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와 케이블업계의 재송신수수료 갈등에서 법원이 케이블의 손을 들었다. 지상파가 유선방송사업자(SO)로부터 재송신수수료를 받아왔으나 오히려 지상파가 케이블 망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판결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울산지방법원은 지난 3일 지상파 민영방송인 SBS·UBC(울산방송)가 울산지역 케이블방송사업자인 JCN울산중앙방송을 상대로 가입자당 재송신수수료(CPS) 280원을 요구하며 벌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들 민방은 케이블에 지상파 채널을 재송신하는 대가로 가입자당 280원의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일부 지역 케이블 방송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JCN은 오히려 지상파가 케이블 망을 무료로 이용해 난시청을 해소하고 광고수익을 냈다며 맞소송을 벌였으나 법원은 이 역시 기각했다. 

표면적으로는 쌍방기각이지만 재판부는 지상파의 요구는 모두 기각한 반면 케이블업계의 요구는 일부 수용했다. 사실상 케이블업계의 판정승이다. 재판부는 지상파에 대해 “JCN울산방송이 재송신을 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도 장기간 묵인한 것을 감안하면 재송신 수수료 280원은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송신 수수료 산정에 대해서도 “방송은 공공성이 있고 사업자마다 환경이 달라 재송신 수수료 280원을 통상적 손해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지상파가 케이블망을 통해 무료로 방송을 재송신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케이블업계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케이블의 재전송으로 지상파방송은 부당이득을 얻은 것이 인정되지만, JCN울산방송이 주장하는 광고수익에 대한 부당이득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지상파가 케이블업계로부터 재송신수수료를 받아온 상황에서 정반대의 논리가 인정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지상파와 케이블업계가 진행중인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업계 간 소송은 22건이 진행 중이다. 

물론 케이블업계가 지상파에 망 이용료를 내라고 할 가능성은 없다. 저작권상으로는 지상파의 콘텐츠를 갖다 쓰는 대가를 케이블업계가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케이블업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송신 수수료 협상에서 힘을 받게 됐다. 케이블업계는 지상파의 가격인상을 저지하고 원점 재논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홍보팀장은 “적정한 수신대가 산정을 협의할 근거가 마련됐다”면서 “지상파 채널마다 시청률이 모두 다르고, 지역 케이블업계의 요금체계나 수익이 제각각인데 일괄적으로 이용자당 280원의 재송신 수수료를 요구해온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상파방송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지상파방송을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이번 판결을 가리켜 “수십 개의 소송 중 일부지역에서 내려진 판결”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각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안재형 SBS 정책팀 변호사는 “지상파가 케이블망을 이용할 의사도 행위도 없었는데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오히려 케이블이 지상파 콘텐츠를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재송신 수수료 280원은 가입자 규모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재송신 갈등은 2008년 방송협회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 중단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2009년 지상파3사는 케이블TV 방송사에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은 본격화됐다. 당시 지상파는 가입자당 280원의 재송신수수료를 요구했고 케이블업계는 100원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밝혀 2011년 KBS2, MBC, SBS 등이 송출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지상파는 케이블업계에 이용자 당 재송신 수수료 280원을 올해 450원으로 올리겠다고 밝혔고, 케이블업계는 반발해 협상이 난항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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