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정부의 노동구조 개편안에 합의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대해 “야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사용자가 사실상 한 몸인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이를 정당화하는데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미군정하인 1946년 3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 결성이 그 뿌리다. 

미군정기 반공과 반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기치를 내걸고 태어난 대한노총은 우익 정치인과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노동자 대중의 계급투쟁을 외면한 채 노동운동 탄압을 주목적으로 삼았다. (임송자,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 

대한노총은 폭력을 행사하는 ‘건설대’라는 조직을 통해 부산에 운수부연맹을 만드는 등 화물, 항만 등 교통관련 사업장의 노조 무력화에 힘썼다. 이에 미군정 치하인 만큼 전쟁 때 필요한 주요 시설을 장악하고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 모습.
 

대한노총은 같은해 9월 총파업을 계기로 이승만과 한국민주당이 주도권을 장악했고, 미군정, 우익정치인, 우익청년단, 경찰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폭력조직이었다. 1960년 5·16쿠데타로 잠시 해체됐다가 1961년 중앙정보부 지휘아래 한국노총으로 개칭되는 등의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 속성은 유지됐다. 반노동과 반공 세력인 것이다.

한국노총의 의미 있는 변화는 1994년 9월 만들어진 ‘21세기노사관계연구회’에서 시작된다. 한국노총 내에서 통신·섬유 등 개혁 산별노조와 인하대 김대환 교수, 성대 임종률 교수 등 학계와 일부 야당 보좌관 등이 참여해 한국노총의 변화를 시도했다. 1994년 10월4일 한겨레는 “노총 외곽단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고비마다 노총 개혁을 강도 높게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10년간 노력한 결과 2004년 이용득 위원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선출됐다. 비록 한국의 야당이 ‘친노동’을 추진하진 않고 있지만 ‘반전평’으로 시작된 조직에서 야당 성향의 집행부가 탄생했다는 것은 진전이었다. 

하지만 이용득 전 위원장은 2008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등 한계를 보였다. 21세기노사관계연구회에 참여했던 김대환 교수는 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위원장이다. 임종률 교수(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는 노사정위에 자문역할을 하는 ‘노동분야 학계원로 자문단’에서 활동하는데 이 모임은 노사정이 정부의 노동구조 개편안에 합의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민주노총도 야합이라고 비난받았던 적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만든 노사정위에서 당시 민주노총 배석범 위원장은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 결성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
 
정리해고를 인정해 고용불안의 근본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받은 배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불신임당했다. 다음 지도부는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판단에서 노사정위에 불참했다. 그리고 이후 노사정위에는 한국노총만 참여하게 됐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 6층 대회의실 한국노총 59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장에서 조합원들이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06년 정부-경총-한국노총이 합의한 ‘노사관계 법 제도 선진화 방안’도 야합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노사정위에서 “선진적인 노사관계”라는 명목으로 해고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다. 당시 한국노총이 재계와 합의한 내용은 복수노조 유예, 전임자임금 지급 유예 뿐 아니라 부당해고 형사 처벌조항 삭제 등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한다고 지적받던 사항도 포함됐다.
 
1998년 ‘파견보호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이어 2006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보호법)도 노조가 막아야했지만 한국노총이 들러리를 서준 대표적인 노동탄압정책으로 지난 13일 합의에도 비정규직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파견노동 확대가 포함돼 있다.
 
밀실야합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 2009년말 복수노조 시행을 다시 유예시키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2010년 7월부터 전면금지하는 안에 합의했다. 노조전임자에게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던 것을 금지하고 노사 공통의 이해관계가 걸린 활동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하는 근로시간면제제도(time-off)도 함께 합의했다.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은 지난 4월 재계의 입장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타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부와 재계의 요구를 그대로 합의해줬다. 설립 69년이 된 한국노총의 역사에 ‘야합’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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