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연에 갔더니 저를 ‘빚 갚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더라고요. 빚 갚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못 갚을 권리를 말하는 거죠. 인권에 대해 말하는 나라잖아요. 형편이 안 돼 돈을 못 갚는 사람의 인권은 사라진 현실을 말하는 거죠.”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는 현명한 소비에 대해 교육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다 최근 주빌리은행의 설립을 주도했다. 주빌리은행의 은행장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다. 은행법상 예금대출업무를 하는 일반 은행은 아니라는 뜻이다. 주빌리은행은 빚(채권)을 탕감해주는 곳이다. 

주빌리은행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빚 탕감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경제관료와 금융계가 경제지를 통해 ‘빚은 꼭 갚아야 한다’는 신념을 전 국민에게 주입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7일 매일경제는 <박원순표 저소득층 빚 탕감>이라는 기사를 통해 “서울시가 대부업체, 시민단체와 함께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는 ‘부채탕감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과 빚을 갚지 않고 있다가 탕감 받는 경우에 대한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12월17일 매일경제 1면 기사
 

반면 제윤경 주빌리은행 이사는 ‘빚 갚지 않을 권리’를 외치고 있다. 그는 “길게는 10년 넘게 욕설에 가까운 빚 독촉, 가재도구 압류까지 당하다 심지어 이 사회에서 퇴출되는 상황을 감내하면서 빚을 안 갚을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 사실은 빚을 ‘반강제’하는 사회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사무실에서 제윤경 이사를 만나 빚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서민들이 힘든 이유 ‘갚을 수 없는 빚’ 때문

제윤경 이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제활동 참가자는 평균 5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엔 평균값이 잘못 됐나 싶었다. 부부를 합하면 한 집 당 10장이다. 실적 때문에 금융회사는 카드발급을 남발하고 소비자는 카드별로 혜택이 다르니 이 카드, 저 카드 만들기도 한다.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크게 늘지 않으면 카드 대출이 늘게 된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뭘 믿고 빌려줬는지 모르겠다. 실제 만나보면 소득이 지금의 두 배 돼도 못 갚을 사람들도 많다.” 

제윤경 이사는 에듀머니를 통해 소비자 경제교육을 하다 다수 시민들이 빚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빚의 수준은 당사자의 능력으로 갚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다. 한 해 40가구가 동반자살을 하는데 대부분 빚 때문이다. 금융사 세군데 이상 빚을 진 ‘다중 채무자’는 328만명, 그 액수는 317조원에 이른다. 

   
▲ 제윤경 주빌리은행 이사. 사진=채널예스 제공.
 

다중채무자들은 빚 돌려막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빚을 장기적으로 갚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는데 부실채권거래시장은 은행권에서만 연간 7조원 규모다. 은행이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대출을 남발한 결과다. 

빚 권하는 사회는 왜? 

제윤경 이사가 지난달 낸 책 제목은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다. 한국 사회는 왜 빚을 권할까? 은행은 기본적으로 빚을 통해서만 돈을 벌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한국은행이 100억원을 발행하면, 시중은행은 예금지급준비금(예금 중 대출하지 않고 은행에 남겨야하는 돈)만 남기고 대출해줄 수 있다. 2006년 이후 지급준비율은 예금 종류에 따라 0~7% 수준이다. 10%로 가정해보면 은행은 10억원을 남기고 90억원을 대출할 수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통화량)은 190억원으로 늘어났다. 

90억원이 다시 은행에 예금되면 은행은 10%를 남기고 81억원을 대출해줄 수 있다. 이런식으로 72억원, 65억원, 59억원… 계속 대출금이 불어나면서 통화량이 늘어난다. 이렇게 최대로 빌려주면 중앙은행이 발행한 100억원은 1000억원이 된다. 이것이 신용창조다. 담보 없이 빌려준 대출을 신용대출이라 한다. 

