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더니 삭제당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3자의 요청 또는 직권으로 명예훼손성 인터넷게시물에 대해 심의하고,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판결이 나올 경우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안을 24일 입안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이 대통령이나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에게 불리한 게시물을 마구잡이로 삭제하려는 하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말을 한 직후 심의규정 개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심의위는 “약자를 위한 조치다. 악용되지 않을테니 믿어달라”고 하지만 심의규정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1. ‘말로만’ 공인 제외

심의규정 개정이 표현의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박효종 방통심의위 위원장은 여러차례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 공인이 부당한 혜택을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공인에 대해 제3자 심의나 직권심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개정안에는 ‘공인에 대한 예외조항’은커녕 ‘공인’이라는 표현도 보이지 않는다. 

법률에 명시하지 않으니 강제력이 없다. 방통심의위 야당 위원들이 ‘공인을 제외한다는 점을 개정안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여당추천 위원들은 ‘공수표’를 남발했다. 하남신 위원은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우 심의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것을 심의위원들의 소신과 양심을 걸고 속기록에 남긴다면 이보다 뚜렷하고 정확한 보장장치가 어디있겠나”라고 말했다. 물론, 여당 위원들이 나중에 입장을 바꿔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 명예훼손 심의는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꼈을 경우 당사자 혹은 대리인의 신청으로 가능하지만, 심의규정이 개정되면 제3자의 신고 혹은 방통위가 직권으로 심의할 수 있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2. ‘김무성’은 안 되지만 김무성 사위 글은 삭제

백보 양보해서 여당 심의위원들의 ‘소신과 양심’을 믿어보자. 그러나 심의위가 공인에 대한 자발적 심의를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꼼수가 나올 수 있다. 공인의 주변인물과 가족에 대한 자발적 심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인이다. 그러나 임용특혜 논란을 빚었던 김무성 대표의 딸은 공인이 아니다. 마약을 했던 김무성 대표의 사위도 마찬가지다. 결국 김무성 대표와 딸과 사위가 공인이 아니라는 점을 빌미로 김무성 대표가 딸의 임용특혜와 사위의 집행유예 판결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게시글도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관련 의혹도 마찬가지다. ‘비선’은 공직이 없기 때문에 공인으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정윤회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에 대한 의혹제기는 언제든 심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뇌물을 주거나 받았다면 소속 해당 국회의원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보좌관 역시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순간 삭제당할지도 모른다.

3. ‘공인인 듯 공인아닌 공인같은 너’

‘공인 예외 조항’을 개정안에 넣지 않으면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공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나 전직 국회의원 등 ‘전직’인사들은 보기에 따라 공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전직 정치인이나 기관장을 공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임기가 끝난 뒤 과거 재임 중 올라온 비판글을 심의위가 알아서 삭제할 가능성도 있다.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도 어떻게 봐야 할지 뚜렷한 기준이 없다. 이 경우 여당 심의위원이 당당하게 걸었던 ‘소신과 양심’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언제든 악용할 수 있다.

   
▲ 심의규정이 개정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직권으로 명예훼손여부를 판단해 심의를 할 수 있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4. ‘명예훼손 유죄’ 판결나면 글 삭제?

심의위는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 유죄 판결이 나면 관련 게시글을 삭제한다”는 방침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도 ‘꼼수’가 숨어있다. 세월호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제기에 대한 명예훼손 판결이 ‘유죄’로 결론나면 관련 게시물이 삭제되는데, 문제는 관련 게시물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다. 

보수단체가 산케이신문 구로다 서울지국장에게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이 유죄 판결이 나면 조선일보와 산케이신문의 칼럼처럼 ‘정윤회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혹은 당연히 삭제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7시간 동안 뭐했나. 제대로 구조도 못하고”라는 주장은 모호하지만 여당6:야당3의 구조인 심의위에서 이 같은 글도 무더기로 삭제할 수 있다. 폭넓게 보면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를 비판한 글이라도 ‘정윤회’나 ‘7시간 의혹’등 표현이 들어갈 경우 무더기로 삭제할 수도 있다. 

5. 약자보호는 지금도 가능해

심의위는 권력자를 위한 심의규정 개정이라는 비판에 ‘심의규정 개정’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사이버성폭력이나 음란물 유포, 학교폭력 관련 게시물 등으로 피해를 입은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심의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현재 규정으로도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을 필요로 하는 미성년자나 법률상 무능력자 뿐 아니라 일반인도 언제든 대리인을 선임해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직접 심의나 제3자 신고에 의한 심의가 필요하다면 법정대리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신고할 수 있도록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에 대해 심의위가 자발적으로 심의에 나설 경우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사안이 공론화돼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6. 상위법에 어긋나니 바꾸는 게 맞다?

심의위가 심의규정을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상위법과 심의규정의 충돌’이다.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은 반의사불벌죄(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이상 처벌)가 가능한데 하위규정인 정보통신심의규정의 경우 친고죄처럼 당사자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으니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심의규정과 상하관계가 아닌 별개라고 보는 게 맞다. 지난 8월 법률가 205명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범죄와 형벌을 규율하는 형사법과 심의위의 통신심의를 규율하는 행정법은 전혀 다른 법체계”라며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보통신망법도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제도와 전혀 다른 별개의 제도”라며 밝혔다. 심의위의 심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가 있는 것이지 별개의 상위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만에 하나 이들 법이 심의규정의 상위법이라고 본다면 심의위는 명예훼손 심의규정이 아닌 심의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심의규정은 ‘비과학적인 생활태도 조장’, ‘교육기풍을 해치는 내용’, ‘사회적인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 등을 심의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정보통신망법이나 형법에 근거가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명예훼손 심의규정만 개정하겠다는 건 상위법과 충돌에 따른 개선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다.

   
ⓒiStock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