈다. 해명의 핵심은 중국의 이해관계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논박하는 검토의견이고 미국에 보낸 문건은 한국 학계의 공인된 이해를 토대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중앙일보는 지난 7일 <동북아역사재단의 궤변>를 통해 “기관장조차 ‘학계에 통일된 견해가 없다’고 했는데 기관은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등 일련의 언론기사를 둘러싼 논쟁은 뜨거웠다. 사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견해들에 격한 표현과 인신공격이 오갔다. 동북아역사지도 논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연세대 사학과 하일식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한국사 분야의 대표적 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었다.

   
▲ 연세대 하일식 사학과 교수. 사진=장슬기 기자
 

하 교수는 “영광스런 고대사를 신앙처럼 여기는 분들과는 토론이 어렵다”며 “학계에서 이미 정리된 것을 대중 정서를 업고 황당하게 공격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낙랑군을 북경 근처라 주장하는 것은 재야사학자로부터 일찍이 나왔다. 그러나 학계의 일치된 의견은 평양설이다. 평양에 낙랑군의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이런 주장을 하면 저항적 의미를 가졌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근대적 민족관념에 입각하여 고대의 낙랑군을 부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사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억지 주장을 펴면 학문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김호섭 이사장은 “상고사의 논쟁은 건전하다”고 했지만 실제 누리꾼들의 고대사 논쟁은 인신공격이 대부분이다. 고대사 교수들이 논쟁에 적극 뛰어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 교수는 "2013년 8·15 경축사에 환단고기가 인용돼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미디어오늘에 실었다"며 "칼럼 게재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꽤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말했다. 

환단고기란 민족이 시작된 시점을 말하는 ‘환단’에 대해 쓴 오래된 이야기책이다. 환단고기는 책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세계만방(世界萬方)’ ‘남녀평권(男女平權)’ 등의 근대적 표현이 들어 있어 학계에서 위서로 결론난 책이다.

하 교수도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의 자문역할을 했다. 주로 집중한 것은 삼국과 통일신라 시기이다.

- 누리꾼들 사이에서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 유무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봐야 하나?

“동북아재단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려는 쪽에서 꼬투리를 잡는 것 같다. 지도에 점과 선, 면으로 뭔가를 표시하는 기준은 자료에 나오는 인간 활동이다. 인간 활동이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했다고 해서 곧 독도까지 우리 땅이 되었다는 것은 약간의 비약이다. 다만 지금도 울릉도에서 몇 년에 한 번은 맑은 날에 독도가 보이니까, 울릉도 주민이 파도를 이겨낼 수 있을 때 독도까지 가서 어로작업을 했을 개연성은 있겠다. 물론 이 당시에 일본 열도의 주민이 독도까지 어로 활동 무대로 삼았을 가능성은 훨씬 더 희박하다.”

- 그럼 동북아특위에서 임기환 교수는 독도 표기를 실수라고 한 것은 현재의 독도 영유권을 의식해서라도 표기를 했어야 하는데 이를 빠뜨렸다는 뜻인가?

“그런 듯하다. 당시 주민들의 활동기록에 독도가 없어서 깊이 고려하지 못했을 수 있다. 특히 독도는 아주 작은 바위섬 아닌가. 울릉도는 고려시대에도 기록이 이어지지만, 독도는 조선초기에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에서 비로소 확인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혼란스런 내용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 조금씩 기록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19세기까지는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 혼란스럽게 나온다. 명칭의 혼란은 일본 쪽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독도 표기 문제는 국회와 언론 지적 이후 동북아역사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안다.” (실제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최근 수정된 지도에는 독도가 표기됐다.)

- 동북아역사지도가 한사군 한반도설을 따랐다는 의견이 있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기원전 108년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을 설치하고 이듬해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임둔과 진번은 20년 만에 폐지됐다.)

“임둔, 진번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정설이 없다. 다만 일찍이 그 위치를 성기게 추정한 경우가 이병도이다. 일본 학자는 한반도 남부로 추정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 학계에서는 분명한 자료가 없으니까 자세히 다룬 논문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지도팀에서 자의적으로 새로 판단하기보다 기존 논문에 근거를 두는 쪽을 선택해서 이병도가 언급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만 나 개인은 임둔, 진번의 위치 판단을 보류하는 입장이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재직했던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현도군은 고구려에 쫒겨 여러 번 옮기지만, 처음 어디에 설치되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일제 강점기에 ‘낙랑붐’이 일면서 위조 봉니(封泥, 죽간·목간 등 문서를 봉인할 때 쓰는 점토 덩어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인보는 이를 지적하고 또 문서를 받은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맞다고 했지만, 중국에서도 보낸 곳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평양 부근에는 벽돌무덤 등 중국계 유적과 유물이 다수 발견됐고,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발굴한 것들도 더러 있다. 이들 유적은 고조선 이래 토착세력이 남긴 유적, 유물과 공존하고 있다.