제윤경 이사는 “빚 권하는 사회의 두 기둥은 대부업과 신용카드”라고 지적했다. 공통점은 신용대출이다. 신용창조로 인해 불어난 돈은 화폐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 상 숫자로만 존재한다. 메리너 에클스 연방준비은행(FRB) 전 의장은 1941년 하원 청문회 중 “통화시스템에서 빚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대출이자는 항상 예금이자를 웃돈다.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카드론·리볼빙 금리는 7%~28% 정도이고, 대부업 최대 이자율은 34.9%다. 제윤경 이사는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화한통이면 300만원을 빌려주느냐”며 “미국에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업자들은 고금리 소액대출로 가처분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서민들을 유혹한다. 제 이사는 “급전대출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소득이 정기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돈이 필요한 경우가 급전”이라며 “매달 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대출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와 복지”라고 주장했다. 

파산은 필연적이다 

은행은 화폐로는 존재하지 않는 돈을 대출을 통해 만들어 낸다. 때문에 대출을 공격적으로 하게 된다. 은행이 약탈적으로 돈을 빌려줄 때 국가가 이를 통제해야 하고, 만약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채무를 조정하거나 파산시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제 이사의 주장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나올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이 100억원을 시중에 발행했는데 이를 한 사람(A)이 빌렸다고 가정해보자. 채무자는 100억원을 갚고 이자도 갚아야 한다. 시중에는 100억원밖에 없으니 이자를 은행에 갚을 방법은 없다. 누군가(B)가 추가로 대출을 받으면 통화량이 늘어난다. A는 열심히 일해 돈을 벌면 이자를 갚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B는 돈을 못 갚는다. 

대출총액과 대출인구가 늘어나면 파산자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부터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 한국에서 개인의 빚은 처분가능한 소득의 1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 미국 등 선진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윤경 주빌리은행 이사가 출연한 테드 강연 화면 갈무리.
 

지난 6월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섰고, 장기연체로 빚을 갚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져 채무조정이나 탕감이 필요한 채무취약계층은 350만명(2013년 기준), 채무조정(금액조정)과 채무추심(빚 독촉)을 모두 겪고도 상환이 불가능해 경제생활이 단절돼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퇴출된 사람은 114만명(2013년 기준)이다. 

제윤경 이사에 따르면 은행은 부실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없다. 부실채권 비율이 높으면 건전성을 이유로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실채권은 부실채권(NPL) 시장에서 헐값에 대부업체나 저축은행 등으로 넘어간다.  

은행만큼은 아니지만 대부업체들도 부실채권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다. 대부업체들은 2차 채권시장에서 다시 헐값에 부실채권을 넘긴다. 대부업체 계열사로 부실채권을 넘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벌어진다. 부실채권은 원금 100%를 다 받지 않는다. 보통 5% 미만의 가격으로 팔린다. 

즉 100억원어치 빚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3억~5억으로 팔린다는 뜻이다. 보통 부실채권은 추심(빚 독촉)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3%수준이다. 추심 기간이 길어져도 보통 20%이상은 회수하기 힘들다. 하지만 추심업체들은 채무자들을 괴롭혀 쥐어짜낸다는 게 제 이사의 주장이다. 

“부자 집에 들어가 압류딱지를 붙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밥통, TV, 낡은 가재도구에도 빨간 딱지를 붙인다.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추심업체들은 하루에 세 번까지 전화로 빚 독촉을 할 수 있다. 원래는 하루에 10번이었는데 이마저도 줄어든 거다. 더 이상 돈이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괴롭혀서 돈을 쥐어짜내겠다는 건데, 사실상 다른데서 돈 꿔서 갚으라는 소리다.” 

제윤경 이사는 대부업체들의 마케팅 방식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고금리 소액대출, 한 예로 여성들을 타겟으로 하는 대부업체 미즈사랑은 ‘여자 남몰래 300’이라고 홍보한다. 남편 몰래 빌려 쓰고 혼자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금액이 300만원이라고 판단해 상담 신청 시 조회기록이 남지 않는다며 빚을 유도한다. 

