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싸워 승리해낸 이들이 있다. 지난 8일 오후 6시 33분,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한겨레에 기고한 자신의 칼럼에서 영화 ‘암살’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일제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냐고 묻자 독립군 저격수 안윤옥(전지현 분)이 이렇게 말한 부분이다. “알려 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하 교수는 “안옥윤의 얼굴에서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하 교수는 노동자들을 존경하는 의미로 한번 지부장이었던 사람에게 계속 지부장이라고 부른다)의 얼굴이 겹쳤다”고 했다. 지난 8일 기준으로 재능교육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외친 투쟁은 2819일을 맞았다. 햇수로 8년째다. 

같은날 7시 30분경, 유명자 전 재능교육 지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원회’(지대위)와 사측의 잠정합의 소식을 알렸다. 그는 “굽힘없는 투쟁으로 당당하게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해고자 원직복직과 단체협약 조항 일부 개선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유 전 지부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에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네요. 내일 합의서를 쓰고 천막을 철거하면 실감이 나려나요?”라며 입을 열었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재능교육은 박경선, 유명자를 위탁계약 해지 당시 지역국으로 복귀시키고, 이들은 재능교육 혜화사옥 앞 농성장을 오는 12일까지 철거하기로 했다.

박경선, 유명자 등 두 명은 지난 2013년 8월 26일 9명의 해고자들이 사측과 합의하고 복직할 때 함께하지 않았다. 합의 내용이 부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 전 지부장은 “노조의 원래 요구가 단체협약에 대해 원상회복하는 것인데 회사와 합의한 내용을 보면 진짜 요구내용은 별도 논의사항으로 빠져있었다”고 말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요구는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이다. 지난 2007년 단체협상 과정에서 당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장이었던 이현숙 집행부가 회사와 합의한 내용 가운데 대폭 '개악'된 수수료제도 전면 재개정을 요구했다. 유 전 지부장은 “당시 단체협약 합의내용은 임금이 대폭 삭감되는 제도였다”며 “적게는 20~3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삭감됐다”고 말했다. 

   
▲ 재능교육 해고자 유명자(사진 오른쪽) 사진=유명자 제공
 

2007년 12월 21일, 재능교육 노조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유 전 지부장은 “그동안 고소·고발이 수십건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노조에 ‘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그 외에도 재물손괴, 폭력 등 노사양측의 소송은 다 나열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이번 합의에서는 기존에 소는 모두 서로 취하하고 향후에도 민형사상 소송은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유 전 지부장은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균열이 가는 것은 회사가 어떤 제안을 했을 때”라고 말했다. 회사는 지속적으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문제를 덮기 위한 안을 권고했고, 2012년 당시 해고자들은 공식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싸움을 끝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는 게 유 전 지부장의 생각이다. 

해고자들에게 차츰 균열이 가기 시작할 때쯤인 2013년 2월 6일 오수영, 여민희 두 해고자는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랐다. 202일이 지난 2013년 8월 26일 겨울 외투를 입고 올랐던 둘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내려왔다. 투쟁 2076일만의 노사합의였다. 하지만 유 전 지부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명자 전 지부장은 “원상회복했다고 합의했는데 실제 적용되는 조항이 없었다. 정말 원상회복됐다면 기존 교사들에게도 합의사항이 적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당시 단협에 보면 임금재조정에 관한 독소조항이 있어서 그것을 폐지하자고 주장했는데 회사는 이를 별도로 논의하겠다고 해놨다. 원상회복이 아닌데 노조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지부장은 “투쟁 요구사항은 온데간데없고 해고자들은 1인당 2000만원을 받고 싸움을 끝냈다”며 “독소조항을 최우선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단협은 그해(2013년)말까지도 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협은 2014년 7월 15일에서야 체결됐고 이에 대해 유 전 지부장은 “알맹이는 다 빠진 합의”라고 표현했다.

노조가 폐지하라고 했던 부분은 ‘(-)월 순증 수수료 조항’이다. 이는 학습지 교사들이 회원 유치 과정에서 실적이 좋지 않으면 임금을 깎는 규정이이다. 이는 지난 7월에서야 폐지됐다. 2013년 당시 복직됐던 9명 중 2명은 아예 복직을 하지 않았고 2명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사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복직하지 않은 유명자, 박경선 두 해고자는 노조에서 징계를 당해 제명됐다. 그들로부터 고발도 당했다. 업무상 공금횡령 혐의였다. 유 전 지부장은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연대했던 분들이 모아준 투쟁기금을 종탑에 올랐던 이들이 내놓으라고 했는데 이를 거부했더니 고발했다”며 “투쟁기금은 투쟁사업장에서 사용하고 우리 투쟁이 마무리되면 다른 투쟁사업장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투쟁하고 있던 유명자, 강종숙 두 명은 사측이 지켜보는 가운데 혜화경찰서에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갔다. 검찰은 유명자, 강종숙이 보관 중인 투쟁기금의 각 거래내역이 노조 관련된 업무로만 지출됐을 뿐 개인용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점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허나 동료였던 이들에게 당한 고발은 더 큰 상처로 남았다. 지난 2013년에 복직한 이들 일부는 유명자 등을 상대로 조합비반환 청구소송을 걸었다. 

   
▲ 재능교육 해고자 유명자. 사진=유명자 제공
 

복직을 거부한 유명자, 박경선은 노조로부터 외면당했다. 사실상 왕따가 된 셈이다. 강종숙 전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과 이 둘은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다시 천막을 치고 진정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했고 지난 2013년보다 더 나은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번 합의에는 원직 복직 뿐 아니라 휴업 사유에 육아와 부상을 명시한 것, 휴가비를 상품권으로 주던 것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 장기근속자 표창 확대 등도 포함됐다.

유명자 전 지부장은 이번 합의 소식을 알리며 종탑 농성자들에 대해 ‘어용’이라며 비판했다. 지난 2013년 202일간 종탑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재능교육 노동자 오수영씨는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오랜 투쟁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며 “특별히 할말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씨는 “그래도 고생했고, 현장에서도 잘 싸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종강 교수는 유명자 전 지부장 소식을 듣고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천막을 사측에서 100번 철거하면 100번을 넘게 다시 세운 이들”이라며 “끝까지 투쟁해 승리한 의미있는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소수인데 공식적인 조직이 지원하지 않은 투쟁으로 ‘소수안의 소수’가 전개했던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길바닥에서 8년 동안 싸울 힘이 있으면 다른 곳 가서 돈을 벌어라’ 이런 충고도 있었지만 원칙을 싸우고 끝까지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자본가들에게 알린 이들”이라며 “쌍용차 같은 경우도 노동자들이 승리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을 경계해 복직시키지 않는 것인데, 재능의 경우 해고자들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해 결국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적으로는 노조에서조차 제명됐던 사람들이라 지대위는 교섭권조차 없다. 따라서 대화 상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좋은 조건으로 합의한 것은 다른 투쟁 사업장에게도 희망을 준 것이며, 혹 지금보다 합의조건이 미달됐다 하더라도 회사와 합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승리한 것이라는 게 하 교수의 평가다. 

지대위는 오는 11일 오후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승리 보고대회를 열고 지난 2822일간의 농성투쟁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학습지 교사들에게 남은 과제는 있다.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 3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들이라서 법적으로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이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재판부가 학습지 교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지난해 2심에서는 이를 뒤집었다. 현재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학습지교사들이 노동권을 인정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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