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개인의 명예훼손에 대해 제3자 신고만으로 직접 심의를 하게 된다. 정치인, 경제인 등 권력자를 위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박효종 심의위원장은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신청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점을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4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보고받았다. 개정안은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글에 대한 심의요청 범위를 당사자에서 제3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으로 오는 22일까지 입안예고를 거친 후 11월 전체회의에서 최종의결해 확정할 계획이다. 야당 위원들은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어쩔 수 없이 보고는 받지만 입안예고 기간 때 법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대안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노컷뉴스 자료사진
 

심의규정 개정은 소수의 계층만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악용될 소지가 있어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7시간 의혹’을 다룬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보수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하면 심의위가 자발적으로 심의를 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합당한 권력 비판까지 차단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며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해왔다.

논란이 되자 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에 한해서는 제3자 신고만으로 심의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인’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여당 추천 하남신 위원은 “공인의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면서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우 심의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것을 심의위원들의 소신과 양심을 걸고 속기록에 남긴다면 이보다 뚜렷하고 정확한 보장장치가 어디있겠나”라고 말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 유죄판결이 내려진 경우 심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방청인 신분으로 전체회의를 지켜본 박경신 전 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은 발언권을 요구하며 “심의규정 개정안이 언급된 이래 지금까지 한 글자도 변함없이 입안예고가 됐다”면서 “당초 약속과 달리 ‘공인은 제외한다’는 점을 명시하지 않은 데 대해 위원장이 아무런 발언 없이 넘어가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 방청인으로 참석한 박경신 전 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이 발언권을 요구하자 심의위 직권들이 저지하고 있다. 사진=미디어기독연대 제공
 

박경신 교수가 발언권을 요구하자 심의위 직원들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이 퇴장을 명하지 않았음에도 조광휘 통신심의국장은 박경신 전 위원에게 반말로 “당신 뭐하는거야.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권혁성 운영지원팀 차장은 박경신 전 위원을 붙잡아 퇴장시키려 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끝내 “발언권 요청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며 정회를 선언했다.

‘공인은 예외’라는 점을 명시하더라도 언제든지 ‘꼼수’를 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공인의 가족, 보좌진 등 공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면서 “이에 대해 확실히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인물을 공인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주변 인물들은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편법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김무성 대표 자녀의 특혜임용 의혹, 사위의 마약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3자 신고로 명예훼손 심의가 가능하다. 

회의에 앞서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오후 2시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정부가 공영방송을 국영방송화하고 작은 매체들을 사이비언론으로 몰고, 포털이 편향됐다며 비난하고 이제는 심의규정 개정을 통해 권력을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까지 쫓아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공동논평을 내고 “통신심의규정 개정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권력자와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를 낳고 있는 권력을 위한 특혜성 보호규정인 동시에,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24일 오후 2시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했다.사진=언론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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