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를 처음 배운 뒤 10년 만에 연애를 시작한 남자가 있다. 섹스를 알게 된 뒤 그는 찜방(동성애자 섹스방)에 가거나 채팅 앱을 통해 상대를 만났다. 상대와 하룻밤 잠자리만 가진 뒤 연락을 끊었다. 그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과거가 딱히 행복하진 않았다. 

그의 20대 초반 일기장에는 ‘연애하고 싶다’는 내용과 연애를 하지 못해 생긴 불평이 가득했다. 그는 당시 연애하지 못했던 이유가 “게이인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책 ‘사랑의 조건을 묻다’를 통해 자신의 연애와 삶에 대해 고백한 게이 ‘터울’을 5일 오후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사랑의 조건을 묻다/ 터울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인터뷰는 그의 책을 토대로 진행됐다. 이성애자 입장에서 성소수자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은 많지 않다. 소수자들은 이성애가 중심인 한국 사회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남들에겐 당연한 문제들도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물어봐야 했다. 약자란 수시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는 자신이 고백했던 섹스와 연애에 관한 얘기가 곧바로 게이의 연애관이 될까 우려했다. “내 경험일 뿐이다. 섹스를 하고 다닐 때도 즐기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관계에 대한 결핍 때문에 그랬다. 나와 같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서 섹스에 빠지는 경우라면 이 책이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이게 게이의 일반화된 전형이나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는 세력은 찜방과 같은 동성애 하위문화들을 통해 동성애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성애자 사이에서 성 문화가 논란이 되면 그에 맞는 성 윤리에 대해 얘기가 오가지만 동성애자들의 성 문화가 논란이 되면 동성애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이에 터울은 “찜방 문화를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 이성애자들의 성산업 인프라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조성됐는지 늘어놔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터울은 “이성애자들이 룸살롱에 가는 것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홀대하는 것이다. 결국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가 아니라 자신의 성애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다. 자신의 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대우하면서 성매매를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성애를 하대하니까 성매매 현장에서도 수많은 폭력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성정체성을 인정한 뒤 연애가 시작돼

그는 장기적인 애인을 만들게 된 시점을 “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부터”라고 말했다. 터울은 “게이가 아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성애자로 살 수 있지 않을까’하고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며 “정체성을 확실히 하지 못했으니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성애자들의 연애에 대한 얘기는 많다”며 “너무 많으면 사회적 교본에 따라 연애해야 할 것 같으니 오히려 개개인의 연애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동성애자들의 연애는 교본이 너무 없어서 난감하다”며 “모든 삶을 처음부터 만들어갈 수는 없는데 각본이 부족한 것은 공포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이 그런 각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길 바랐다. “게이가 성소수자를 대표할 수도 없고, 제가 게이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동성애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냈다. 앞으로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게이는 남들보다 더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 불편을 더는 데에 더 많은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 종교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

터울은 천주교 신자다.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종교에 왜 의지하느냐는 질문이 나오기 쉽다. 터울은 “공고하게 짜인 신앙 속에 본인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못 받으면 굉장히 힘들다”며 “그렇지만 난 천주교의 원리들이 좋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약한 모습이 있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어떤 것들을 쓰다듬어주는 느낌도 있고. 종교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pixabay.
 

또 다른 면에서는 이성애자들을 더 깊이 알 수 있기도 하다. “성당은 이성애 문화에 기초하고 있어 불편한 지점이 있지만 이성애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아픔과 그늘을 나누는 장이기도 하다. 이성애자들을 깊이 알 수 있고, 동성애자들의 삶을 어떻게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성애는 낭만적인 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성애는 같은 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시민들 가운데서는 ‘그래 둘이 알아서 사랑하고 살라’고 말한 뒤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성애는 둘 만의 감정만을 말하지 않는다. 

터울은 “동성애를 낭만적인 감정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며 “긴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동성 간 결혼 제도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동거하던 동성애인이 죽었을 경우 재산은 법적으로 애인에게 단 한 푼도 상속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30년간 함께 살았던 동성애자 커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러자 수십 년간 왕래도 없었던 가족이 상속권을 주장해서 문제가 됐다.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말 속에는 이런 긴급한 문제들도 함께 녹아있다. 한 명이 아파 응급실에 가더라도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얼마나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복지제도가 이뤄져있는지 볼 수 있다.” 

그의 책 제목은 ‘사랑의 조건을 묻다’이다. 사랑의 조건은 ‘사람’이다. 이성애자만 사람인 세상이 아니라 다양한 성애를 가진 사람도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상이다. 그는 “그 사람의 성애를 부정하는 것은 그 사람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사람이다. 사람 안에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 안에 게이도 있다. 게이 안에 다시 각각 종교와 성적 취향과 연애관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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