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한도전’이었다. 지난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멤버들이 성우들과 함께 29일 MBC에서 방영될 영화 ‘비긴어게인’ 더빙편을 제작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케이블채널을 통해 영화를 접할 수 없었던 시절 지상파가 주말마다 방영하는 외화는 사실상 TV를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독점적인 경로였다. 그 시절 방영된 영화 속 배우를 떠올리면 우리나라 성우의 목소리가 연상될 정도다. 

그러나 지금 더빙판으로 방영되는 영화는 거의 없다. 무한도전은 ‘더빙영화’를 통해 추억의 목소리들을 다시 만나며 더는 더빙판이 선호받지 않는 상황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무한도전은 더빙판이 주는 정서적인 친화성, 언어순화 등 이점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단순히 추억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외면받는 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예능이다. 이는 단순히 ‘광우병 걸린 소’, ‘형광등 100개를 켠듯한 아우라’같은 풍자자막에만 머물지 않는다. 방송의 소재에 늘 사회적 이슈를 담아 예능이지만 뉴스나 다큐멘터리처럼 의제설정을 하고 있다.

추억 속 콘텐츠나 매체를 통해 잊혀진 것들을 되살리는가 하면 우리사회가 ‘잊어선 안 되는 사건’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고 재조명한다. 무한도전이 지난 10년 동안 소환한 ‘잊혀져가는 것들’ 중 추석연휴 기간 다시 시청해도 좋을만한 작품들을 엄선했다.

1. 아날로그 라디오의 추억: ‘라디오스타’편

라디오의 전성시대가 끝난지 오래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자신의 사연이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밤마다 신해철이나 성시경과 같은 라디오스타를 기다리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9월 무한도전은 ‘라디오스타’특집을 선보였다. 

구성은 ‘더빙외화특집’과 비슷하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직접 MBC 라디오DJ로 출연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종일 릴레이 출연을 했다. 멤버들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기존 방송포맷을 유지했다. ‘잠깐’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날을 계기로 MBC 라디오 청취율이 올라가거나 오디오 기기 판매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왜 라디오일까. 무한도전은 음성을 통해 소통하는 라디오를 통해 미디어가 주는 ‘소통’과 ‘교감’ 본연의 의미에 주목했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시장 상인, 버스기사, 사무실 직원, 학생 등이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담았다. 이에 대해 김태호 PD는 “청취자가 없으면 방송을 할 이유가 없다. 라디오 특집은 공감, 소통, 교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MBC 무한도전 라디오스타편 화면 갈무리.
 

2. 잊혀진 일제강점기의 비극: ‘배달의 무도’편

‘더빙외화’와 ‘라디오’가 추억에 집중했다면 이달 초 방영된 ‘배달의 무도’는 우리사회가 망각하고 있는 근현대사의 비극들을 다시금 꺼냈다. ‘배달의 무도’는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추억의 음식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유재석과 하하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징용된 이들의 생활터전이 된 우토로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일본 정부의 재개발에 맞서 오랜기간 싸우고 있었다. 우토로 마을의 사연은 2005년 한겨레21 보도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와 참여정부가 나서면서 지원이 이뤄지게 됐다. 이후 2012년 우토로국제대책회의가 해산된 뒤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무한도전은 우토로 마을을 다시 주목했다. 재개발을 앞둔 주민들에게 마을 곳곳을 찍으며 사진선물을 남긴다. 하하는 우토로마을 뿐 아니라 군함도에도 찾아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과거를 설명한다. ‘배달의 무도’에서 무한도전은 미국 방문 때 해외입양 문제를, 독일 방문 때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던 ‘잊혀진 과거’를 다시금 조명했다.

   
▲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편 화면 갈무리.
 

3. 재2의 용산참사: ‘여드름 브레이크’편

2009년 6월 방영된 ‘여드름 브레이크’편은 ‘나중에 밝혀진’ 가장 사회성 짙은 특집이었다. 겉은 평범했다. 상금이 걸려있고 멤버들이 서로 쫓고 쫓긴다는 점은 다른 추격전 포맷의 방송과 다르지 않았으나, 방영 후 극의 장치들에 대한 분석이 언론과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뤄지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이 편에서 남산 시민아파트, 동대문 연예인아파트, 오쇠삼거리가 등장한다. 이 장소는 모두 철거가 예정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멤버들이 악을 쓰며 받으려고 한 상금 300만 원은 이들 장소의 철거 이주민들에게 돌아갈 보상금 액수였다. 모두들 힘겹게 싸웠지만 턱 없이 비현실적인 보상금을 받은 것이다.

방송에서 제작진이나 멤버들은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철거민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철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더욱이 2009년 2월 용산참사가 발생했지만 여드름 브레이크편이 방영된 6월은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멀어질 때였다.  

4. 비인기스포츠 집중조명: ‘봅슬레이’편, ‘조정’편, ‘WM7’편, ‘주먹이 운다’편

무한도전은 꾸준히 비인기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WM7 프로레슬링 특집’에서는 한때 큰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외면받는 프로레슬링을 멤버들이 직접 선보이는 기획을 했다. ‘봅슬레이편’에서는 멤버들이 직접 봅슬레이를 배우고 경기에 출전하며 이 스포츠가 열악한 상황에 놓였는지 알렸다. 

그 중 2010년 1월 방영된 여자복싱을 다룬 ‘주먹이운다’편은 비인기 종목에 관심을 뒀다는 점 외에도 ‘스포츠 국가주의’를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여자복싱 한일전을 앞두고 세계챔피언인 한국 선수를 지원한다는 게 처음 기획이었다. 한국 선수는 탈북자 가족인 최현미 선수다. 스폰서 하나 구하기도 힘든 국내복싱의 열악한 현실에서, 탈북자라는 신분으로 최현미 선수가 세계 챔피언을 따냈다.

일반적인 구성이라면 우리 선수를 ‘선’에 두고 일본 선수를 ‘악’으로 치환했겠지만 무한도전은 달랐다. 멤버들은 일본 선수에 적대심을 느끼지만 직접 만나본 이후 태도가 변한다. 일본 선수인 쓰바사 선수 역시 가정형편이 어렵다. 2008년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체육관도 따로 없어 가정집을 개조한 곳에서 운동을 할 정도다. 무한도전은 한국과 일본 양 선수 모두를 응원한다. 보도에서도 흔히 행해지는 스포츠 국가주의를 투영하지 않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만 집중한 것이다.

   
▲ MBC 무한도전 봅슬레이편 화면 갈무리.
 

5. 국가가 포기한 역사교육 대신하다: TV특강편

역사는 고리타분하고 어렵다. 한때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했지만 수능 필수과목에서 한국사가 빠지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기도 하다. 2013년 5월 무한도전은 TV특강편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한국사 강의를 했다. 멤버들이 한국사를 공부해 역사에 무관심한 아이돌그룹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내용이다. 

하이라이트는 유재석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이날 무한도전 멤버들은 역사를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왜 역사를 배워야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박명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문제점에 대해 강의를 하며 “왜 일본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방송의 방영일은 5월18일이다. 5.18을 따로 강의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사의 문제점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지 짚었다. 방영 이후 “국가가 포기한 역사 교육을 무한도전이 대신했다”는 평이 이어졌다.

   
▲ MBC 무한도전 TV특강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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