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했는데 ‘역시나’였다. ‘MBN 영업일지 사태’의 결론은 철퇴가 아닌 솜방망이였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때부터 끊임없이 특혜를 안겼던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번에도 특혜를 준 것이다.

‘MBN 영업일지’는 MBN의 광고업무를 대행하는 회사인 MBN미디어렙의 영업1팀이 2014년 12월1일부터 2015년 1월 20일까지 51일 동안 수행한 영업활동에 대한 387건의 기록을 말한다. 지난 3월 미주 한인 주간지 ‘선데이저널’의 폭로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영업일지는 ‘빙산의 일각’이지만 “불법 광고영업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분석한 결과 △뉴스보도에서 업체나 제품을 불법 홍보하거나 광고수주 압력 행사 △뉴스 이외 프로그램에서 제품을 불법적으로 홍보 △조폭식 각출 또는 뇌물로 의심되는 협찬 증빙 △기자의 불법 광고영업 등 불법광고 의심행위가 나왔다. 민언련은 지난 3월 조사 결과를 방통위에 제출하며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내려진 징계는 미흡했다. 지난 16일 방통위는 MBN의 보도프로그램에서 광고를 하는 등 불법행위 2건을 적발해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했다. MBN의 광고대행사인 MBN미디어렙에 대해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방송프로그램 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등 미디어렙법 위반행위에 대해 과징금 2억4천만 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억 단위’의 제재가 내려졌으니 표면적으로만 보면 수위가 낮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제재가 MBN미디어렙에 몰려 MBN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게 됐다는 점이 문제다. MBN의 보도프로그램인 ‘경제포커스’는 한국전력으로부터 4000만 원의 협찬금을 받고 한국전력의 자원외교를 칭찬하는 등 광고행위를 했다. 농협 하나로마트로부터 3000만 원의 협찬금을 받아 하나로마트 상품과 상표를 방송에 노출했고 출연자들이 상호를 언급하기도 했다. 7000만 원의 협찬금을 받았지만 과태료는 1000만 원만 물었으니 종편으로서는 크게 남는 장사임을 방통위가 입증한 셈이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제재는 ‘미디어렙’에 몰렸다. MBN미디어렙은 협찬주로부터 돈을 받고 이미 편성이 확정된 프로그램을 협찬프로그램으로 바꿀 것을 MBN에 요구하는 등 미디어렙법을 위반했다. 적발된 프로그램은 ‘다큐M 백수오편’, ‘천기누설 아로니아편(2건)’, ‘천기누설 마늘과 생강편’ 등 4건이다. ‘다큐M 백수오편’은 재방송을 하는 대가로 추가로 협찬금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 3개 프로그램은 홈쇼핑에서 협찬 품목이 판매되는 시간에 맞춰 해당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연계판매를 벌이기도 했다.

‘광고대행사가 편성에 개입한 사실이 불법’이라면서 미디어렙만 처벌한 건 모순이다. 광고대행사가 어떤 부당한 요구를 했든 편성을 한 주체는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통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MBN 프로그램 기획단계에서부터 MBN미디어렙의 광고 담당자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미디어렙은 방송사와 독립된 법인이지만 사실상 ‘광고국’노릇을 한 것이다. 그런데 본체는 건드리지 않고 꼬리만 잘랐다. MBN은 시정명령을 받지 않아 재승인 심사 때 감점은 1점도 받지 않게 됐다.

돌이켜보면 방통위는 조사 시작부터 끝까지 ‘봐주기’로 일관했다. 지난 3월 민언련과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가 민원을 제출하자 방통위가 공문 제출을 ‘늦춰달라’고 요구했을 뿐 아니라, 민원을 제출한 사실을 MBN에 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사에서 제재까지 6개월이나 걸린 점도 의문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통위에 언론사 조사권한이 없고, 사상 처음 있는 제재이기 때문에 법률적인 판단을 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는 입장이지만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빠른 처벌을 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MBN의 경제포커스. 한전으로부터 협찬금을 받은 대가로 한전홍보성 보도를 내보냈다.
 

