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20일 지뢰 도발사건 때 전역 연기한 병사에 감동받아 국군 장병 56만명에게 특별휴가를 제공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청와대가 보도자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장병들에게 격려 카드와 특별간식도 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하사’라는 표현이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1일 “청와대는 전근대적 국민 하대 표현을 자제하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하사(下賜)’는 왕이 신하에게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금품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며 표현상의 문제에 비중을 둬 청와대를 비판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박 대통령의 시혜성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시혜적 관점의 정책은 지난달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이 있다. 박 대통령은 임시공휴일로 지정을 지난달 14일로부터 10여일 전쯤 급하게 발표했다. 대통령은 임시공휴일 지정과 더불어 이날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하고 4대 고궁과 종묘, 조선왕릉 등과 국립자연 휴양림,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무료로 개방했다. 

임시공휴일과 관련된 일련의 발표는 메르스 대응에 실패해 불만 가득했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다. 메르스 대응에 대한 사과나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후속대책을 준비하기보다는 국민 대다수에게 ‘얇고 넓은’ 혜택을 줘 불만을 잠재우는 방식이다. 이번 특별휴가와 간식 지급도 ‘얇고 넓은’ 혜택에 불과하다. 휴가 이틀 더 가는 것과 간식 제공하는 것에 반대할 장병들은 아무도 없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군 생활이 나아지진 않는다. 

   
▲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청와대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 부사관 이하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던 노동시장 구조 개편안이 노사정 합의를 이루자마자 박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한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자고 발표했고 21일 KEB하나은행을 시작으로 펀드가 개설됐다. 해고가 쉬워지고 취업규칙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커진 것에 대해 국민들이 반발하자 박 대통령이 직접 월급을 기부해 펀드를 조성해 막아보려 시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발등 찍어놓고 못 걷겠다고 하니 업어주겠다는 꼴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정책은 국민들을 권력자의 ‘착한 마음’에 의존하게 만들고 권력자는 시혜를 베푸는 존재로 부각하면서 시스템의 변화는 꾀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책이다.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시민 개개인이 표출하는 정서를 자율적인 집단이나 제도를 매개하지 않는 민중성”이다. 

따라서 이는 다수 서민의 이익이나 열망을 안정적으로 대변해주지 못한다. 시혜를 베풀어주던 선한 지도자가 사라지면 다수 국민들의 이익은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나 권리는 정치인이 허용하는 게 아니다. 주인인 국민이 행사할 뿐이다. 지난 총선 때부터 전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보편적 복지’도 사실 ‘보편’에 초점을 두지만 다수 국민의 요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1일 논평에서 박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이 시혜를 베풀 듯 발표한 공휴일선포나 전 장병 특별휴가는 발상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대통령이 국민경제와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공휴일과 장병휴가에 즉흥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야당의 논평은 박 대통령의 이번 정책들이 민주주의를 후퇴하는 시도라는 지적에 이르지 못하고, 표현상의 문제를 근거삼아 전근대적이라고 비난하는 수준에 그쳤다. 질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이 더 나았다는 점에서 야당의 비판은 청와대의 이번 보도자료의 수준이 낮다는 정도에 머무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후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지난달 4일 DMZ 지뢰도발로 인해 부상을 당한 육군 하재헌 하사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노무현 정부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포퓰리즘 정치를 해왔다는 지적이 있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대화와 토론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는 행정부 산하에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교수 등을 동원했다. 

최장집 교수는 그의 저서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 “국민들이 그들의 대표를 통해 정책결정과 시행과정에 참여하면서 시민으로서의 권력의식을 실현하기 보다는 전문가집단들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아무개 집단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만들려고 하니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위원회를 통해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입법부를 통하지 않아, 결국 정당이나 국회를 통해 국민이 견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인 모습이다. 그나마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거나 임기가 끝나면서 위원회는 힘을 잃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노무현 정부의 모든 정책에 반대했지만 끝까지 반대한 정책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사학법 개정 등 4대 개혁과 같은 국민의 요구를 제도화 하는 데는 실패했다. 포퓰리즘 정치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요구가 제도로 보장되려면 입법화 과정을 거쳐 대통령 개인의 결단이 없더라도, 혹 비민주적인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들의 요구가 보장돼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역시 정당이나 국회를 국정 파트너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입법기관인 국회, 심지어 여당과도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국민들을 향해 “대통령 못 해먹겠다”며 대통령 재신임에 대해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이는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헌법 개정과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하여 국민에게 물은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무리하게 승부수를 던져 권력을 유지했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에 대해 국회를 설득해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가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 정부”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사실상 쫓아낸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이 국회를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기 보다는 청와대 하부조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정부라고 불리던 시기에서조차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가 전달될 정당이나 국회를 외면해온 탓일까? 박 대통령의 시혜성 정치가 반복되는데도 야당은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 못하고 언론은 이를 띄우고 있다. 

   
▲ 21일자 YTN 보도 화면 갈무리.
 

박 대통령 특별휴가 ‘하사’에 대해 언론은 “통 큰 포상휴가”(헤럴드 경제), “통 큰 선물”(YTN) 등의 표현을 사용해 대통령을 치켜세우거나 “건군 이래 처음”이라고 다수 언론이 의미를 더했다.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 대다수의 요구가 정당이나 시민사회 등을 통해 입법기관으로 전달되고 이것이 법과 제도로 반영돼 행정부서들이 이를 충실하게 집행되는 사회다. 하지만 오랜 식민지와 독재의 경험 탓인지,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이 곧 민주주의인 것처럼 축소됐다. ‘좋은 대통령’의 ‘좋은 마음’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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