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역사의식을 가지고 산다. 영국이 중국을 침략한 것에 대해 반격해가는 과정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라는 서양세력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서세동점을 몰아내겠다는 인식은 150년 이상 지속됐다. 전승절에 한국을 초대한 것도 이 맥락에서다. 해양세력(한미일) 최첨단에 있는 한국을 흔드는 효과인 것이다.” 

역사학자 김종성 박사는 중국이 전승절 7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해 예우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서양(영국, 프랑스 등)이 아시아를 침략해 패권을 쥔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역사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있고, 일본 역시 같은 시기를 하나의 역사단위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서양세력에 대한 인식이 중국과 다르다. 서세동점 최대의 수혜자는 일본이다. 일본은 한중일 중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 영일동맹과 미일비밀협약을 기반으로 조선과 만주를 지배했고, 2차 대전 전범국이면서도 미국으로부터 면죄부를 얻었다.

   
▲ 역사학자 김종성. 사진=김도연 기자.
 

김 박사는 자신의 저서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에서 일본이 지금 반성하지 않고 재무장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미국은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가 모택동의 공산당 군대를 격파하고 중국대륙을 석권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당 정권을 동아시아 파트너로 삼으려했지만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밀리자 중국을 포기했다.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이 덕분에 일본은 독일처럼 (분단되는 등) 가혹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됐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대리인으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며 승전국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그는 미일동맹을 “경찰(미국)과 범죄인(일본)의 동업”이라고 요약했다. 중국의 지난 150여년의 역사가 서세동점에 대해 굴욕이라고 생각하고 반격해가는 과정이라면 일본의 지난 150여년의 역사는 서세동점을 통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는 과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산케이 박근혜 명성황후 비유 망언 규탄 어버이연합 시위.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 앞.
이치열 기자 truth710@
 

따라서 그는 일본 우익이 평화헌법에 반하는 법률개정을 통한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등을 찬성하는 이유는 서구(미국)의 힘이 아시아에서 줄어들면서 불안해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한국, 중국·일본보다 현대사 인식범위 좁아 

하지만 한국은 두 나라와 역사를 인식하는 범위가 다르다. 1945년 이후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있다. 중국, 일본과 달리 현대사의 단위를 좁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역사인식의 원인을 미군에 의해 해방돼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고 있는데 이를 찬양하는 세력이 기득권을 놓치 않고 있는데서 찾았다.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이 1945년 일제 패망을 새로운 역사단위의 기점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거나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주장이 그 예다. 김종성 박사는 “1945년 이후로 역사를 축소하면 한국은 미국에 지원을 받아 만든 나라, 서세동점에 혜택을 받은 나라에 불과하다”며 “사실 헌법에도 나왔듯이 한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해 주체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그동안 자국의 역사를 축소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행태는 꽤 오래됐다.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혁세력인 묘청은 개경에 근거를 둔 사대주의 세력인 김부식에 대항해 북벌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묘청이 서경으로의 천도에 실패하며 유학에 기반한 김부식의 세력은 한반도로 역사를 속박했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왔다는 게 그의 평가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역사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서경천도가 실패하면서 천년동안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됐다는 한탄이다. 이후 김부식은 보수적 사관에 맞춰 역사를 쓰고(삼국사기) 자신이 참고했던 역사서는 불태워버렸다. 일종의 역사 왜곡인 셈이다. 

보수파 권력 잃을까 너무 불안해해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많은 시민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런 식의 역사왜곡이 우려돼서다. 그는 “국정화는 획일화라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보수파들이 역사를 자신들 관점으로 편향되게 이끌려는 생각이 문제”라며 “김대중·노무현 집권 이후 보수파들이 객관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이 더 우월한데도 권력을 잃을까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교과서 개혁은 필요하다. “역사만큼 재밌는 것도 드물다. 단 스토리가 부각될 때다. 한국에서 역사는 마치 수학을 배우는 느낌이다. 역사를 쪼개고 분석한다. 세부적인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이다.” 검인정 체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서술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교과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다. 정치편에서 한국의 정치사를 쭉 훑고 경제편으로 가면 다시 한국의 경제사를 쭉 서술한 식이다. 그는 “중요한 이야기를 위주로 정치, 경제의 구분 없이 스토리로 서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역사교육이 재미없고 역사를 통해 사실보다 위축된 역사관을 가지게 됐으니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여유 

김 박사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서울에서 보는 동아시아와 북경에서 보는 동아시아의 느낌은 달랐다”고 말했다. “한반도는 만주쪽으로만 뚫려있다. 하지만 중국 본토는 사방에 뚫려 있다. 몽골고원까지 4시간이면 도달한다. 주변국들에게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된다. 사실 한반도는 부차적인 공간으로 평가된다”는 게 그의 평가다. 

   
▲ 역사학자 김종성.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만주를 중심으로 하던 청나라는 조선 인조에게 엄청난 치욕을 줬다.(삼전도의 굴욕, 인조에게 땅에 머리를 세 번 짓이기게 만드는 행위) 그러다 8년 뒤 청이 북경을 점령한 이후에는 조선을 우대했다. 육지로 넘어올 적이 온 사방에 있으면 주변국에게 공손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해 극진한 대우를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그랬다. 약자가 강자와 동맹을 맺으면 강자의 이익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고. 지금 한국 언론을 보면 한국의 외교적 승리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미국의 동맹국을 ‘서세동점을 반격하는 행사’에 참여시킨 점에서 중국의 성과가 훨씬 큰 것이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자신있게 역사를 서술해보지도 않아놓고 강한자(중국)를 이용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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