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형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혐오 발언을 자제하고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자는 제안이 확산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야구 관련 게시판에서는 KIA타이거즈 팬들을 ‘홍어’, 삼성라이온즈 팬들을 ‘통구이’라고 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지난 4월 10일 한 삼성라이온즈 팬은 ‘KIA타이거즈갤러리’에 ‘홍어’를 ‘수박’으로, ‘통구이’를 ‘능금’으로 순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홍어는 광주항쟁 희생자들과 호남 출신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KIA타이거즈를 지칭하는 용어이며, 통구이는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에 대해 불에 굽는 바비큐요리에 빗댄 표현이다. 이는 지역 갈등을 넘어 혐오와 적대감을 드러낸 표현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 사진=pixabay
 

혐오 용어를 순화하자는 글을 올린 삼성라이온즈 팬은 KIA타이거즈 팬들을 무등산 수박에 비유해 수박으로, 삼성라이온즈 팬들을 대구 사과에 비유해 능금으로 부르자며 “서로 과일 이름으로 부르면 듣기도 크게 거슬리지 않고 웃고 끝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디시인사이드 누리꾼들은 이 현상을 ‘수능협정’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지난 8일 지역평등시민연대는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 단체는 논평을 통해 “디시인사이드는 일베 못지않게 극한의 지역 혐오와 적대감을 담은 포스팅이 난무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트였다”며 “이런 곳에서 법적 처벌이나 강요가 아니라 어느 삼성라이온즈 팬의 용기있는 제안과 설득에 삼성과 기아 팬들이 적극적으로 화답한 결과”라고 밝혔다.

수박과 능금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이 단체는 “능금과 수박에는 혐오나 적대감이 담겨있지 않다”며 “상대의 다름과 장점에 대한 존중이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 디시인사이드 KIA타이거즈 갤러리 화면 갈무리.
 

물론 이 현상이 지역차별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역평등시민연대 주동식 대표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수능 협정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심어준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도 있었다”면서 “이번 현상이 지역혐오를 해결하는 단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혐오문제가 영영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사회·문화적인 구조가 바뀌기 전에도 혐오발언이 순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역평등시민연대는 지난 2013년 10월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단체로 현재 회원은 200여명이다. 이 단체는 혐오발언을 자제하는 움직임을 만들고, 시민운동 측면을 넘어 혐오발언에 대해 제재하는 입법을 정치권에 요구하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나 혐오발언의 대상이 되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에 제안해 혐오발언대책위원회와 같은 시민운동 조직도 구상 중이다. 

   
▲ 디시인사이드 삼성라이온즈 갤러리 화면 갈무리.
 

하지만 아직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는 홍어와 통구이라는 혐오용어가 사용 중이다. 이에 주동식 대표는 “100% 없어질 수는 없겠지만 이런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나왔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며 “지역차별과 불평등이 결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지난 6월 17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는 혐오발언 제재를 위한 입법 토론회를 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지난 2013년 같은당 김동철 의원이 반인륜 범죄를 찬양하거나 민주화운동을 부인·왜곡하는 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통과되지는 않았다. 

한국과 달리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혐오발언을 한 자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공공질서법으로 혐오발언을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파운드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고, 독일도 형법에 따라 혐오를 선동하거나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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