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역사분쟁 이후에 발생한다. 역사분쟁을 통해 국가주의를 국민들이 받아들여야 전쟁에 쉽게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나라 태종은 백성들을 고구려와의 전쟁에 동원할 목적으로 ‘요동(만주)은 한때 중국 땅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해 역사 분쟁을 일으켰다. 당나라가 요동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역사학자 김종성 박사는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를 통해 세 나라가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왜곡해 역사분쟁에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세 나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한 역사인식을 유도했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역사를 포장하는 제국주의 역사관으로 한국은 자국의 화려한 역사를 숨기는 방식으로 사대주의 역사관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자랑스러운 역사를 숨겨라

단일민족론이란 세상의 중심인 중국 민족과 소중화인 조선은 같은 민족이라는 뜻이다. 사대주의를 통해 내부의 기득권을 지켜왔던 한반도의 지배층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숨겨왔다. 현재 한국 역사교과서에 보면 한반도의 국가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사대를 해온 사실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보면 조공은 과거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행위이며 한반도의 국가들도 사대를 많이 받아왔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편에는 472년부터 중국의 북위에 조공을 배로 늘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어 “북위에 보내는 조공이 전보다 배가 되자 북위의 회사도 더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회사는 조공의 대가로 주는 물품이다. 

“조공무역의 진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보니 이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조공까지 덩달아 은폐된다는 점이다. 우리 교과서는 이런 점을 제대로 부각하지 않고 있다.” 김종서가 편찬한 고려사절요에는 여진족이 고려에 조공을 드리겠다고 서약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세종실록에는 신하가 세종에게 “여진족이 조공하러 올 때마다 반대급부로 조선산 종이를 요구한다”고 하자 세종이 “너무 많이는 주자말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하는 교과서 서술도 보였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뿌리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고조선의 역사부터 왜곡하기 시작했다. 한국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거나 숨기지 않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신선교’다. 신선교는 한민족 고유의 신앙체계다. 신선사상은 중국 도교에도 있지만 신선교는 한국에서 생겼다. 기원은 환인이나 단군이다.

고대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조선을 이해하는데 신선교는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민족 전통신앙은 불교다. 외래종교인 불교를 강조하면서 신선교를 축소해 온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세속오계와 같은 불교 전통으로 오해받는 것들이 신선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사료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중국, 자신들이 받은 것만 과하게 기억하는 역사 

북경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한 교과서인 ‘중국사강요’에는 중국 한나라가 흉노에게 바친 조공을 기록하지 않았다. 한나라가 흉노와 전쟁을 벌여 소탕한 사실이 부각됐다. 한고조 유방 때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는 한나라의 저자세로 시작됐다. 한나라가 흉노족 40만 정예부대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는 제7대 황제인 한무제 집권기간에도 상당기간 지속됐다. 한나라는 흉노에 미녀를 조공하기도 했다.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19세기 초반 청나라가 인정한 조공국에는 조선,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 뿐 아니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로마교황청까지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네덜란드 등이 준 것은 조공이 아니라 그냥 선물”이라며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그것을 조공의 의미로 이해했다”고 지적했다. 

   
▲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김종성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중국 역사를 배우면 중국이 북방 유목민의 침략은 많이 받았지만 결국 중국이 살아남았고 유목민의 문화는 사라졌다는 이미지를 받는다. 북경사범대 출판사에서 초급중학 1학년용으로 발행한 ‘역사’에는 “소수민족이 언어, 복식, 풍속, 관습의 측면에서 한족과 점차 같아지는 동시에, 중원 문화가 풍부히 발전하게 되고 호족의 음식, 음악 등이 점차 한족 인민의 생활에 융합됐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한족이 중국을 지배한 기간은 전체 역사에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몽고족이 지배했던 원나라도 있었고, 북위-수-당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를 세워 오랜기간 중국을 차지했던 선비족도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 패권국이던 수나라가 망한 이유가 고구려 때문이지만 중국 교과서에서는 이런 사실도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 왕따의 경험 가리기 위해 독자성 강조 

저자 김종성 박사는 “일본은 18세기까지 동아시아에서 사실상 왕따”였다고 말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침략한 뒤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뒤쳐졌다는 콤플렉스를 지우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왜곡을 시작했다. 

여러 사료들을 보면 동아시아 변방이었던 왜는 백제에게 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일본이란 국호가 백제와 왜국의 공동작품이지만 백제인의 입장이 더 강하게 반영된 정황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해 뜨는 곳과 가까워’ 일본이란 국호를 채택했다고 했고, 중국 ‘구당서’에도 ‘태양 쪽에 있다고 해’ 일본을 채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왜국이 ‘해 뜨는 곳’쪽이라는 인식은 백제인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이런 점이 기술돼있지 않다. 대중용 개론서인 메이지출판사의 ‘일본 역사 지도’에는 왜국이 백제 잔존 세력의 요청을 받아 백제 부흥군을 파견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술하면서, 백제 유민들이 왜국 체제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점은 기술하지 않았다. 

침략전쟁에 대해서도 정당방위로 포장하고 있다. 다나카 히데미치의 저서 ‘일본의 역사-본래는 무엇이 대단한가’에는 영국이 1차 아편전쟁을 통해 홍콩같은 거점을 마련하고 러시아가 2차 아편전쟁을 통해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 상황에서 일본이 위기를 느꼈다고 돼 있다.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보낸 것은 자위 차원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을 서구의 식민주의에 맞선 비서구 진영의 영웅이란 뉘앙스로 표현했다. 일본 우익들이 19세기 후반 이후 일본의 행보를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침략을 타파하고 일본이 세계사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 발언이다. 

   
▲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세금 47여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고려 말 지방제도의 개편-교주 강릉도 1389~1412년'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 자국 역사를 오히려 축소하는 모습이다. 자료=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김종성 박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역사 왜곡은 의외로 쉽다”며 “반세기 정도면 역사를 새로 쓰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륙 끝에 위치하고 척박한 땅에 불과했던 서유럽이 산업혁명 이후 강대국으로 성장해 2차대전 직전까지 세계를 지배하면서 서유럽은 야만의 역사를 지우고 르네상스 시기를 자신들의 문화의 뿌리로 연결지었다. 

실제로 르네상스 문화는 서유럽 문화에 가깝기 보다는 남유럽·북아프리카에 가까운 문화권이다. 하지만 역사의 서술시점은 항상 현재이기 때문에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할 수 있다. 

자기 비하의 일기장을 써온 한국 주변에는 마치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듯 자국 역사를 부풀리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있다. 신냉전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 전쟁의 서곡인 역사분쟁에서 한국은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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