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의 반발에도 교육부가 꼼수까지 동원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유가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9일 공개한 교육부 공문에 따르면 교육부는 대통령 지시사항에 따라 역사교과서 관련 제도 개선 실적을 제출해야 했다. 공문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시는 지난해 2월 13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한다고 교육부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최고지도자의 의지만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진보좌파의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국회 교문위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이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현직 역사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정화 추진은 누구의 의지가 가장 크게 반영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교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답한 비율이 69.1%로 가장 높아서 이어 뉴라이트계열 학자가 26.2%라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역사교사들 98.6%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동의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의 범위를 확대해 사화과 교원을 대상으로 해도 국정화 반대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회 교문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원 2만4195명을 대상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찬반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만여명 중 77.7%인 8188명이 반대한다고 답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역사교사들의 의견. 98.6%가 국정화에 반대했다. 자료=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 제공
 

역사교사들이 봤을 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장점을 찾기 힘들었다. 역사교사들은 국정화가 돼 하나로 단일화 될 경우 오히려 수능문제가 학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것으로 예상했다. 검인정 체계처럼 역사의 맥락을 묻기보다는 미세한 내용의 암기여부를 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를 단일화하면 수능준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역사교사들은 ‘국정교과서가 교사와 학생들의 수능준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수능이 더 어려워진다’는 의견이 45.9%였고, ‘현재보다 수월해진다’는 답변은 4.4%에 그쳤다고 유 의원은 밝혔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효과라도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역사교사들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와 사교육비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다’는 답변이 60%에 달한 반면 ‘감소할 것’이라는 답변은 0.2%에 불과했다. ‘국정교과서가 역사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은 0.3%에 그쳤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89.5%에 달했다. 

국민 여론도 국정화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국회 교문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조정식 의원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검정교과서 51%, 국정교과서 46.5%로 검정교과서가 4.5%p 높다고 밝혔다. 

조정식 의원은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제시한 국정교과서 관련 여론조사에서 교육부는 8종 교과서에 대한 사회적 논란만을 강조한 설문 문항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국정교과서 선택을 유도한 것으로써 국민 여론을 왜곡한 것”이라며 “국정 및 검정교과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검정교과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왜곡된 발언도 드러났다. 황 장관은 “한국사는 과거와 달리 수능 필수과목”이라며 대입과 국정교과서를 연계시키는 듯 발언했다. 하지만 국회 교문위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황우여 장관이 틀렸다”며 “수능 필수는 국정화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능이 시작된 1994년부터 1998년까지(제5차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수학 교과에서 일반수학, 수학Ⅰ, 수학Ⅱ는 검정교과서였다. 국정교과서는 실용수학 하나 뿐이었다. 영어교과서도 모두 검정교과서였다. 1999년부터 시작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수학과 영어 모두 검정교과서였다. 

   
▲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능에서 국사가 필수과목이라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수능 필수 과목인 수학과 영어는 대부분 검정교과서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정의당 정진후 의원 제공
 

정 의원은 “11년 동안 수능 필수과목인 수학과 영어는 국정교과서가 아니었다”며 “황 장관 논리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장관은 지난달 1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사는 과거와 달리 수능 필수과목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보면 을사조약도 있고 을사늑약도 있고 안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다. 이런 교과서를 가지고 어떻게 수능 시험을 보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황은 더 있다. 국회 교문위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서에 따르면 교육부는 2017년 3월 역사 국정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보급하기 위해 국정화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려면 ‘교과용도서에 대한 구분고시’를 해야하며 행정절차법에 따라 행정예고를 한 뒤 개정 이유와 주요 내용을 국민들에게 미리 알려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하지 않았다. 

배 의원은 지금 당장 구분고시 행정예고를 한다 해도 2017년 3월까지는 1년 5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 개발 기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오류투성이 교과서가 탄생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과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개발 일정을 보면 2007년 개정교육과정 때 고등학교 교과서는 3년7개월, 중학교 교과서는 4년8개월이 걸렸다. 

친일 교과서라는 논란이 있었던 교학사 교과서 검정이 있었던 2009년 개정교육과정 때는 2년6개월의 기간이 걸렸다.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비하면 기간이 짧아 졸속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국정교과서 추진은 더 짧은 기간에 진행돼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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