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집사람’은 구분된다. 사람에 대한 폭행은 바로 처벌대상이 되지만 집사람에 대한 폭행에는 여러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검사는 가정폭력을 수사해 폭력행위자의 교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기소를 유예할 수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피해자는 ‘집사람’이 되고, 범죄는 교정돼야 할 개인의 일탈이 된다.

한 여인이 있었다. 50대 여성 이아무개씨. 그는 지난해 10월 9일 오전, 술에 취해 잠든 그의 남편 변아무개씨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살해 두 시간 뒤 이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그들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었다. 사망한 변씨는 강남 일대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100억대 재력가였다. 언론은 그들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중이며, 사망한 변씨가 타던 차가 ‘벤틀리’라고 전했다. 이 사건은 ‘타워팰리스 살인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검찰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의 형이 가볍다는 이유에서다. 이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 소속 이유정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살해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 배경에는 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봤다. 

   
▲ 뉴시스 9월 3일자 보도.
 

항소심에서 검찰은 “망자는 말할 수 없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객관적인 증거들을 면밀히 살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언론에는 이씨가 가정폭력에 시달려왔고, 사건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사건이 그렇듯 지난 2월 국민참여재판으로 눈길을 끌었던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혀졌다. 

오는 17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씨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씨의 변호사는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형량이 줄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사건에 대한 서명운동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왜 남편 변씨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씨는 1984년 불법택시 영업을 하던 변씨와 만나 결혼했다. 변씨는 오락실 사업 등으로 크게 성공해 억대의 재력가가 됐지만 이씨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남편 변씨는 이씨를 손을 묶고 강간을 하거나, 옷을 벗겨 칼끝으로 온몸을 긋는 학대를 저질렀다. 이 변호사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변태 포르노의 수준을 뛰어넘는 학대”라고 표현했다. 법정에서 증언됐다고 알려진 그 외의 내용은 다른 여성을 데려와 이씨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하거나 수간을 해보라는 변태적인 언어폭력 등 상상을 초월했다. 

‘학대’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만행은 남편 변씨가 사망한 지난해까지 31년간 진행됐다. 지난 2월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뿐 아니라 지난 3일 진행된 항소심 재판정 역시 눈물바다가 됐다. 

하지만 기사를 접한 독자들에게는 이런 반응이 다수였다.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왜 이혼하지 않지?” 이 사건을 접한 담당검사도 같은 반응이었다. 재산을 노린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초점을 둔 검사에게 이 사건의 본질이 다른 폭력보다 더 벗어나기 어려운 가정폭력이라는 점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검사가 여성이었음에도.

   
▲ 사진=pixabay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은 현실적으로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폭력을 경험하면서 이혼 요구나 신고 등의 저항이 남편의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혼을 한다고 해도 남편의 폭력은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며 피해여성 이외의 가족에게도 폭력은 저질러질 수 있다. 저항해서 여성의 자존감이나 안전이 보장되는가?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씨의 경우는 오래전 변씨와 10년 전 이혼했다. 경찰 브리핑에 따르면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다. 이씨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자 위장 이혼을 한 셈이다. 즉 법적으로 이씨 부부는 사실혼 관계였다. 

이유정 변호사는 “사실혼 관계라는 것은 이씨가 재산분할을 위해 변씨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며 “오히려 사실혼 분할파기 등 다른 방식으로 재산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변씨에게)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결혼 초기부터 지속된 폭력이 워낙 무서운 수준이었고, 너무 무서워 도망도 가보고 자살시도도 했지만 다 실패했다”며 “또한 친정이 남편에게 돈을 빌린 것도 있는데 친정이 갚지 못했기 때문에 이씨만 도망가더라도 친정식구들이 괴롭힘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씨의 살인이 정당방위임을 주장하고 있다. 둘 중 한명이 죽어야만 끝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저항은 정당방위라는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다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법률상 정당방위는 “현재 침해에 대한 방어”를 요건으로 하고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방어한 것”에 국한된다. 또한 그냥 방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경우가 없다. 

항소심에서 이씨 측은 정신감정도 신청했다. 이씨가 살해 당시 심신이 미약한 상태라는 것을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서다. 피해자의 억울함은 피해자의 결점을 입증해내야 조금 해소되는 셈이다. 

1심에서는 진행되지 않았던 정신감정이 항소심에서는 진행됐다. 그 결과 이씨는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있고 정신감정도 잘 받게 해줬다”며 “1심보다 형량이 감형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한 해 최소 123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다. (2013년 기준) 지난 2013년 남편에게 25년간 폭력을 당하다 남편을 죽인 한 가정폭력 피해자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실형을 받았다.   
    
가족이나 애인을 표현하는 단어는 ‘천륜’이나 ‘인연’과 같이 끈끈함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폭력이 쉽게 은폐되며 바꿔 말하면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씨의 사건을 알리는 서명지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정당방위가 이제는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17년, 이제는 가정폭력과 관련해 정당방위가 인정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씨의 아들은 31년간 어머니가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고 이제는 좀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결혼생활 동안 한번도 편히 잠을 잔적이 없다고 한다. 이씨가 아들의 바람대로 폭력없는 안전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여러분의 힘을 모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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