낙랑군이 어디냐를 놓고 감정적 논란이 이는 분위기가 연구자에게 거북하다. 고구려가 요서까지 진출하는데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껄끄러워해야 하나, 진흥왕이 황초령·마운령(함경도 일대)까지 진출하는데 함경도 사람들이 기분 나빠해야 하나? 물론 이해는 간다. 나라를 잃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일제를 극복하려면 식민사학이 짠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일제는 한사군을 놓고 조선은 일찍부터 외부의 식민지였다, 타율적이다, 따라서 근대화도 일본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식의 식민사관을 퍼뜨렸다. 제국주의 침략을 고대의 정복 전쟁과 동일시하며 현실의 필요에 따라 고대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 전쟁과 정복은 흔한 일이었고, 오늘날 같은 민족의식도 없던 시대였다. 낙랑군 평양설을 식민사학이라 비난하는 쪽이야말로, 과거 일제가 유포한 프레임에 온전히 갇혀 있는 경우이다. 

낙랑군을 북경 근방으로 옮겨 주장해도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실을 외면한 주장은 곤란하다. 식민사학 극복은 이 프레임을 넘어서는 일에서 출발한다. 우리 학계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서서 고대사를 고대사 자체로 연구해 왔다. 동북공정에 대응할 학문적 명분도 여기 있었다.”

- 지난 5일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CRS보고서 55쪽 기원전 196년 고조선 지도에 “지명만 있을 뿐 위치에 대한 사료도 없는 진번과 임둔을 각각 황해도와 함경남도 남쪽 연안에 위치시켰다”며 “이보다 약 160년 뒤에 나오는 고구려(기원전 37년)를 나타내고 진번, 임둔과 같은 글씨체와 색으로 나타내 중국 속국처럼 표기했는데 보고서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어 오해를 부르기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임둔, 진번은 한 군현의 이름이기 이전에 위만조선 때 고조선의 세력권에 편입된 고조선 영토였다. 그 이전에는 독립세력이었다. 그러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에 군이 되는 것이다. 이를 오해한 것인가? 나는 CRS보고서를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언론에 나온 지도를 보면 고조선 영역 속의 일부로 표시되어 있어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또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성립했다고 했지만, 학계는 그보다 이전, 어쩌면 고조선 말기에 이미 윤곽을 드러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아마 이를 반영한 것 같은데 왜 잘못처럼 지적받는지 모르겠다.”

   
▲ 동북아역사지도. 자료=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실
 

반만년 역사가 수많은 침략으로 기록돼서일까, 식민지 경험의 피해의식 때문일까? 하 교수는 “광대한 영토, 영광스런 고대에 대한 환상이 있다”며 “민족국가나 영토가 지금과 같지 않은데 지금의 잣대로 고대사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조선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등을 통해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추정할 수는 있지만 경계선으로 그릴만큼 뚜렷한 영토를 지배했다는 설명이 현대의 관점이라는 뜻이다. 하 교수는 “고조선의 범위 안에 반(半) 독립적인 지역들도 많았다”며 “동북아역사지도에도 경계선을 그렸다. 선이나 면으로 표시하기 어려운 시대임을 모두가 알지만, 상황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절충한 결과이다. 이 점은 자문회의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국회 동북아특위나 동북아역사재단 국감에 대한 재단의 태도에 대해 하 교수는 “고대사 연구하는 분들이 선비 스타일도 많고 자기 연구에만 파묻히는 분들이 많아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대응하지 못한 것같다”며 “연구자들이 비학문적 공격을 거북해하는 탓도 있다”고 말했다. 

고대사 논쟁이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고대사를 현대 정치에 이용할 수 있어서다. 특히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하면,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중국이 북한에 연고권을 주장하게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 교수는 “그러면 낙랑군을 북경 근방으로 옮겨놓으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중국이 망설이게 되나’라고 반문하고 싶다. 형식논리로 상상해 과도하게 만들어낸 걱정거리인 듯하다”고 했다. “만약 휴전선이 정치 군사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이 된다면 낙랑군이 문제이겠는가? 휴전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북한, 중국, 유엔을 대표한 미국이다. 한국은 휴전협정 당사국에서 빠져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의 국제법상 발언권을 먼저 걱정하고 차후책을 구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며 ‘동일체 의식’을 강조하게 되면 사회 내부의 부조리와 모순, 갈등을 덮거나 억압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이런 식의 “동일체 의식 강조는 필연적으로 사회 내부의 소수자를 적으로 만들고, 희생을 강요하며 억압하거나 외부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 극단적 사례가 게르만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즘, 신성한 천황제를 앞세운 일본 군국주의라는 것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7일 아침신문에는 당정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짓고, 오는 13일 국무회의를 전후해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 교수는 지난 2013년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받았던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 뿐 아니라 최근 정부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하 교수는 “역사교육에 대한 문화적 권리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해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유엔 보고서의 내용이 와 닿는다”며 “이 보고서는 역사를 기념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단지 그 과정과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기념은 번역 표현인데 우리식으로 예를 들자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양하는 역사 교육은 안 되며 객관적 사실들을 제시하고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가 언급한 보고서는 지난 2013년 8월 제69회 유엔 총회에 제출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의 특별조사관 보고서’인데, 그 핵심은 교과서의 종류를 하나로 하는 것은 퇴보적 조치이고, 특히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는 내용이다. 

하 교수는 “세월호 침몰 이후 자주 나오는 말이 됐지만,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학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우리도 이 땅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게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교육현장에서 정부 입맛에 맞춘 역사해석이 강요되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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