과태료와 과징금을 산정하는 과정에서도 봐주기는 이어졌다. MBN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아야 했지만 방통위는 “동일한 위반행위가 처음 발생했다”면서 과태료를 절반으로 줄였다. MBN미디어렙의 경우 방통위 조사 과정에서 일부 자료를 늦게 제출하는 등 조사 진행에 차질을 초래해 과징금 10%가 가산됐다. 그러나 더해진 액수보다 깎인 액수가 훨씬 컸다. 

방통위는 MBN미디어렙에 ‘3억 원’의 과징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디어렙사 설립 직후이고 최초의 법 위반사례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또 MBN미디어렙이 △협찬 계약서를 개정한 점 △이미 제작된 프로그램에 대해 향후 협찬 영업을 하지 않겠다고 대표이사가 확인서를 제출한 점 △법 준수 위한 ‘임직원 행동수칙’을 제정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과징금을 30% 감경했다. 반성하고 있으니 봐주겠다는 이야기다. 

방통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와 ‘협업’을 해 과징금을 낮춘 정황도 있다. 방통위는 MBN 제재 과정에서 “심의위에서 이 사안을 판단했는데 경징계를 내렸다”면서 과징금 감경의 근거로 삼았다. 심의위는 한전을 홍보한 ‘경제포커스’에 대해 방통위 조사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그동안 의결보류했지만 돌연 지난 2일 기습상정해 경징계를 내렸다. 야당 위원들이 반발했지만 여당추천 위원들은 “돈이 오간 건 방통위가 처리하는 거고 심의위는 내용만 심의한다”며 경징계를 의결했다. 방통위의 제재 일정이 잡히자 그 전에 낮은 수준의 징계를 내려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방통위는 빙산의 ‘일각’ 중에서도 ‘일각’만 제재했다. 민언련은 영업일지에 나온 54건의 불법의심행위 중 보도를 통해 사실확인이 가능한 37건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그 중 21건이 실제 방송에 반영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방통위는 그 중 6건만 제재했다. 정부의 조사가 시민단체의 조사에도 못 미친 것이다. 민언련에 따르면 협찬 계약이 성사되지 않자 속칭 조지는 보도를 내보낸 정황도 있으며, 타 종편이 ‘협박’을 통한 광고영업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행법으로 불가능한 신문과 방송의 연계판매 정황도 있다. 기자가 광고영업을 한 사례도 버젓이 쓰여 있지만 방통위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민언련 보고서에 지적된 사항도 제재하지 못하는 데 새로운 문제를 밝혀냈을리 없다. 방통위가 자체적으로 적발한 MBN의 불법 광고영업 행위는 ‘0건’이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처음 민원을 냈을 때 민언련이 조사한 내용을 판단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근거로 전반적인 실태를 살펴달라는 의미였는데 우리가 제기한 내용 중 일부만 제재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조사결과 MBN미디어렙은 타사 홈쇼핑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에 맞춰 해당 상품의 협찬을 받은 프로그램을 편성하도록 MBN에 요구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자체 조사권한이 없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리 있는 해명이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방송사와 미디어렙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이상 방통위가 강제할 수단은 없다. 그러나 방통위 차원에서 조사할 수 없다면 검찰 고발을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문제다. 실제 인권위원회에서는 강제조사가 불가능한 경우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방통위의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를 이유로 MBN에 시정명령을 제재를 내려 재승인에 영향을 주는 게 맞다. 방통위는 종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았다.

이번 제재는 종편을 위한 또 하나의 특혜가 됐다. 종편은 도입 때부터 특혜 논란을 낳았다. △10번대 황금채널배정 △의무재송신 △방송통신발전기금 면제 △중간광고 허용 △1사1미디어렙 통한 광고영업 △막말, 편파방송 봐주기심의에 이어 ‘미디어렙 불법광고영업 솜방망이 제재’까지 안긴 것이다.

이번 제재는 민영 미디어렙과 방송사의 불법광고영업행위에 대한 첫 제재였다. 앞으로 유사한 제재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이번 제재를 통해 종편이 불법광고영업행위를 해도 재승인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불법광고로 벌어들인 수익보다 낮은 과태료가 책정된다고 공표한 셈이다. 방통위에 1사1미디어렙 제도와 협찬제도의 맹점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기대하기는커녕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민원을 넣어 방통위가 조사 중인 채널A과 TV조선의 불법광고행위에 대한 조사마저도 ‘꼬리 자르기’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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