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감청 영장(통신제한조치)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던 카카오가 1년 만에 입장을 바꿨다. 일각에서는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수사하고 세무조사를 하는 등 ‘압박’이 통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는 “외압의 결과는 아니다”라며 “검찰에 협조하는 대신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의 입장변화가 어떤 이유에 있든 관건은 프라이버시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익명화’하면 끝? 

카카오가 밝힌 ‘프라이버시 침해 최소화 방안’은 익명화(블라인드) 조치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용의자 A에 대해 감청영장을 요청하면 A와 함께 대화한 사람들의 이름과 개인정보를 가려 수사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익명화 조치를 통해 전보다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된 건 사실이다. 과거 검찰이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방에 있던 2300여명의 대화명과 전화번호까지 검찰에 제공해 민간인 사찰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익명화 조치가 되면서 이전처럼 무분별하게 수사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싹쓸이 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다만 익명화를 푸는 예외도 있다. 카카오는 “수사과정에서 익명 처리한 사람 중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에 한해 대상자를 특정해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카카오는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만 요청하도록 엄격히 절차를 규정했다”고 밝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턴다

문제는 예외에 있다. 공문만으로도 정보를 요청할 수 있어 익명화가 쉽게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익명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냈던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익명화를 채택한 점 자체는 진일보한 것으로 봐야한다”면서도 “다만 검찰이 추가적인 대상의 정보를 요구할 경우 영장을 새로 발부 받아야 한다는 게 내 견해였다. 현재의 안으로는 100명이 대화하는 단체방에서 1명에 대해 영장을 신청하면 나머지 99명의 정보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남용을 막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범죄연관성이 있는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를 검찰이 판단하기 때문에 여전히 범죄혐의와 무관한 대상까지 싹쓸이 수사를 할 여지가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감청영장은 특정기간의 자료에 대해 허용하는 것으로 한번 영장을 발부받으면 같은 기간에 대해 여러차례 받는 게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길영 교수는 “문제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디지털에도 적용시키려 한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다시 영장을 발부받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증거의 경우 영장에 적시돼 있지 않은 관련성 없는 정보는 폐기하거나 환부해야 하고 관련성 여부를 판단할 전문요원이 필요하다는 원칙이 있기도 하다. 

검찰이 추가로 정보를 요청하지 않더라도 익명화된 대상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A와 B의 대화에서 B의 이름을 가려도 대화에서 상대를 지칭하게 되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1:1대화방이 아닌 단체방인 경우 사람 이름을 지칭해 부르는 게 당연하다. 굳이 이름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맥락상 상대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익명이라고 해도 대화내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집회.ⓒ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비밀채팅은 완벽할까?

카카오는 ‘비밀채팅 기능’을 활용하면 대화기록이 수사기관에 넘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익명처리를 했음에도 우려가 되면 비밀채팅기능을 이용하면 된다”면서 “카카오는 단체방에도 비밀채팅 기능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에 따르면 비밀채팅 기록은 서버에 암호화돼 저장된다. 글자 그대로 저장하는 게 아니라 특수문자처럼 처리가 돼 원래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물론 암호화에도 규칙이 있기 때문에 해독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암호화한 정보를 풀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장여경 활동가는 “이론적으로 보면 암호화 원리를 파악하면 해독이 가능하지만, 한번 암호화한 정보는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돼 수사에 활용하는 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얼마나 잘못했나?

카카오는 분명 비판받을 점이 있다. 지난해 10월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감청 영장에 대해 10월7일부터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응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번복했기 때문이다. 익명화 조치를 일찌감치 발표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카카오에 감청영장을 요청할 방안을 찾았다”고 밝힌 이후 카카오는 오후 7시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내고 익명화 조치를 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카카오가 잘한 건 아니지만 필요 이상의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건 카카오는 지난 1년 동안 현행법상 불법행위를 지속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사업자 입장에서 영장청구가 되면 원칙적으로 거부하기 힘들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오히려 카카오는 다른 사업자에 비해 프라이버시에 대해 더 많이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무런 고민 없이 감청영장에 응하고 있는 통신, 디지털 사업자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디지털 환경에 맞게 제도 손 봐야

진짜 문제는 편법적으로 수 많은 개인정보를 캐온 수사기관과 디지털 환경에도 아날로그 영장 시스템을 유지하는 법원에 있다. 오길영 교수는 “같은 대상이라도 추가적인 정보를 요구할 때는 별도의 영장을 청구하는 시스템이 디지털에도 도입돼야 한다. 법원도 디지털 환경에 걸맞게 프라이버시가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영장제도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카카오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감청자료’는 엄밀히 말해 ‘감청자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디지털 수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감청은 송수신이 가능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빼오는 걸 말한다. 그러나 현재 검찰의 통신제한조치는 서버에 저장된 정보를 2일~3일 단위로 묶어서 가져오는 식으로 사실상 편법이다. 이석우 전 대표가 검찰에 맞설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카카오톡 통신제한조치가 감청인지 아닌지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톡 실시간 감청이 허용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민식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2명이 지난 6월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법안은 국내에 사업을 하는 인터넷 및 SNS 사업자에게 감청협조 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장여경 활동가는 “카카오가 감청영장 요청에 응하지 않자 만든 법안”이라며 “카카오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법안이 철회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카오톡 실시간 감청이 현실화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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