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5년 간 천안함 보도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상균 전 MBC PD가 논문작성을 위한 기자·PD들과 심층인터뷰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변의 동료 PD들조차 만류했다고 털어놨다.

김 전 PD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논문 작성과정에 대한 이 같은 뒷얘기를 소개했다. 김 전 PD는 박사논문 주제로 ‘보수언론의 천안함 보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처음엔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의 진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던 언론들이 어떻게 통제됐는지에 대해 다큐멘터리성 접근을 해보려 했으나 신문방송학과 논문에 적합지 않은 면이 있었다”며 “그러다가 차라리 보수언론 자체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떤가로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 들여다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논문주제가 정해진 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김 PD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우려를 들었다고 전했다. 근는 “천안함 갖고 논문 쓴다고 했더니 주변에서도 처음부터 반대가 많았다”며 “동료 PD들조차 ‘증거가 어딨냐’. ‘(설마) 나라가 거짓말하겠느냐’, ‘무리하게 논문 쓰려고 하는 것 같다’는 질문부터 했다”고 전했다. 김 전 PD는 “천안함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현실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언론지형 자체가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만류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조중동의 천안함 보도 분석과 함께 실시된 기자, PD, 전직 언론인, 관련 전문가, 대북 전문가와 심층 인터뷰를 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고 김 PD는 전했다. 그의 논문을 보면, 김 전 PD는 현직 기자 11명(A~F 기자는 익명, 연합뉴스 2명, 한겨레 2명,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 1명)과 원로 언론인 4명,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변호사, 안수명 박사, 서재정 박사, 노종면 전 국민TV 방송제작국장,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완상·정세현·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25명을 상대로 2013년 1월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심층인터뷰를 했다.

이 가운데 보수언론 기자 뿐 아니라 그 이외의 매체 기자들조차 ‘천안함’이라는 주제로 말하려는 것을 꺼렸다는 것. 김상균 전 PD는 “합조단 발표 결과가 진실일 것으로 믿는 일반 시민 여론(2010~2012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5년 3월 뉴스타파 여론조사)은 소수에 불과한데도 (인터뷰한) 기자들은 정부 발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김 전 PD는 “보수언론 기자 3명 가운데 2명은 북한 어뢰의 소행이라고 자신의 매체에 보도한 게 맞다는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1명은 어뢰 공격이라는 발표에 대해 10~20%는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며 “예를 들어 합조단 보고서에 ‘북한 비파곶 기지에서 나와 백령도로 움직인 것’은 추정이지 확인되지 않는 것이며, 되돌아간 것도 추정이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김상균 전 MBC PD.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전 PD는 “조중동과 한겨레 이외에 인터뷰한 다른 매체 기자들은 천안함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인터뷰한 한 PD는 북한소행을 한 60% 정도 믿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기사를 쓰지 않았던 기자들은 ‘천안함이라는 것 자체는 침몰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몇주기가 됐을 때 보도하는 소재가 돼버린 것 아니냐’, ‘천안함만 천착할 수 없다’, ‘탐사보도 방송사가 심층연구해서 프로그램을 냈으면 한다’ 등의 의견을 냈다”며 “그러나 그것(탐사보도를 할 방송사)이 붕괴됐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전 PD는 무엇보다 “인터뷰했던 기자들도 천안함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피하려 했다”며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고, 친한 언론인들도 부담스러워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김 전 PD는 “언론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이 이런 세태를 낳은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분석을 한 조중동의 5년간 천안함 보도에 대해 김 전 PD는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사고발생 직후 첫보도인 27일자는 대부분 선미(함미)의 파공이었으며, 3월 말~4월 초만 해도 ‘기뢰’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기사가 어뢰보다 더 많았다”며 “그러나 기뢰 자체는 북에서 설치한 기뢰가 흘러온 것인지, 북의 침투를 막고자 우리가 예비적으로 설치한 기뢰인지 판정하기 쉽지 않아 결국 책임을 묻는 데 있어 논란을 낳았다. 그러다가 차츰 어뢰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PD는 “심지어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조차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정확히 진실규명해야 한다’, ‘북한으로 몰아가지 말라’라는 등 북한 소행설에 경계해왔다”며 “그러다가 차츰 어뢰로 확정되는 것처럼 보도의 방향이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뢰설의) 심각한 문제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서해안을 다 뒤져서라도 증거를 찾으라’는 류의 보도가 많다가 5월 15일 어뢰를 발견하고 닷새뒤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보도가 확정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PD는 “그러나 이런 식의 보도가 진실에 입각한 것인가, 사실확인이  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는 아직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며 “진실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으며, 저널리즘의 기본원칙과도 괴리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의 천안함 보도 방향이 ‘파공-기뢰-어뢰-어뢰 파편찾아라’로 바뀐 이유에 대해 김 전 PD는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시간 걸려도 정확히 조사하자’고 했다가 이렇게 바뀐 것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문에 전략이 수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4대강 문제로 정권유지 자체가 불안해왔는데,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정권의 안정화를 꾀하려 했으며, 여기에 보수언론이 강력히 지원하면서 기득권 동맹이 형성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인간어뢰설’, ‘북한소행설’의 소스로 탈북자가 많이 등장한 것에 대해 김 전 PD는 “사건초기엔 과학적으로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얘기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며 “이 때문에 대북관계에 있어 정보가 불확실할 때마다 미확인보도가 나오곤 했는데, 그 때마다 탈북자나 출처 불명의 군고위관계자가 등장해왔다는 것이 대북전문가나 북한전문기자들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에서 탈북자 인용보도는 초반에 분위기를 몰아가는데 단초역할을 하는데 이용됐다”며 “합리적으로 접근이 안되니 익숙한 탈북자 이용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기 KBS <추적60분>, MBC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날카로운 의혹을 제기했던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김 전 PD는 “진실을 얘기할수 있는 정직한 기자는 작업에서 배제돼왔다”며 “이 세 방송의 경우 사건 초기엔 집중적으로 보도했으나 그 해 연말을 지나면서 중지돼 버렸다”고 전했다. 김 전 PD는 “KBS에는 이미 김인규 사장이 들어서 있었고 MBC는 김재철 때였으며, SBS는 상업방송의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 거론된 KBS의 ‘제3의 부표’나 OBS의 ‘시신 4구 발견’ 보도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김 전 PD는 “제3의 부표와 관련해 UDT동지회 대원들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 전선으로 엉켜있었으며, KBS 보도에 보면, 긴 물체를 갖고 날아가는 헬기 사진이 있었다”며 “시체 4구에 대해서도 보도가 됐으며 당시 최종 책임자인 김석진 보도국장도 오류가 아니라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결국 모두 기사를 내렸다”며 “이(이런 보이지 않는 힘)를 돌파할 언론인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전 PD는 “언론인들이 다시한 번 천안함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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