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노동관련 5대 입법을 당론으로 발의하자 노사정 합의문보다 후퇴했다며 한국노총이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문을 보면 한국노총이 여당에 속았다는 평가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기덕 변호사는 “노사정합의문에 노사정을 주어로 작성한 부분이 많은데 책임주체가 불분명하다”며 “노사정이 함께 이행할 사항이지 사용자만 이행할 사항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실제 입법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은 합의문에 이미 포함돼있다는 지적이다. 

합의문 중 비정규직에 관한 부분을 보면 “노사정은 불합리한 차별은 금지하고 상시·지속적 업무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돼있다. 이어 합의문에는 정부가 정규직 전환확대 등 공공부문의 선도역할을 확대하고 차별개선지도를 강화하고, 수습사원 부당해고 등 문제 방지를 위한 근로감독을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김 변호사는 “이것들은 이미 정부가 하고 있는 내용이고 정부의 당연한 역할인데 마치 노동계가 협상해서 얻어낸 내용인 것처럼 썼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정부의 ‘마땅한 역할’을 얻어낸 대신 내준 것은 비정규직 확대 방안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불법파견을 합법화해주는 것”이라고 말했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2일 국회 토론회에서 “재벌의 이해관계에 따른 내용”이라며 “현대차에서 꽂아 넣은 내용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입법 주요 내용을 보면 뿌리산업(금형·주조·용접 등)의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현대차 등 뿌리산업 사업장은 대부분 하청업체에 도급으로 일을 넘겼다. 도급은 원청이 업무지시를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뿌리산업 사업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질적으로는 업무지시가 있다. 따라서 업무지시를 하면 도급이 아닌 파견인 것인데 도급으로 계약했으니 불법 파견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는 오랫동안 재판을 통해 다뤄진 사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뿌리산업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 뿐 아니라 하청에 대한 원청의 배려를 불법파견의 징표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했다. 또한 고령자와 전문직 등의 파견 허용 업무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유선 연구원은 “여기에는 교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도 전문직으로 포함되고 그 수가 504만 명에 이른다”며 “전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노사정 합의안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내용(기간제 사용기간, 파견직 확대)은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시 반영된다”고 돼 있다. 김 변호사는 “이 부분이 노사정이 합의를 미루고 법안을 마련하면서 논의해보겠다는 의미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미 합의된 사항을 법안에 반영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며 “여당은 합의문에 따라 법안에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합의문에서 더 심각한 부분은 근로시간에 대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50조에는 주 40시간 근로를 규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사용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같은법 53조에 따라 예외적인 경우 12시간의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12시간 연장은 예외일 뿐 이를 단협이나 근로계약, 취업규칙 등으로 사전에 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민중의소리
 

하지만 이번 합의문에서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했고, 주당 근로시간도 52시간으로 한다고 돼 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40시간이 원칙이고 당사자간 합의로 예외적인 상황에만 52시간까지로 규정했던 것을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예외를 원칙으로 해석해 52시간을 주당 근로시간으로 봐 잘못된 법집행을 한 것인데 합의문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휴일근로까지 연장근로에 포함해 최대 주당 60시간까지 일하도록 만든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는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를 전제해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것이고 그동안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온 것을 한 번에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최근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개편안에 대해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9월 19일 노사정위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를 발족한 이후 같은해 1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면서 2015년 3월을 합의안 도출 시점으로 정했다. 

   
▲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노사정위 합의 최종 승인 결정 논의를 위한 중앙집행위원회를 진행 중 물을 마시고 있다. ⓒ민중의 소리
 

지난 3월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자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정부는 한국노총에 국고보조금 지급을 중단했고, 지난 7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자 7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정부는 2015년 하반기 내에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행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13일 노사정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 발표 3일 뒤인 지난 16일에는 노사정 합의문보다 후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동관련 5대 입법을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했다. 지난 21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업규칙 변경·일반해고 관련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연내에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소장은 “지난해부터 경제부처에서 나오던 재벌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노사정 합의문은 왜 노사정위가 해체돼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정부의 일방적 강행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요식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문을 백지화하고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 권리를 수호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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