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대신 검정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역사 전문가들이 이를 두고 ‘꼼수’라고 지적했다. 

2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교육부 담당자들에게 국정감사 이후 검정으로 갈 때 어떻게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연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교과서 국정화 대신 ‘검정 강화’ 방안을 ‘특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같은날 동아일보는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황 장관이 국정화 강행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교육부가 검정제 강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교육부는 황 장관의 ‘특별지시’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역사교육지원T/F팀 관계자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검정을 강화하는 방안은 이미 지난해 연구보고서에서 나왔던 방안”이라며 “보도에 난 것처럼 최근 장관이 검정 강화방안을 새롭게 지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지난 22일 국민일보 2면. 안양옥 교총 회장 인터뷰 기사.
 

지난 22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EBS 이사)은 고등학교 교과서는 검정제를 유지하지만 중학교 교과서는 국정화를 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현재 초등학교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역사학계 뿐 아니라 교육계 전반에서 교육부의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집필 과정에 손을 대면 국정교과서와 다를 바가 없다”며 “정부가 우회전술을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교과서 논쟁이 국정과 검정 중 어떤 제도를 택하는지에 한정돼선 안 된다. 채웅석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역사교육에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율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요즘 교육부의 정책방향을 보면 권력이 학문에 개입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교과서 집필에 대해 더 많이 개입하겠다는 방안은 헌법 가치에 위반된다는 지적도 있다. 채 교수는 “1992년 헌법재판소가 교육법(제157조)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국정제는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국정보다는 검정, 검정보다는 자유발행제가 더 낫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서남수 전 장관(현 EBS 이사장) 시절 마련한 보고서에 따르면 검정 교과서 저작자의 요건을 ‘전·현직 교원, 교육전문직, 전문 연구기관 연구원, 해당 교과 전문가’로 정하고 최대 10년의 경력 기준으로 정했다. 현재는 교과서 집필자 자격요건이 없다.

이에 대해 이준식 위원은 “정부와 여당이 프레임 만들기를 잘한다”며 “마치 지금까지 자격 없는 자들 때문에 교과서의 오류가 많았던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식 위원은 “현재 검정제에서도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가 교과서 만드는데 관여하며 국정에 준하는 효과를 가진다”며 “교육부안에 따르면 2차에 걸쳐 검정을 하고 그 과정에서 교육부가 수시로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현재도 현직 교사들과 교수급들이 다수 참여해 만들고 교육부가 승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교과서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지적해온 것인데,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학계나 교육계의 능력을 믿고 정부는 이를 지원한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정부가 교육을 주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지난 21일 오전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법학계 교수와 연구자 등 법학연구자들 107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에 반대하는 법학연구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제공
 

한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대학 교수들의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가톨릭대는 지난 24일 채웅석 교수 등 45명이 성명을 통해 “2003년 제68회 UN 총회 특별보고서에서 폭넓게 역사교과서가 제공돼 교사가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과정이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필요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한국외대는 반병률(사학과) 교수 등 58명이 성명을 통해 “국정제 채택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품격에 적지 않은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며 “한류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었던 민주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가 이루어낸 성과”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역사 거꾸로 돌리나”, 교수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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