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지자체 구성원들이 조선일보가 주도하는 통일나눔펀드에 반강제적으로 가입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희망펀드의 억지 가입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민간 재단인 펀드에 정부기관과 지자체를 동원한 것으로 ‘관제 펀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는 전직원 4968명이 펀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를 ‘자발적 가입’으로 보기는 어렵다. 개별 직원이 통일나눔펀드에 자발적으로 납부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조성된 사회공헌활동 기금을 전용해 전직원 명의로 가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LH관계자는 “통일 준비에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사내 인트라넷에 가입을 권유하는 안내문을 게재했다”며 “자세한 금액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게시판에 펀드 가입을 독려하는 글을 게시했다. 또한 가입 독려글에 대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이틀 뒤 보직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가입을 독촉하고 이후 펀드와 관련해 답을 달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수차례 발송했다. 평가원 관계자 A씨는 “불우이웃 돕기에 참여하라는 일은 있어도 민간재단 펀드에 가입하라는 공지는 드물다”고 말했다.

 

   
▲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A씨는 “보직자들 중에는 ‘대체 이게 뭐냐’며 항의하신 분도 있었다”며 “말로는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것이 공공기관 평가에 어떤 식으로 알게모르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공공기관 원장들은 이런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청년희망펀드도 이런 식으로 내려올지 모른다”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불만이 큰 건 공무원 조직이다. 국토부 산하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 B씨는 “통일나눔펀드에 가입하라는 공문이 1차로 내려왔는데 내용이 뭔지 모르니 사람들이 신청을 잘 안했다. 그러니까 더 독려하라는 전달이 내려왔다”며 “공무원 조직은 관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한다. 한번 해서 안 되면 두 번째는 100% 해야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강제 가입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10일 허기도 군수를 비롯한 공직자 500여명이 펀드에 가입했다는 산청군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산청군지부 자유게시판에는 산청군에서 공무원들에게 전달한 펀드 가입 안내문과 함께 “아무리 공무원이 호구라해도 절 모르고 시주하라고 하는 꼴 보니까 통일은 멀었고 힘 없는 졸병들 주머니나 털려고”라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다른 공무원들은 “제발 자율이라면서 담당부서에서 사장님께 낯 내려고 무리하게 독려하지 맙시다. 국가기관도 아닌 재단법인 통일펀드를 왜 우리들이 반강제로 들어야 합니까”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발상이라고 본다. 자율? 코묻는 돈으로 재단법인 펀드?” 등의 반응을 보였다. 

 

   
▲ 통일나눔펀드 약정자를 소개하는 조선일보 지면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 C씨는 “강제까지는 아닌데 공직사회의 특성상 과장님이 하라고 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안 할 수 없다”며 “그래서 1인당 1만원 정도 참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C씨는 “조선일보가 주도해 재단인 것은 몰랐다. 그래서 기업들이 이런 재단을 만드나 보다. 이런 것에 대한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고 좋은 취지니 가입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이런 식으로 모아진 돈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보수 극우 단체를 위해 쓰일줄 누가 알겠나”며 “내부에서는 현대판 ‘평화의 댐’ 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평화의 댐은 전두환 정권이 금강산댐에서 물을 방류하면 서울은 물바다가 된다는 반공 캠페인 하에서 성금을 모은 사건이다. 기업이나 정부부처에는 강제로 성금을 할당하기도 했다. 

한편 통일나눔펀드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기자들에게 펀드 가입자를 데려오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재단이 출범한 직후인 7월 조선일보 편집국의 한 기자는 “지난 주 통일과 나눔 기획에 기부해줄 약정자를 부서 당 수십 명씩 찾아오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금액 부담은 크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모은 기부자가 아니고 억지로 할당해서 시킨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일나눔펀드는 조선일보가 주도해 설립한 ‘통일과 나눔 재단’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조선일보 ‘통일이 미래다’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이사장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며 안 이사장은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조선일보는 매일 지면신문에서 통일나눔펀드 참여 현황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펀드 가입자는 10만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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