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자 일각에서 한국에서도 전승절 행사를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광화문에서는 의열단기념사업회 등이 모여 전승절 제정 촉구 기자회견과 함께 승전기념 카 퍼레이드 등 전승 70주년 행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러시아는 독일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깨고 침공한 1941년 나치 독일과 불과 4년 싸웠고 중국은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잡으면 14년 동안 싸웠는데 모두 전승절을 기념하고 있다”며 “동학농민혁명군이 일제 정규군과 맞붙은 1894년부터 계산하면 우리는 일제와 51년 전쟁을 치렀다”며 전승절 제정을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 정성근 한경대 교수는 “이번 전승 70주년 기념식은 국내외에 한국이 전승국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전후보상과 전쟁사과가 없는 일본을 향한 항의적 퍼포먼스”라면서 “앞으로 전승절 제정운동과 함께 사이버 임시정부를 통해 국민운동 차원의 독립자금 모금과 함께 임시정부가 못다 한 일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이 전승절 행사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중국은 일본 항복문서에 표기돼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은 승전 당사국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일본이 항복했다고 해서 전승절을 하자는 주장은 주체적인 사관을 갖자는 의미는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 한국광복군.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한국광복군은 공식적으로 지휘권이 중국 국민당에게 있었다. 또한 미국 OSS(미국중앙정보부 전신)로부터 훈련을 받아 1945년 8월로 예정된 국내진공작전이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되지 못하면서 참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이듬해 2월부터 광복군 대원들은 승전국 군인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다. 

조 사무총장은 “독립군들이 국내 상륙해 유격이라도 벌였여야 했는데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뼈아프다”고 말했다. 1951년 2차 대전에 전후 처리과정으로 연합군과 일본 등이 함께 했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2일 전승절 제정운동과 카 퍼레이드를 주도했던 정성근 한경대 교수(동물생명공학과)는 민족문제연구소에도 행사 공동주최를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조 사무총장은 “전승절 추진에 대해서는 고려해야 할 게 많은데 이렇게 갑자기 연락와서 전승절을 이벤트 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며 “다른 방식으로도 우리의 역사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사무총장은 이번 기회에 차라리 경술국치일을 국가기념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나라를 뺏긴 경술국치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국가기념일로 만들자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나왔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지사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 대한광복회 경북지부장은 지난해에도 “8월 29일은 우리의 뼈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가장 비참하고 가장 절통한 치욕의 날인만큼 추념일로 정해 후세들에게 국치로 일제에게 당한 우리민족의 고초와 박해를 상기시켜 줘야 한다”고 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정부차원의 국치일 관련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민간에서 만든 달력에도 8월 29일을 국치일로 표기해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국치일을 표기하는 달력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조 사무총장은 “대구, 광주, 대전시 등과 강원도의회가 국치일 당일 관공서 태극기 조기게양 등 국치일 추념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며 “조기게양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 특별한 예산도 들어가지 않는데 왜 국회차원에서 국치일을 국가기념일로 기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조 사무총장에 따르면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은 국치일에 하루를 굶었다. 나라를 빼앗겨 민족이 수치를 당하는 현실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다. 

   
▲ TV조선 화면 갈무리.
 

역사학자 김종성씨도 한국도 전승절 행사를 하자는 주장에 우려를 표했다. 김씨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띄우다보니 전승절도 과대포장 된 측면이 있다”며 “사실 한국에서 전승절을 하자는 것이 쑥스럽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승보다는 해방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한국의 역사인식이 위축돼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를 주체적으로 보는 다른 방법이 많다. 외세에 의해 성취한 해방을 기리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라며 “더구나 미국에 의해 해방됐고 미군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광화문에서 전승절을 진행해서 용산 앞을 지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승절보다는 일본의 과거 악행을 부각하는 행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전승절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굳이 이런 행사가 필요하다면 위안부를 위한 행사나 일제에 의해 피해를 받은 분들을 모시고 이들을 기리는 행사가 더 좋을 것”이라며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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