하지만 300만원의 빚이 한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제윤경 이사가 지난 8월 27일 주빌리은행을 설립하기 전까지 빚을 탕감해준 2775명의 평균 대출금액이 300만원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돈을 갚지 못해 사회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 현실이다. 

빚 못 갚을 권리가 필요하다

24일 주빌리은행이 구입한 채권으로 새 출발하게 되는 이아무개씨(37)는 원금 350여만원을 빌렸는데 이자가 1450여만원이 붙어 채무액이 1800여만원이었다. 주빌리은행은 이 채권을 100만원에 샀고, 매월 10만원씩 1년간 갚도록 할 예정이다.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의 도움으로 채무액을 조정 받은 이씨는 성남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취업할 예정이다.

사실 제윤경 이사가 부실채권 시장에 관심을 갖던 2005년에는 파산이 쉬웠기 때문에 빚에 시달리는 사람이 상담을 요청하면 개인회생제도를 소개해주면 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파산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추심업체들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채무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제 이사에 따르면 추심원은 간단한 시험만 통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추심업체들은 추심원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추심원은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열악한 노동조건이 겹치면서 이들은 더 악랄한 방법으로 빚을 받아내야 한다. 추심업체들은 5%미만의 가격으로 채권을 구입했지만 원금의 배가 넘는 이자까지 독촉해 받아내려 한다.

제 이사에 따르면 불법 추심은 채무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민원은 1980건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피의자가 구속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관련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다. 

제 이사는 “상사채권이 소멸시효는 5년이다. 하지만 추심업체는 공문서와 비슷한 걸 만들어 만원이라도 먼저 갚으라고 한다. 그러면 갚을 의지가 있다고 판단해 소멸시효가 연장된다. 이 경우 민사채권으로 바뀌어 소멸시효는 10년이 된다. 그간 빚 독촉을 안해오던 채권들까지 최근 몇 배로 불어난 채무액을 요구하며 추심업체들이 빚 독촉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빌렸던 돈도 지금 갚으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 이사는 오히려 이를 허용하고 방관하는 국가의 책임을 지적했다. 부실채권을 사서 높은 수익을 내는 짓은 국가도 진행하고 있다. “노무현정부가 만들어 이명박정부로 이어지던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이름만 바뀐 게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이다. 부실채권을 싸게 사 국민들에게 원금의 절반정도를 받아내고 있다. 국가가 빚 독촉을 하는 것이다. 채무자의 조건에 맞게 채무조정을 해달라고 했지 추심을 하라고 했느냐.”

국민행복기금을 맡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수익률은 100%가 넘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업체와 추심업체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일몰 사업이라는 것이다. 제 이사는 “2018년에 이 사업마저 끝난다.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이 은행연합회장이었다. 사업이 끝나면 은행들에게 배분하고 끝내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목표다. 한마디로 캠코의 공익 프로그램을 민영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빌리은행 “새 출발 하자”

지난해 4월 제윤경 이사는 부실채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울시 관리감독부서 공무원들과 함께 지난 8월 27일 주빌리은행 설립 때까지 모은 채권은 총 88억5500여만원이다. 이 채권을 사는데 지불한 금액은 0원이다. 

   
▲ 주빌리은행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제 이사는 “이제는 우리도 더 이상 추심이 되지 않는 부실채권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그래서 시민들의 기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빌리은행은 시민들에게 성금을 모아 부실채권을 매입 후 소각한 뒤 채무자의 능력에 맞는 돈을 상환하도록 한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내가 꼭 날고 있는 것 같았다니까요.” 제 이사와 상담한 뒤 빚을 탕감 받고 새 출발하게 된 이의 고백이다. 스토커와 같이 매일 전화와 우편을 통해 전달되던 욕설에서 벗어난 이가 접한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다. 제윤경 이사는 “돈보다 사람이고 채권보다 인권”이라고 말했다. 

주빌리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채무자들은 다음을 참고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주빌리은행 070-8785-6127 

서울시금융복지상담센터 1644-0120 

경기금융상담센터 (031)888-5550~1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 (031)755-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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